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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다 버리고 사랑하고 싶다

‘하바나’와 아바나

  • 글 · 사진 오동진 | 영화평론가

다 버리고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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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최초 한국영화제

최근 두 차례 쿠바 여행을 떠났다. 5월 말에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과 수도 아바나(La Havana)를 먼저 한 차례 다녀왔다. 쿠바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제1회 한국영화제 때문이었다. 이 영화제는 한-쿠바 교류협의회(대표 김이수)가 오랫동안 준비해 개최한 것으로, 초기 단계는 아바나 국제영화제의 특별 섹션으로 한국 영화가 상영되는 정도였다가 이번에 독립 운영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어려운 관문이 몇 가지 드러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 가장 큰 걸림돌이 북한이었다.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은 한국영화제 개최를 극력 저지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영화제는 당초 2월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그 같은 ‘방해공작’ 탓에 5월로 연기된 것이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그도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미국과 ‘혈맹’ 관계로 70년 가까이 지낸 것처럼 북한과 쿠바 역시 오랜 세월 동안 형제 국가처럼 지냈다. 아바나에 있는 다른 외국 대사관들에 비해 북한대사관이 시설이나 규모 면에서 월등해 보이는 것도 그런 양국의 관계를 반영하는 듯하다. 그럴진대 한국영화제라니. 북한으로서는 가능하면 막고 싶었을 것이다.

제1회 쿠바 한국영화제는 매우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영화 편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총 7편이 상영됐는데 편수보다는 라인업이 흥미로웠다.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를 개막작으로 박찬욱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김기덕의 ‘뫼비우스’, 한준희의 ‘차이나타운’, 장형윤의 ‘우리별 1호와 얼룩소’, 김용화의 ‘미녀는 괴로워’, 박훈정의 ‘신세계’ 등이다. 흥미롭다 못해 신기했다.

한 달에 1인당 계란 9개를 배급받는 사람들이 부패 경찰의 얘기를 다룬 ‘끝까지 간다’를 보고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영화의 엔딩 장면은 주인공 고건수(이선균) 형사가 무심코 창고 문을 따고 들어가 파드득하며 형광 불빛이 켜진 후 엄청나게 쌓여 있는 돈 무더기를 보고 기겁하는 모습이다.

이를 지켜보던 쿠바 관객들 사이에서 한숨인지, 환호성인지, 웃음인지, 하여튼 뭔지 모를 소리들이 우, 하고 쏟아져 나왔다. 마치 저 돈 좀 봐, 하는 소리 같았다. 돈을 보면서, 뭉텅이도 그냥 뭉텅이가 아니라 부당한 짓으로 엄청난 돈을 눈앞에 둔 주인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부당한 짓이면 어때, 라고들 하는 것 같았다. 그냥 영화일 뿐이잖아, 라고 하는 것 같았다.





통제와 관리의 경계

다 버리고 사랑하고 싶다

‘하바나’는 도박사 얘기인 척하지만 사실은 러브스토리다.

보통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영화라도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될 것처럼, 그렇게 경직돼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쿠바는 쿠바다. 쿠바에 올 때 들은 얘기, “거기는 쿠바예요, 쿠바(당신이 사는 서울 같은 곳이 아니라고요)”라는 말이 떠올랐다. 쿠바는 쿠바, 다른 데와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튼 여기도 지금 돈이 필요한 것이다. 물이 필요하고(쿠바는 식수가 부족해서 구 아바나 시내를 걷다보면 오후 2, 3시쯤 탱크로리가 식당을 다니며 물을 공급해주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석유가 필요하며(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 석유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각종 생필품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신세계’ 같은 한국 영화를 보며 돈이 있으면 저렇게 살아가고, 또 돈이 저렇게 일정한 역할을 하며, 돈 때문에 저렇게 사람이 죽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생기는구나, 이제는 우리도 일단 돈 좀 가져보자는 마음을 갖게 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돈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라는 것도 일단 돈이 있은 후 겪어본 다음에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법이니까.

쿠바 공산당이, 라울 카스트로가 저렇게 ‘드글거리는’ 욕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심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욕망은 무조건 통제만 하면 안 된다.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그 두 가지, 통제와 관리 사이에는 경계가 너무 짧고 얇다. 관리한다고 하다가 잘못하면 강압적인 통제가 되기 십상이다.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대체로 많은 국가는 그 점에 서 실패했다.

쿠바는 일단 아바나 얘기부터 해야 한다. 아바나를 얘기해야 산타클라라(쿠바 비야클라라 주의 주도)와 트리니다드(쿠바 상크티스피리투스 주에 있는 도시)와 시엔푸에고스(쿠바 중부 시엔푸에고스 주의 주도), 모두(冒頭)에 얘기한 바라데로 해변, 그리고 비날레스(아바나에서 서쪽으로 120km 떨어진 지역) 등을 얘기할 수 있다. 섬 동쪽의 산티아고를 제외하고는 쿠바를 대체로 일주하는 코스다.

지난 7월 말에 두 번째로 쿠바를 방문했을 때는 이 코스로 약 열흘 동안 다녔다. 한국처럼 뜨거운 여름이었는데 굳이 이 일정을 고집한 것은 7월 26일이 쿠바혁명일이기 때문이다. 굳이 한 번쯤은 혁명일에 맞춰 쿠바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여행사는 이런 일정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한 번 경험해본바, 쿠바의 여름은 견딜 만한 날씨가 아니다. 쿠바 일주 여행은 여름보다는 겨울이 낫겠다는 생각을 골백번 하게 된다.

자, 어쨌든 아바나는 통상 구(舊) 아바나와 신(新)시가지로 나뉜다. 그건 우리가 강남을 개발한 이후 서울을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나누고 나니 지역의 시설에도 차이가 생겼지만 무엇보다 문화와 의식이 달라졌다. 쿠바도 마찬가지다. 구 아바나는 ‘아바나 비에하(Vieja)’로 불린다. 신시가지는 ‘베다도(Vedado)’라고 한다.

물론 베다도가 아무래도 편한 맛이 있다. 고급 호텔이 몰려 있는 곳이라 관광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특히 내시오날 호텔은 1930년대에 지어져 바티스타 정권 때 호화로움이 극치를 이뤘던 곳인데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같은 쿠바 재즈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호텔 주변은 유럽과 러시아, 중미, 남미 관광객이 넘쳐난다. 내시오날 호텔 뒤편 정원의 카페는 말레콩 해변을 정면으로 마주하게끔 설계됐다. 말레콩 해안에는 약 7km 길이의 세계 최장 방파제가 건설돼 있는데, 카페에서는 이 해안 건너 광활한 대서양을 집 앞 연못인 양 감상하면서 앉아 있을 수 있다.

그 한가운데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다이키리와 모히토를 즐기는데 한국인은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역시 중국 관광객이 급속도로 느는 형국이다. 앉아 있으면 주변에서 툭툭 사람들이 말을 건다. 대부분 스페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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