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김비서는 포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알려고 했다”

3시간동안 김용순 비서 만난 유상부 포항제철 회장

  • 안기석·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입력2006-08-11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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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유상부(劉常夫·58) 포항제철 회장을 만나려고 한 것은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유상부 체제 흔들기’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유회장 교체설을 흘리는 정치권의 외풍이 솔솔 불었던 것. 여당의 몇몇 중진 의원들이 포철의 대부인 박태준(TJ) 전총리의 지원으로 회장에 취임한 유회장을 퇴진시키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는 소문이었다. 유회장의 후임으로 전직 장관과 국회의원의 이름이 거명되기까지 했다.

    임기 후반기에 나타나는 여권 인사 자리 챙기기의 소산일까. 아니면 지난 3월 주총에서 재선된 유회장에 대해 불만이 있는 일부 여권 인사들의 정치적 애드벌룬인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먼저 유회장에 대한 주변 평가부터 들어보았다. ‘약간 무뚝뚝하고 원칙적이다’ ‘정치권의 인사 청탁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미움을 샀을지도 모른다’는 시각이 있었지만 전문경영인으로서는 모두가 높은 점수를 줬다.

    실제로 IMF 관리 체제 직후인 98년 3월에 취임한 유회장은 국내외 과잉투자 사업을 신속하게 취소·축소하고 고수익 위주로 계열사를 구조조정하는 과단성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사외 이사를 과반수 이상 두는 등 투명경영을 제도화했다. 그 결과는 98년과 99년 연속 세후 순이익 1조원 이상의 성과를 올리는 등 포철을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로 도약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1월 유명 경제지 ‘포브스’지는 세계 400대 기업중 금속광업 부문 1위로 포스코(포항제철)를 꼽았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이런 성과를 올린 유회장의 임기가 2년반이나 남았음에도 ‘교체설’이 도는 것은 뭔가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을 듯했다.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을 던질 계획으로 9월14일 오전 서울 강남의 포항제철 회장 접견실에서 유상부 회장을 만났다. 29층에 위치한 회장실은 강남의 번화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김용순은 재미있는 사람”



    접견실에 들어서는 유회장은 무척 기분이 좋아보였다. 유회장은 바로 전날 포항에서 김용순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를 접대하고 돌아온 길이었다. 자연스럽게 김용순 비서에 대한 인상부터 물었다. 유회장은 ”김용순 비서가 특별히 포항제철을 선택해주셔서, 덕분에 추석 연휴 이틀을 포항에서 잘 보냈습니다. 참 재미있는 분입니다.”라고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유회장은 이날 인터뷰의 절반 가량을 김용순 비서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는데 할애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과 함께 보낸 3시간의 생생한 여운이 말 사이 사이에 그대로 배어나왔다. 그래서 인터뷰의 무게 중심을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유회장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가장 ‘새로운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김비서의 어떤 점이 재미있었습니까.

    “북한 인사들이라고 하면 우리는 뭔가 폐쇄적인 느낌을 받지 않아요? 그러나 김용순 비서는 전혀 달라요. 아주 개방적입니다. 상당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그 자신감 속에는 콤플렉스도 약간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이 그렇던가요.

    “조그만 깊이 대화해보면 금방 감지할 수 있잖아요. 포철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질문이 굉장히 많아요. 둘이서 차 타고 가면서도 한참 동안 얘기했어요.”

    김용순 비서는 포항제철에 3시간 머물렀다. 유회장과는 승용차안에서 20여분간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 과정에 유회장은 김비서가 포철을 상당히 부러워하는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궁금해 질문을 던져 보았다.

    ―김용순 비서가 제철산업에 대해서는 잘 모를 텐데… .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질문 내용을 미리 정리해온 것 같아요. 원자재 조달에서부터 생산과정과 제품 종류, 심지어 강판의 두께와 환경문제까지 일일이 질문을 해요. 철강산업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일관된 질문을 하기가 힘듭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하게 되면 그 기업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거든요.”

    ―미리 예습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군요.

    “글쎄요. 김비서가 평소에 그 정도 식견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요. 그 정도 위치에 있으면 김정일 위원장이 현장을 지도 방문할 때 사전에 체크하는 방식을 익히지 않았겠어요.”

    ―포항제철 방문은 미리 예정돼 있었던 것 아닙니까. 김용순 비서가 국내 많은 기업 중 왜 포철을 택했다고 생각합니까.

    “글쎄, 김정일 위원장이 답방할 때를 대비한 사전 답사의 성격도 있겠죠. 그리고 18일 내려오는 경제고찰단, 즉 경제시찰단이 포항제철을 꼭 방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식량사정이 어려운 북한에서 제철산업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군요.

    “제철산업이라고 못박아 말하지는 않았어요. 김용순 비서가 말한대로 옮기자면 ‘신이 우리 조선반도에 남쪽에는 풍부한 농산물을, 북쪽에는 풍부한 지하자원과 공업용수를 주지 않았느냐. 우리가 합했으면 강성대국을 만들 수 있었는데…’ 라는 거지요. 앞으로 남북이 합치면 새로운 기회가 온다는 다소 정치적인 색깔이 있는 발언이었어요.”

    “김비서, 환경문제 관심 많아”

    ―포항 제철 현장에서는 어디에 관심이 많았습니까.

    “원래는 제4고로와 제2열연을 방문할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우리가 만든 홍보용 비디오를 보는 것으로 대체했어요. 가장 관심을 보인 부분은 역시 컴퓨터로 전 생산시스템을 통제하는 것이었어요. 최첨단 시스템이 놀라웠든지 한동안 말을 잊는 것 같았어요.”

    ―김비서가 상당한 충격을 받고 돌아갔겠군요.

    “속내야 알 수 없지만 포항제철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철강업체로 성장했는지가 놀라웠겠죠. 물론 그분은 제주도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지만 남북을 갈라서 생각하지 않고 내 나라 내 조국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하더군요. ‘내 것도 내 거고 네 것도 내 거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다소 그런 경향이 있었어요.”

    유회장은 이 말을 한 후 껄껄 웃었다. 유머감각이 있는 김용순 비서 특유의 말투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그렇게 유들유들한 김비서도 유회장이 무심결에 꺼낸 북한의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는 정색을 하고 일장 ‘연설’을 한 모양이다. 유회장은 91년 10월경 방북했을 때 김책제철소를 둘러본 경험이 있는데 당시 북한에서는 기름이 부족해 에너지 사정이 어려웠다.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 김비서를 조금 자극했던 모양이다.

    “제가 에너지 문제를 거론하자마자 김비서는 ‘경애하는 김일성 수령께서 에너지란 공업의 기본으로서…’를 말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에너지 문제가 심각한 원인을 서방쪽에 전가하면서 자기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려고 노력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거지요.”

    김용순 비서는 포항제철의 생산시설뿐 아니라 환경문제, 근로자 주거지 문제와 교육 문제 등 전반적인 분야에 관심을 표명했다고 한다. 유회장의 눈에는 김비서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북한에 적용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을 만하다.

    “사원주택 자금을 지원하는 문제, 포항공대가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내는 것 등을 이야기하다가 예전에 모스크바대 총장이 포항제철을 방문했을 때 그분이 제게 한 말을 김비서에게 들려줬어요. 그분은 제 설명을 듣고 나서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 국가가 이룩하려고 했던 목표인데 어떻게 사회주의 국가는 이것을 못하고 자본주의국가에서 이것을 실행했느냐’고 말했거든요.”

    ―김비서가 뭐라고 반응하든가요.

    “특별히 기억나는 말은 없고 자동차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더군요. 김비서가 ‘자동차가 오죽 많습니까. 눈에 밟히는 것이 자동차인데 출퇴근할 때 자동차를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어요.

    그래서 포항제철 직원 가구당 자동차 소유율이 97%인데 맞벌이하는 부부의 경우는 한 가구당 2대씩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100%가 넘는다, 그래서 교통 문제와 주차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 생활 수준과 경제수준을 은근하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된 셈이죠. 김비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성장과 번영을 북쪽에 이전할 수 있는가 하는 방향에서 자꾸 질문을 했어요.”

    김용순 비서가 포항제철의 어떤 측면을 탐색하고 돌아갔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러면 경의선 복원 등 남북 경협이 활성화되는 이때 포항제철의 노하우 전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을까. 일단 우회적으로 유회장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포항제철의 노하우를 북쪽에 이전하는 데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철강업은 훌륭한 설비와 생산기술이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항만 도로 철도 전력 통신 공업용수 등이 있어야죠. 생산을 제대로 하려면 원자재의 공급도 원활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철업이 가능하려면 그 주위에 제품을 사줄 만한 시장이 있어야 합니다. 즉 사회간접자본과 시장, 원자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협력 산업이 균형있게 갖춰져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북한의 제철산업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우리도 30년전에는 거지였어요. 제가 알기로는 우리가 북한을 따라잡은 것이 1978년도부터였어요. 우리가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지 못하고 까불면 안되죠. 특히 기초기술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북한이 나았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기초기술을 쌓기 시작한 데 비해 북쪽은 1930년대부터 기술을 축적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현대화된 기술, 즉 컴퓨터로 제어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은 북쪽이 아직 진전이 안돼 있지요. 우리가 가진 최첨단 기술과 경영시스템 기법을 전수하려면 북쪽과 먼저 합의해야 할 것이 있어요.”

    ―이번에 김용순 비서와 특별히 합의한 것은 없었습니까.

    “북한의 경제고찰팀이 내려오면 방문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외에는 특별한 부탁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구태여 그쪽 자존심을 건드릴 필요가 없으니까 사실대로 보여주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씩 대응해나갈 생각입니다. 마치 실타래를 푸는 자세로 해야죠. 정치적인 일이야 악수 한번 하는 것으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경제와 산업에 관한 문제들은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합의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경의선 복원이 시작되면 포철 제품이 깔립니까.

    “레일은 우리가 원자재를 제공하면 관련회사에서 만들게 됩니다. 우리가 직접 제공하는 것은 배수관입니다. 공기를 짧게 하기 위해서 강철 배수관을 쓰게 되는데 우리 제품이 경의선 밑에 깔리게 되는 셈이죠.”

    북한 체류 요청 받기도

    ―유회장은 91년에 김책제철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어떤 경위로 가게 됐습니까.

    “당시 북한에는 김달현 부총리가 있었어요. 그때 김일성 주석이 철강업을 국가 역점사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시했어요. 그런데 공장 가동률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바람에 김 주석이 기술적인 문제 등을 알아보기 위해 전문가를 불러오라고 했지요. 당시 김우중 회장이 북한을 드나들었는데, 김회장이 안기부장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께 보고하고 노대통령이 박태준 전총리에게 말해서 박전총리가 저를 지목한 겁니다. 8일동안 북한에 머물렀어요. 북쪽에서 ‘공무려권’을 내줬고 재영 동포가 운영하는 회사의 전무로 직함을 바꿔 들어갔지요. 평양과 청진에 머물렀어요. 김책제철소를 둘러보고 어드바이스도 해줬지요.”

    박태준 전총리가 유회장을 지목한 것은 철강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 때문이었다. 토목공학도 출신인 유회장은 광양제철소를 지을 때 건설본부장을 맡아 철강산업 전반에 대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어떤 어드바이스를 해줬습니까.

    “워낙 다양해서…. 갖다와서 리포트를 하나 써줬어요. 그 사람들이 질문한 내용에 대한 답변과 기술도입에 대해 자세하게 썼어요. 그 리포트를 북경에 가서 김달현 부총리에게 주고 설명까지 했어요. 김달현 부총리는 참 아는 것이 많은데, 성품은 소탈했어요. 화공학과 출신으로 같은 공학도여서 대화도 통하고….”

    ―일종의 컨설턴트 역할을 하신 거군요.

    “그런 셈이죠. 설명이 끝나자 김달현 부총리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 저에게 1년동안만 북한에 머물면서 도와달라고 해서 혼났어요. 농담하지 말라며 거절했어요. 철강업은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아 한사람이 도와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일 필요하면 우리 기술진을 통해 자문을 해주겠다고 했지요.”

    유회장은 당시 북한 체류 요청을 피하기 위해 한 약속이었지만 9년 후에 공교롭게도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됐다. 가장 먼저 김용순 비서에게 자문을 해줬고 이제 북한의 경제고찰단에게 또 한차례 자문을 해주게 되는 셈이다.

    이제는 애초 궁금하게 생각했던 정치권의 유회장 흔들기 내막에 대해 물어볼 차례다. 유회장은 취임 직후 “정치권과 선을 긋고 포철을 독자 경영 체제로 만드는 게 내 임무”라며 자신을 지원해준 박태준 전총리의 민원조차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민원과 청탁이 통하지 않자 상당한 불만이 쌓였다는 것.

    “TJ 청탁 거절한 적 있다”

    ―최근 언론에서 아직도 임기가 남아 있는 유회장 후임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데… 혹시 정치권의 인사 청탁을 자주 거절해서 밉보인 것 아닙니까.

    “그런 것은 아니고요. 제 문제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거론되고 있는 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일은 정부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포항제철이 정부의 개입으로 철강제품을 싸게 수출해 미국 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으므로 민영화해야 된다고 미국 통상부에서 수도 없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이런 마당에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회장을 권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비치는 기사가 나가는 것은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또 정부에 그런 의사도 전혀 없고요. 어떤 경우든지 법과 정당한 절차에 의해 이뤄져야죠.”

    ―박전총리의 역할이 없어지게 되자 여권 일각에서 흔든다는 시각도 있는데… .

    “이제 그런 잘못된 시각은 없어져야죠. 그래서는 선진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변에서 반사이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우리 정부의 지도층은 추호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박태준 전총리의 인사 청탁까지 거절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은 정치를 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포용해야 합니까.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탁이 들어와도 선의의 노력을 보여줘야 되기도 하고요.

    정치인으로서는 그런 모습이 미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인으로서는 내부 구성원들에게 위해가 될 수 있을 경우 ‘안됩니다’라고 분명히 이야기해야죠. TJ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정당하지 않은 청탁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포철 CEO의 책무입니다. 그것은 칭찬받을 일도 아니고 원칙을 지키는 것일 뿐입니다.”

    ―TJ는 그런 면을 이해해줬습니까.

    “이해해주셨으니까 ‘섭섭하지만 당신 말 맞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겠어요. 저를 키워주신 분 중 한 분인데 얼마나 섭섭하셨겠어요. 그래도 제 말이 맞다고 격려해주셨으니 훌륭한 분이시죠.”

    ―혹시 대통령이나 영부인의 친인척을 사칭하며 청탁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었어요. 대통령까지는 아니고요. 일부 알만한 사람의 이름을 빌어 청탁하는 것을 합동 작전으로 잡은 적은 있어요.”

    ―실세를 사칭하면 대부분 확인하기가 힘들지 않아요.

    “아닙니다. 반드시 확인합니다. 당사자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칭한 사람이라고 확인이 되면 그 다음에 전화가 올 때 주소나 위치 등을 확인해 잡습니다. 사칭된 당사자들도 덕분에 골칫거리 잡았다고 좋아하지요.”

    ―요즘 거론되는 박지원 장관이었습니까.

    “넘겨짚지 말아요. 다른 분이었습니다.”

    ―유회장 취임 직후에 아태재단 관계자가 찾아와서 청탁을 하려는데, 유회장이 너무 차갑게 대해서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어요. 그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했는데…. 당시 나는 우리 조직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분은 어려운 시절에 고생하던 동지들을 위해 배려할 위치에 있었기 때문인데…. 나중에는 오해가 풀렸어요.”

    유회장의 원칙에 대한 고집은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낳았다. 그중 하나가 전두환 전대통령 취임 직후의 일. 당시 청와대는 현대제철소의 아산만 건설을 지지한 반면, 포항제철이 광양제철소를 짓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광양이 제철소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유회장은 청와대의 강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관철시켰다는 것.

    유회장이 포철에 사상 유례없는 이익을 안겨준 배경에는 이처럼 원칙에 대한 고집, 신속한 구조조정 외에도 인력관리에 대한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

    “사실 인력도 구조조정해야 하는데 저는 하지 않았어요. 1200명 정도는 퇴직시켜야 되는데 그럴 경우 후유증이 너무 크다는 판단을 한 겁니다. 간부 이상급 90명은 명예퇴직을 했지만 일반 직원은 한 사람도 자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생산력이 증대됐어요. 더 열심입니다.”

    유회장이 신설한 포철내 인터라넷 자유게시판인 포스비(POS―B)도 화제다. 이 게시판에는 익명으로 자유 의견들을 올리는데 경영에 반영해 도움 받은 내용이 많다는 것.

    “올해초 제가 외국에 출장나가 있을 땐데 인터넷으로 사내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까 난리가 났어요. 퇴직금 중간정산제 도입 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를 무기명으로 해야 하는데 일부 부서에서 기명을 요구하는 바람에 반대 여론이 막 올라오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바로 전화를 해서 철저히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라고 지시했어요.”

    경남 거창 출신으로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유회장은 70년부터 포항제철에 근무하기 시작해 포항제철 부사장, 삼성중공업 사장 등을 역임했다. 부인 이남경씨(55)와의 사이에 1남1녀가 있다.

    “주색잡기 중 색만 빼놓고 다 해봤는데 색은 마누라가 너무 예뻐서 못했다”고 할 정도의 애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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