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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나부터 ‘음란마귀’ 씌어야”

저예산 에로영화 ‘달인’ 공자관 감독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나부터 ‘음란마귀’ 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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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젊은 엄마’ 대박…에로영화 부활 주도
  • ● 11월 말 신작 ‘특이점이 온 영화’ 발표
  • ● “촬영 땐 머릿속에 ‘고추’만 떠올린다”
  • ● “성인 종합엔터테인먼트그룹 일구고 싶어”
“나부터 ‘음란마귀’ 씌어야”

[박해윤 기자]

많은 40~50대 남성은 기억하리라.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욕망과 현실의 불일치로 마냥 고달프고 번민하던 시절. 발랑 까지지도, 시대의 아픔을 한껏 사유하지도 못한 얼치기 청춘들에게 몇 안 되는 해방구 중 하나가 ‘에로비디오’였음을.

1990년대~2000년대 초반. 후줄근한 ‘추리닝’ 바람으로 찾던, 살림집을 겸한 자그마한 동네 비디오 대여점. 젊은 여주인이 “신작 테이프니까 빨리 반납해”라고 성마르게 재촉이라도 하면 낯이 확확 달아오르던 기억. 혹여 ‘취향’을 들킬까, 별반 보고 싶지 않은 영화까지 섞어 ‘1(일반영화)+1(에로영화)’ 혹은 ‘2+1’으로 빌리기도 하고, 연체료 독촉을 우려해 부랴부랴 몰아보던 경험이 있을 터.

그러다 막강한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 화양연화(花樣年華)의 한 시대를 풍미한 비디오 대여시장은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쇠락했다. 인터넷이 PC통신을, 빵집이 쌀집을 밀어냈듯. 자연스럽게 한국 에로영화계도 2005년 이후 시장 자체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약 빤’ 영화

그러나 욕망은 본래 ‘아날로그적’일 수밖에 없다. 조금 촌스러워도 따스함을 되새김질케 하는 작금의 ‘복고’ 바람이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달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동(反動)이듯. 그래서일까. 비디오 대여점을 ‘폭망’케 한 인터넷TV(IPTV)·케이블TV의 주문형 비디오(VOD) 시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에로영화의 부활을 알린다. 고예산 상업영화가 스크린을 통해 각광받는 한켠에서 19금(禁) 저예산 에로영화가 최근 2~3년 새 ‘안방극장’을 달구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그 중심에 공자관(40) 감독이 있다. 공 감독은 2013년 개봉작 ‘젊은 엄마’를 통해 에로영화계 스타 감독으로 떠오른 데 이어, 지난해 11월 발표한 ‘친구 엄마’로 저예산 에로영화의 핑크빛 약진을 이끌고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밀크픽처스’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11월 말 개봉 예정인 ‘특이점이 온 영화’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밀크픽처스는 지난해 설립한 자신의 제작사다.

▼ 작품 제목부터 ‘특이’하다.

“‘약 빨았다’와 비슷한 뜻이다. 요즘은 그걸 ‘특이점이 온다’는 인터넷상 은어로 표현한다. 영화는 3부짜리 옴니버스 형식이다. 가끔 극장판도 내는 일본 판타지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를 떠올리면 된다. 미국이라면 ‘환상특급’ 같은. 1화에서 SM(사디즘과 마조히즘)과 스와핑(파트너 교환 성행위), 2화에선 퀴어(성소수자를 포괄하는 뜻), 3화는 패륜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공 감독의 이름 또한 특이하다. ‘아들 자(子)’, ‘벼슬 관(官).’ 가명이나 예명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본명이다.

서울 태생인 그는 단국대 연극영화과(95학번) 출신. 4학년 때인 2001년 에로영화 전문 제작사 (주)클릭영화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1년가량 조감독 노릇을 하다 이듬해 7월 ‘위험한 연극’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같은 해 잇따라 선보인 ‘야망’ ‘깃발을 꽂으며’까지 에로비디오 한 편당 3000~4000장의 판매 실적을 냈다. 평균치를 넘는 실적이지만 2003년 10월 퇴사했다.

“에로영화계가 몰락하고 있었다. 입사 당시엔 비디오 한 편당 1만 장씩 팔려 ‘대박’을 쳤는데, 퇴사 무렵엔 1000~2000장이 고작이었다. 사무실에 나와도 할 일 없는 날이 많아 회사 분위기도 나른했다.”



“도제식 시스템 싫었다”

“나부터 ‘음란마귀’ 씌어야”

‘특이점이 온 영화’의 한 장면. [사진제공·밀크픽처스]]

▼ 영화학도로서 충무로 진출은 꿈꾸지 않았나.

“거기서 감독 ‘입봉’을 하려면 연출부 막내로 들어가 한 감독 밑에서 10년가량 연출부·조감독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 도제식 시스템이 싫었다. 바로 연출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게 클릭영화사다. 좀 자만했던 것 같긴 하다.”

그러나 할 일이 마땅치 않은 건 퇴사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닥치는 대로 일하며 ‘연명’하는 프리랜서 생활의 연속.

“손가락 빨 순 없지 않나. 영상과 무관한 일도 했다. 일당 5만 원짜리 아파트 소독, 주차장 청소 일로 월 60만~70만 원 번 적도 있다. 딱 교통비와 휴대전화 요금 충당할 정도. 게임산업이 성장할 땐 성인 게임용 실사영상을 찍는 등 각종 성인 콘텐츠도 만들었다. 모 감독이 그러더라. ‘넌 그때 (물만 주면 살아가는) 선인장처럼 버텼다’고.”

그렇게 4년을 보낸 공 감독이 기성 제작사 청년필름(주)을 통해 2007년 가을 내놓은 작품이 코믹 에로물 ‘색화동’이다. 에로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처한 현실과 애환을 자전적 스토리에 담아 그려냈다. 개봉 전인 2006년 말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됐고 전국 7개관에서 스크린 상영도 했지만, 흥행엔 재미를 못 봤다. 그때 공 감독은 깊은 상념에 빠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나를 찾는 건 에로영화를 원하기 때문 아닌가, 근데 왜 날 찾지 않지? 영화란 게 절대 쉽지 않구나…그런 자문자답을 해가며 영화인으로서의 능력, 영화와 연출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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