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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인터뷰|이인제의 포문

“김대통령, 당총재 내놓으시죠”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김대통령, 당총재 내놓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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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해서 방대한 행정력을 갖고 국가를 차원 높게 경영하는 일에 전념하셔야 합니다. 정당과 국회는 대통령과 수평적 협력관계에 있는 지도자들이 자유와 자율을 갖고 주도해 나가는 시스템으로 바뀔 때가 됐습니다.”》
꽉 다문 어금니, 도전적인 눈빛, 그리고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을 쏙 빼닮은 머리와 콧잔등, 그리고 이마. 그의 모습은 여전했다. 97년 대선에서 ‘지역구도 타파와 세대교체’를 내걸고 여야 거대정당 사이에서 ‘급조된’ 미니정당으로 도전, 500만표(19.2%)를 획득했던 이인제. 그 자신이 타파 대상으로 지목했던 3김체제의 한 축인 ‘DJ당’에 들어와 백의종군하고 있는 그는 시쳇말로 ‘실세’도 ‘고위관계자’도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비록 무관(無冠)이지만 차기대통령의 가능성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수위를 지켜오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언행은 향후 대권구도와 관련, 정치권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고 때로는 그의 과도한 질주를 가로막는 안팎의 견제도 거센 게 현실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2월1일 국민회의 간부들과 가진 청와대 오찬에서 “자기처신만 잘하고 당을 외면하거나 등한시하는 것은 올바른 당인의 태도가 아니다”면서 차기지도자의 덕목으로 ‘애당심’을 강조한 것도 이 당무위원을 비롯한 차기 주자들에게는 의미심장한 말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옷로비의혹 파문, 언론문건 파동 등 세기말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치적 사건들은 물론 자민련과 합당문제, 신당의 진로문제 등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 여러 목소리가 분출하는 가운데에도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켜왔다. 3김청산과 세대교체를 외쳤던 그는 대립과 비능률, 그리고 정치적 냉소가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밀레니엄 전환기를 어떤 생각으로 맞고 있을까.

‘호랑이 잡기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3김 체제 한가운데로 투신한 그가 진흙탕 속의 현실정치에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나몰라라 ‘당을 등한시하거나 자기처신만 잘하려’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갖고 이위원을 만나 그의 눈에 비친 1999년 말의 한국정치, 그리고 그가 말하는 2000년대의 새로운 정치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12월10일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 근처에 있는 정우빌딩 8층 이위원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이고문은 인터뷰에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과 난맥상에 대해 집권세력의 책임을 인정한 뒤 21세기 국가생존 전략 차원의 ‘정치 대혁신’을 주장했다.

대통령이 아니라 당과 국회가 중심이 되는 정치, 이를 위한 대통령의 2선후퇴, 새로운 비전을 가진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정치, 당원들의 민주적 경선에 의한 당지도부 구성과 공직후보 선출 등 민감한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특유의 단호한 어조로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이와 같은 발언은, 그가 이론적 당위를 역설하는 학자가 아니라, 정치적 행동의 한가운데 서 있는 당사자라는 점에서 미묘한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위원은 특히 인터뷰 말미에 DJP간 합의사항인 총선후 내각제 추진과 관련, “국민 뜻에 반하는 내각제 추진은 불가하며 만일 ‘장기집권 음모 차원의 개헌 추진’이 시도된다면 국민과 함께 강력히 싸워나갈 것”이라는 말로 ‘각오’를 분명히 했다.

옷사건, 대통령 보좌진 책임 규명돼야

‘여(與) - 이럴 줄이야/ 야(野) - 그럴 줄 알았다’

‘국민회의 연합공천 실패… 수도권 총선전략 비상’

이위원의 사무실 입구에 쌓여 있는 이날 조간신문에는 바로 전날(12월9일) 치른 안성-화성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다는 관련기사가 비중있게 실려 있었다. 인터뷰에 들어가면서 먼저 재보선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 걱정이 크시겠습니다. 11월에 실시된 서울 8개 지역 구의원 보선에서도 여권이 사실상 완패했는데, 이번에 실시된 안성시장, 화성군수 보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욱이 두 지역은 지난 대선에서 여권이 압승했던 지역인데 이렇게 패배한 걸 보면 민심이 단단히 틀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선거 3일 전 안성 정당연설회에 참여해서 찬조연설을 했는데 민심동향이 우리 당에 너무 차가웠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동안 국민의 기대가 높았는데 개혁의 진행이나 성과에 대해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또 기대에 비해서 실망이 컸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읽고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이번 선거결과로부터 우리가 얻은 교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그와 같은 실망감이 초래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최근 옷로비 사건, 언론대책문건 파동을 비롯해서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요? 국정현안을 다루는 여권의 능력이랄까 도덕성에 관해 우려를 갖게 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일종의 난맥상이랄까….

“여야관계가 대화와 토론, 타협을 통한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극한적인 대결과 투쟁으로 일관하다 보니까 개혁의 추진력, 탄력이 줄어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여러 문제가 시원시원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자꾸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렇다 보니 모든 책임을 정부여당이 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앞으로 정부 여당이 좀더 체계적으로, 개혁의 우선순위를 잘 살펴서 올바른 정책과 뛰어난 전략을 동원해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고 봐요.”

─ 여권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대통령의 눈과 귀 구실을 하는 라인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문제 같습니다. 지난 옷사건에서도 대통령의 눈과 귀 구실을 해야 할 정보·사정 라인이 오히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발견됐습니다. 그런 인사들을 가까이 쓰는 대통령의 인사정책이나 스타일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옷로비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에 의해 정말로 진실이 왜곡되고 그들이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번에 분명하게 진실을 밝히고 엄정하게 처리해서 큰 교훈으로 삼아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사와 관련해서는, 첫째 적재적소 원칙이 관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연 학연 혈연 등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배제하고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역량을 갖춘 인재가 등용하는 것이죠. 그 다음이 신상필벌입니다. 그 사람에게 일할 수 있는 재량 권한 여건을 최대한 확보해주고 일한 결과에 대해서는 냉엄하게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혁 청사진과 일관된 리더십 필요

─ 그런 추상 같은 기강이 확립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일관성과 원칙을 잃었기 때문 아닙니까? 지금 국민들은 과연 뭔가 개혁다운 개혁이 이뤄지고 있는지 잘 느끼지 못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방만한 공기업 구조개혁 문제, 막대한 국가 채무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재정개혁 문제, 세부담 형평성 확보를 위한 세제개혁, 의보·국민연금 통합 문제, 최근에는 교사정년 단축문제까지도 왔다갔다 흔들흔들 합니다. 물론 야당이나 공동여당의 다른 파트너가 협조해주지 않거나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지만 근본적으로 집권세력의 원칙과 의지가 불분명한 데서 혼선이 일어나고 국민이 실망하게 된 것은 아닌지….

“지금 개혁의 미래를 국민들이 믿지 못하고, 개혁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개혁을 추진하는 집권세력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총체적으로 분야별로 개혁의 청사진이 분명하게 제시되고 일관되게 그 목표를 향해서 국민들이 힘을 합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에 접근하기 위한 정책들이 아주 과학적으로 설계돼야 합니다. 또 그 과정에는 많은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합니다.”

─ 지금 국민들은 개혁해야 할 부문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정치를 꼽곤 합니다. 정치문화가 가장 잘못돼 있고 문제가 많다, 우리 정치의 낙후성을 바꾸지 않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하는데요, 정치낙후에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국민들의 그런 인식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30여 년 동안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해왔습니다. 국가에서도 주로 관료들이 경제성장을 계획하고 관리하고 주도해왔습니다. 이 시대에 정치집단은 들러리 이상의 큰 역을 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의 위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국가가 민간분야를 직접 지도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죠. 민간의 자유와 자율, 창의를 최대한 존중해주고 국가는 전략적인 분야에 투자하고 공정한 질서,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서 그쳐야 합니다. 과거처럼 간섭하려는 관료집단의 욕망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과거 들러리에 불과했던 정치집단은 새로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정치분야의 개혁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국가에 아주 불행한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두 김, 새로운 세대에게 길 열어줘야

─ 정치개혁은 비단 늦어지고 있다는 문제 뿐만이 아니라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타산에 얽매여 본질적인 개혁과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게 국민들의 인식인 것 같은데….

“공감합니다. 저는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보다 좀더 근본적인 시각에서 정치개혁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틀을 고쳐야 합니다. 지금 우리 정치의 틀은 3개의 지역정당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정계개편을 통해 양대정당제로 틀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양대정당은 단순한 지역감정이나 정파적 이해를 위해 투쟁에만 매달리는 수준을 넘어서 정책과 인물을 갖고 경쟁하면서 정권을 획득하고자 노력하는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제가 굳이 양당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될 때 정책과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경쟁이 가능해지고, 그런 경쟁이 계속되다 보면 지역정당 지역갈등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 사회에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해결해나가는 정치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정치가 정당과 국회 중심으로 옮겨와야 합니다. 거기에서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 국민이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 전문가들의 참여 속에 대화 타협 조정을 해나간다면 해결책이 하나씩 둘씩 나올 수 있는 겁니다.”

─ 흔히 우리 정치를 20세기적인 낡은 틀 속에 묶고 있는 것이 3김 정치라고 합니다. 이위원께서는 21세기에도 계속되는 3김정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산업화와 민주화가 역동적으로 함께 추구되던 시대의 산물이 3김정치라고 생각합니다. 3김 중에 두 분은 민주화 투쟁의 지도자였고 한 분은 산업화의 지도자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산업화다 민주화다 하는 함성은 귀에서 거의 멀어져가고 있어요. 어느 정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국민들이 새로운 미래, 우리가 가야 할 목표와 비전을 우리 정치에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게 시대적 요구가 달라졌다지만 그 분들을 대체할 만한 리더십이 국민앞에 등장하지 못하는 데서 혼란과 구태의연한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저도 그러한 소명의식 때문에 지난 대선에 출마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는 과정에 우리 역사에 기여했던 3김 시대가 빨리 끝나고 젊은 세대가 새로운 비전과 철학, 세계관을 가지고 한국의 정치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은 5년간 3김 시대의 연장을 선택하셨죠. 이분들이 5년간 국가경영을 마치면 3김 시대는 물리적으로도 더 이상 연장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정치인들은 나름대로 새로운 시대의 정치를 설계하고 준비하고 힘을 길러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총선 이후에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형성되면서 본격적인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국가경영을 책임진 대통령과 총리께서도, 자신들의 철학과 비전 세계관을 가지고 국가를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면서 그 이후에 다음 세대들이 순조롭게 미래를 향해서 국가를 경영해 나갈 수 있는 큰 틀과 길을 열어주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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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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