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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PD교수’ 주철환의 방송 바로잡기

“얼굴 몸매 학벌의 3대 차별을 없애라”

  • 김보선 자유기고가

“얼굴 몸매 학벌의 3대 차별을 없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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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PD에서 교수로 변신한 주철환씨는 가요계의 10대 편중 현상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그가 더 걱정하는 문제는 TV가 알게 모르게 묘한 차별의식을 조장하는 것이다.》
스타PD란 말이 있다. 프로듀서가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린다는 뜻이다. 정치 드라마는 고석만, 영상은 황인뢰, 트렌드 드라마는 이진석, 30대 드라마는 이창순, 사극은 김재형…. 방송에 별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그러나 방송가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PD를 꼽는다면 주철환씨(45)다. 특히 대학생들은 주철환씨에게 방송계의 ‘마이더스 손’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스타 기질이 다분하다. 우선 히트 프로그램이 많다.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MBC 대학가요제’ 등 방송가의 대표적인 히트 오락프로그램이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PD로는 드물게 무려 7권의 방송관련 책을 내는 등 글쓰기로도 유명하다.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에 재미있고 읽히기 쉬운 글에 각종 강연의 단골 강사, 거기에 손석희(아나운서)라는 또다른 방송 스타의 매형이라는 집안 조건까지 갖추었으니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어쨌든 스타PD라는 말은 그만큼 방송가에서 ‘잘나간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그가 얼마 전 17년간 갖고 있던 MBC PD라는 직함을 버리고 이화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 부교수)로 변신했다. 잘 나가는 PD가 왜 방송을 떠났을까? 단순히 한국적 상황에서 명문대 교수라는 타이틀이 PD라는 직함보다 더 출세한 것이라는 세속적 판단 때문일까? 변신에는 나름대로 명분이 있을 것이다. 그의 변신은 자의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유쾌한 긴장

교수로 변신한 직후 한국프로듀서연합회보에 기고한 그의 글에 따르면 이화여대로부터 제의를 받고 몇 개월 동안 ‘유쾌한 긴장’을 즐기면서도 MBC를 떠날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정식교수로 첫 강의를 시작한 3월3일, 주철환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좀더 ‘영향력’을 갖기 위해 교수로 변신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최고의 PD는 방송사 사장”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그 말은 곧 일개 PD로(비록 스타PD라 할지라도) 그가 꿈꾸는 이상을 펼치기에는 현재의 방송 현실이 뭔가 부족하고 잘못됐다는 것을 역설한다.

교수가 된 그는 약간은 긴장하고 있었다. 강의나 연구에 대한 부담감이 아니라 오락프로그램 PD출신이라는 주위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대한 부담이다. 인터뷰에 앞서 연구동 앞에서 사진 촬영할 때도 혹 다른 교수들이 여의도에서 연예인들과 놀다오더니 자신이 연예인인 줄 착각하는 것은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지나 않을지 조심스러워했다. 기자를 만난 전날까지만 해도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출근했다고 한다. 양복을 입을 일이 거의 없는 간편한 차림의 PD생활과는 다른, 낯선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연구실에 앉자 다시 즐겁고 편안한 얼굴로 되돌아왔다.

―대학에서 첫 강의가 낯설지 않나?

“강의가 처음은 아니다. 강의를 즐긴다는 생각이라 강의 자체에 대한 부담은 없다. 그동안 공부해오던 분야라서 웬만큼 준비도 돼 있다. 다만 전업교수라는 신분 변화와 주변의 호기심에 대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 조심스럽다.”

교수도 배우의 끼 가져야

주철환 교수는 알고 보면 강의 경력 21년째인 베테랑이다. 78년부터 몇 년동안 모교(서울 동북고)에서 국어교사로 교편을 잡았고 83년부터 87년까지는 고려대 대학원(국문과)을 다니며 교양국어 강사생활도 했다. 97년부터는 고려대, 98년에는 서울예대, 99년에는 중앙대에서 신방과 객원교수로 강의를 했다. 게다가 각종 세미나 초빙강연까지 더하면 대중 앞에 서는 강의에는 이골이 날 만도 하다. 인터뷰 중에도 5분짜리 초미니 강연 의뢰를 받기도 했다.

―어느 조사결과를 보니까 대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PD로 꼽혔던데 강의에서도 그만큼 인기를 끌 수 있겠는가?

“글쎄, 난 강의실의 시청률을 높이자는 주장을 한다. 요즘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 전체의 5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학생들도 문제지만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강단에 서는 선생님도 무대에 서는 배우처럼 끼를 가져야 한다. 학생들에게 깨달음만 주려고 하지 말고 즐거움도 줘야 한다. 그렇다고 수업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고 수업 방법을 달리하자는 거다. 가령 물리시간에 힘의 원리를 가르칠 때 인기가수들의 치열한 경쟁과 협력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수업 시청률이 굉장할 거다. 모교에서 국어 강의를 할 때 당시 인기 있던 산울림의 가사를 예로 들어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옆 반 다른 선생님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학생들이 재미있어했다. 지금도 당시 제자였던 최민수(영화배우)를 만나면 그때 수업이 정말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다고 말해 오히려 나를 감동하게 만든다.”

―17년 동안 일하던 MBC를 떠나 대학으로 왔는데 고민도 많이 했을 것 같다.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가?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이 내 강의에 보이는 열의와 진지함에 놀라고 있다. 그런 학생들 앞에 선다는 것이 참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피하다.”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MBC라는 조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망설이게 만들었다. 사실 MBC는 내가 지내기에는 말랑말랑한 조직이다. MBC 전체 사원을 통틀어 내가 MBC 직원의 이름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주위에서도 그건 인정한다. 지하 1층 안내데스크 아가씨부터 1층 구내서점 아저씨, 3층 예능국…그리고 10층까지 모두 이웃이고 친구였다. 그런 조직에서 잘 지내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들과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별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떠나기로 결심을 하니까 너무 행복했다. 나는 결심을 하기까지가 힘들지 한 번 결정한 후에는 쉽게 포기해버린다. MBC를 떠나는 아쉬움도 크지만 이화여대에 와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하니 행복할 수밖에. 젊은이들을 만나는 것도 그렇고 이제껏 보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던 영화나 공연, 눈치보면서 했던 글쓰기 등 말 그대로 ‘시간을 디자인할’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됐다. 오히려 MBC라는 조직을 떠남으로써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빨리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에 대한 영향력

―왜 옮겼나?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나에게 프로듀서란 의미는 ‘기쁨의 프로듀서’였다. 그동안 쇼, 코미디, 약간의 교양성을 가미한 오락프로를 만들어왔지만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정열을 쏟은 프로를 만들고 난 뒤의 자기만족이나 자아도취다. 내가 만든 프로가 수많은 사람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또 하나는 그런 프로를 시청자에게 보여주며 약간이라도 기쁨을 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PD가 아닌 관리자나, 지시나 확인하는 매니저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랫사람들에게는 프로그램 기획을 지시하고, 제대로 했나 확인하고, 윗사람들에게는 시청률이 왜 오르지 않는지, 새 기획이 뭔지 브리핑하고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CP나 편성기획부장(그의 마지막 보직)은 즐거움을 주는 자리가 아니었다. MBC 로고송처럼 ‘기쁨주고 사랑받는’ PD가 되고 싶었는데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 등 차례로 하나씩 올라가면 갈수록 ‘기쁨 주는 PD’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또다른 이유는 힘과 권력을 가지고 싶어서였다. 세속적인 권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좀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싶었다. PD가 대학교수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PD 주철환의 말보다는 PD 경험을 가진 대학교수 주철환의 말이 대중을 설득하는 데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에 대한 영향력을 말하는가?

“대중문화에 대한 영향력이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대중문화를 통한 정신세계 고양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일을 하는 데 좀더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교수라는 자리가 무게가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내가 하는 말이 듣는 이에게 얼마만큼 파장과 지속력을 가지는지가 중요하다. 대중문화에 대해 PD 주철환이 말하는 것보다 교수 주철환이 하는 말이 더 권위가 있고 설득하는 힘이 있지 않겠는가.”

―글쓰기나 수많은 인터뷰, 대중강연도 그런 영향력을 위한 것인가?

“틀린 말은 아니다. 가끔씩 명성(fame)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 싶다. 난 어떤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대중적 인기를 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이미지 관리를 통해 명성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미지관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글쓰기나 강연은 그런 수단의 하나다.”

―이미 스타PD 아닌가?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하다. 영향력은 뭔가를 제패하거나 헤게모니를 잡는 그런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설득을 위한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다. 말은 설명과 설득 두 가지가 있다. 설명은 이렇게 이해하라는 노골적인 설교와 같다. 그러나 설득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이해하게 만드는 거다. 가령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도 말을 하는 사람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끄집어내도록 하는 거다. 대중문화 수준을 높인다는 목표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내가 하는 말이 좀더 설득력 있게 들리도록 해야 하는 거다. 지금까지는 대중문화의 전달자인 PD로서 경험적이고 직관적인 설득을 했지만 교수가 된 이제부터는 좀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을 위해 노력해야할 것 같다.”

―MBC를 나온 결정적인 이유가 윗사람과다퉈서라는 소문이 있는데?

“정말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우연과 돌발적인 한순간에 이뤄진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와여대에서 작년 8월부터 (교수직을) 제의했지만 솔직히 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 다만 유쾌한 긴장감만 느끼고 있었다. 그 와중에 최종 결정을 앞둔 날 윗사람과 의견대립이 있었다. 다툼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이야기한 거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여기저기 뛰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분은 안정적으로 자리에 앉아 있기를 원했다. 글쓰기나 외부 강연이나 그런 일은 그만두고 본업에 충실하라는 거다. 그분이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건 내게서 즐거운 부분을 잘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는 내 명성을 이용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힌 것도 사실 아닌가.”

―17년 동안 PD생활을 하면서 성공한 작품도 많지만 실패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PD로서 이루지 못한 부분도 많을 텐데?

“가장 아쉬운 점은 야단스럽지 않으면서 흐뭇한 감동을 주고 그러면서도 시청률도 높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난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를 유명하게 만든 ‘퀴즈 아카데미’는 조금은 그런 프로에 접근했다. 당시 32~35살의 정열이 넘치던 때였다. 그러나 이어 만든 ‘TV 청년내각’은 실패했다. 나는 MBC를 떠난 것이지 연출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직에 몸담았을 때보다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나 재량이 더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학교측도 음대교수가 콘서트를 열고 미대교수가 전시회를 통해 연구결과를 내세우듯 방학중에 논문 대신 좋은 프로를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교수가 된 지금은 방송사 조직원일 때와는 다른 시각에서 프로를 만들 생각이다. 공중파 방송과 차별되고 명분이 있고 또 시청률도 확보할 수 있는 프로를 기획하겠다.”

오락프로의 ‘마이더스 손’이라는 주철환 PD가 모든 프로에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는 386세대의 정서를 이끄는 ‘마이더스 손’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 PD라면 팬클럽은 386세대”라고 한다. 386세대와 함께 성장한 인기 PD라는 거다.

그는 30대 초반의 열정으로 당시 386들이 주인공이던 ‘퀴즈 아카데미’(87.10~90.7)를 연출해 떴다. 그리고 그 대학생들이 군에 있을 때는 ‘우정의 무대’(90.10~91.10)를 히트했고, 그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웃음을 주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91.10~93.10, 95.1~ 95.10)를, 이어 젊은 날의 추억을 되새겨 준 ‘MBC 대학가요제’(94~99)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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