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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전문의 최명기의 남녀본색

게으른 황제 vs 잔소리 대마왕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게으른 황제 vs 잔소리 대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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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에 방구들과 씨름하는 남편에게 집안일 도우라, 아이 보라 강요하지 말자. 제대로 못하는 집안일 억지로 시키느니 열심히 일해 돈 더 벌어오라 하는 게 낫다. 아내는 남편이 게으른 것도 싫지만 무관심은 더 싫다. 따뜻한 말로 관심을 가져주면 아내는 ‘불쌍한 남편’을 더 쉬게 해준다.
부부 상담을 하다 보면 아내가 남편에 대해 가장 많이 흉보는 게 ‘게으름’이다. “꼼짝도  안 하려 한다” “운동을 안 한다” “씻지도 않는다”는 아내들의 하소연은 끝이 없다. 남편은 아내에 대해 가장 많이 짜증내는 게 ‘잔소리’다. “뭐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흠을 잡는다” “끊임 없이 쫑알쫑알 해서 미치겠다”고 호소한다. 게으르니까 잔소리를 하고, 잔소리를 들으면 짜증이 나서 꼼짝도 안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남편과 아내가 묘사하는 상황은 딴판이다. 무직인 남편이 집에서도 손 하나 까딱 않고 잠만 잔다면 분명 게으른 남편이다. 하지만 상담을 하러 오는 남편 대부분은 어느 정도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한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 보니 집에서는 꼼짝도 하기 싫다. 맞벌이 부부의 남편은 아내가 일을 하기 때문에 양심에 찔리는지 집안일을 ‘돕는 척’이라도 한다. 하지만 아내가 전업주부라면 “나도 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남편의 항변도 이해가 간다.

아내의 간섭이 너무 심한 경우도 있다. 이런 아내는 ‘완벽한 남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서도 소변이 변기 밖으로 튀어나오니 앉아서 일을 보라고 한다. 또한 끝없이 뭔가를 시킨다. 남편은 아내가 시키는 일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의견 차이가 있으면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비난하면서 지키지 못할 요구를 한다. 그러다 보면 남편은 하고도 욕먹고 안 하고도 욕먹는다. 아내가 설거지를 해달라고 해서 해놓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게 했다” “일을 두 번 하게 만든다”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럴 때 남편은? 하고 욕먹느니 안하고 욕먹는 쪽을 선택한다. 아이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아이가 좋아하는 TV를 하루 종일 보게 하고 자장면을 사주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에게 온종일 TV 보여주고 배달음식 시켜준 게 잘한 짓이냐며 따진다. 남편 처지에선 어차피 욕먹을 거, 안 하고 욕먹는 쪽을 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남편은 왜 게으를까

게으른 황제 vs 잔소리 대마왕

일러스트• 김영민

밖에 나가지 않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어떤 남편은 사람 만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사회불안장애일 수 있다. 결혼 전에는 어떻게든 여자의 마음에 들어야 해 주말에도 끌려다녔지만, 결혼에 골인한 후 원래 성격이 드러난 것이다. 사회불안증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사람 만나는 일이다. 주중 5일 동안 내내 회사에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주말에는 좀 쉬고 싶다. 그러나 아내의 눈에는 주말이면 온종일 집에만 있는 남편이 게을러터져 보인다. 그러니 주말이면 답답해서 못 살 지경이다.

우울증이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기도 한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눈물 흘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우울증에 걸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찍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온다. 잠을 못 자고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 같다. 그래서 밤새 게임을 하거나 케이블 TV 채널을 돌리다 죽을 힘을 다해 출근하면 오전 내내 멍하다. 오후부터 서서히 나아져 퇴근할 때쯤 되면 조금 괜찮아진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오늘은 일찍 자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그때뿐이다. 막상 잠자리에 들면 잠이 안 온다. 그리고 아침이 오는 순간 또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도 만나기 싫고, 밖에 나가기도 싫고, 섹스도 하기 싫다. 몇 년 동안 잘 지내던 남편이 이렇게 변하면 아내도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챈다. 병원 치료를 권하거나 보약을 사서 먹인다.

신혼부부에게 우울증이 있으면 문제가 심각하다. 결혼은 봄, 가을에 많이 하는데, 우울증도 봄, 가을에 가장 많이 생긴다. 결혼하기 전엔 멀쩡하던 남자가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회사만 갔다 오면 아무것도 안 하려 한다. 더욱이 신혼인데도 섹스를 거부하면 아내는 ‘내가 싫어졌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결국 잔소리를 해대지만 소용이 없다.

아내의 불만이 이해가 되는 사례도 있다. 남편이 마땅한 직업 없이 백수로 지내면 아내가 보기에 남편은 게으르기 짝이 없다. 결혼하기 전에는 그 나름대로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고, 아내도 그런 남편을 믿고 결혼했다. 그런데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한다. 생활비는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충당한다. 그러다 사업이 잘 안 풀리면 집에 눌러앉는다. 다시 취직하려니 창피하다. 아내를 믿고 일을 벌이는 남자일수록 여자가 조금만 뭐라고 하면 “돈 못 번다고 나를 무시한다”며 발끈한다.



우울증, ADHD, 알코올

어떤 남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만 부지런하다. 가령 좋아하는 낚시, 등산, 골프 같은 걸 할 때는 스스로 새벽같이 일어나는데, 아내가 집안일 좀 도와달라고 하면 꿈쩍하지 않는다. 집안일을 도와주면 당장 욕은 안 먹겠지만, 아내의 기대치가 올라가면서 다음에 또 시달리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뭔가 시키면 계속 딴짓을 하느라 제대로 일을 못하는 남자도 있다. 이런 남자는, 시어머니에게 물어보면, 결혼 전부터 그랬다. 어릴 때도 숙제하라고 하면 끊임없이 딴짓을 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었던 것이다. ADHD가 있는 아이들은 장난을 많이 치고, 가만히 있지 못한다. 이런 증상을 ‘과다행동’이라고 하는데, 대개는 중학생이 될 때쯤 서서히 사라진다. 하지만 부주의하고 딴짓하는 습성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아내가 간곡하게 부탁해도 딴짓하느라 못한다. 재촉하면 “안 그래도 할 생각이었다”며 꾸물거린다. 아내는 속이 타지만, 남편이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중독 증상도 게으름에 한몫을 한다. 알코올 중독자와 사는 여자는 속이 탄다. 남편이 주중엔 회사 일을 핑계로 술을 마신다. 주말에 가족과 같이 있을 때는 술을 잘 안 마시지만 금단증상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한다. 금단증상이라고 하면 흔히 식은땀이 나고 손을 떠는 증상을 떠올리지만, 꼼짝하기 싫고 의욕이 없는 것도 금단증상이다. 술을 끊지 않는 한 ‘주말 게으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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