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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의 기인·괴짜 10인 열전

‘행복학’ 강사로 뜬 사람 사귀기 귀재 최윤희

  • 이나리

‘행복학’ 강사로 뜬 사람 사귀기 귀재 최윤희

  • 경력 16년 전업주부에서 일약 스타 카피라이터로.
  • 김용옥부터 수원역 걸인까지 “세상에 감동 아닌 사람이 없다”는 호기심의 천재. ‘행복학 박사’의 유쾌하고 맵싸한 도발.
“아니, 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는 거야? 정말 신기해 죽겠네!”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최윤희(54세). 방송인이자 ‘행복학’ 강사로 더 유명한 그녀가 자고 나면 외치는 말이다. 새 사람을 알고, 그들과 대화하고, 감동을 나누는 것이 너무 좋아 매일이 행복한 여자.

그러나 진정 매혹적인 사람은 그녀 자신일지 모른다. 그녀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깊이 들어주는 능력. 아내에게, 부모에게도 숨겨오던 아픈 비밀을 무작정 털어놓게 하는 능력. 그리하여 훤히 드러난 상처에 눈물 고약 바르고 공감의 숨결 불어넣어 치유하는 능력. 탁월한 말솜씨 글솜씨를 타고났지만 애써 자랑하지 않고, 봄날 가랑비처럼 타인의 삶에 조용히 스며드는 사람. 또한 생의 파격을 사랑해 언제고 폭죽처럼 팍 터져버릴 준비가 돼 있는 열정의 50대.

최윤희가 만나고 사랑하는 이들의 범위엔 한계가 없다. 도올 김용옥부터 수원역 걸인 할머니까지. 빵모자에 검은 배낭, 별것 아닌 얘기에도 소녀처럼 눈 반짝이며 ‘어쩜, 어쩜!’을 연발하는 그녀 앞에서 맘 열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목석이 몇이나 될까.

우리 시대의 마음 사냥꾼

최윤희는 이화여대 국문과 65학번이다. 교지 ‘이화’와 인문대 잡지 ‘녹원’ 편집장을 겸임한, 글 잘 쓰고 콧대 높은 독서광이었다. 대학 3학년, 잡지 제작을 위해 자주 찾던 코리아헤럴드 편집실에서 한 ‘볼품 없는’ 남자를 만났다.

“첫 눈에 뿅 갔죠.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저 사람은 분명 하숙을 할 거야, 저 사람 집에 가서 양말을 빨아주고 싶다….”

교수들의 중매 제안에도 꿈쩍 않던 그녀를 함락한 건 야간 대학 출신의 가난하고 고지식한 말단 공무원이었다. 가족들의 거센 반대를 물리친 최윤희는 졸업한 그 해, 응암동 달동네 보증금 16만원짜리 월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가난했죠. 억지로 낸 부엌이 너무 좁아 임신했을 땐 몸을 옆으로 돌려세워야 겨우 출입이 가능했어요. 그래도 마냥 행복했어요. 전 원래 자타가 공인하는 3대 천재거든요. 호기심의 천재, 망각의 천재, 착각의 천재. 제 사전에 ‘더, 더’는 없어요. 오직 ‘다, 다’가 있을 뿐.”

그녀는 타고난 ‘천재성’을 유감 없이 발휘, 동네를 연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동네아줌마들과 희희낙락하기, 아이들 집합시켜 신문사·빵공장 견학 가기, 남편 귀가가 늦으면 그 다음 날 갓난아기 들쳐업고 나가 5분 더 늦게 들어오기.

30대 중반, 문공부를 거쳐 KBS에 근무하던 남편이 사업을 한다고 나섰다가 폭삭 망했다. 쫓겨가듯 이사 간 부산에서의 힘겨운 1년. 남편이 KBS에 재입사하면서 다시 서울살이를 시작했지만 막막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때 현대그룹에서 주부사원을 공개채용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6년 동안 ‘100% 순수, 완전 무공해 전업주부’였던 그녀로선 벅찬 도전이었다. 서류심사, 영어시험, 계열사 사장단 면접, 정주영 회장 단독 면접….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긴 했는데 맡겨진 일이 황당했다. 금강기획 카피라이터. 응시자 1331명 중 자기소개서가 가장 뛰어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자기 소개’의 말은 한 마디도 없고 덩그마니 적혀 있는 창작동화 한 편. ‘특기’란엔 ‘사람들이 절 두 번만 만나면 비밀을 털어놓는데 그것도 특기가 될 수 있는지…’, ‘취미’란에는 ‘멍하니 하늘 쳐다보기, 바람맞으며 무작정 걷기’라고 써 놓은 기발함도 한 몫을 했다.

남자 직원들은 38살의 ‘아줌마’ 카피라이터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용감무쌍, 새벽부터 죽어라 일하고 공부하며, 은행 심부름까지 시키는 상사의 ‘퇴출 작전’에도 ‘발상의 전환’으로 맞섰다.

“K차장의 야간대학원 등록금을 대신 내러 가는 길이었어요. 공사중인 골목을 힘겹게 헤쳐가려니 절로 눈물이 나더군요. 문득 하늘을 봤죠. 새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정말 탐스러웠어요. ‘아, 그렇구나,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1985년 9월 17일 오후 3시35분의 저 하늘, 저렇게 멋진 하늘을 못 보고 말 뻔했어. 지금 이 순간은 내 인생에 딱 한 번뿐이잖아? 난 역시 행운아야!’ 돌아와서 그분 책상 위에 메모를 남겼죠. ‘덕분에 좋은 여행했습니다.’”

못 말리는 유머감각에 ‘온 몸을 던지는’ 대화법. 오래지 않아 그녀는 동료들에겐 없어서는 상담역이자, 회사의 간판 카피라이터가 됐다.

사람을 보면 우선 이쁜 점부터 찾고 보는 그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을 땐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한 상사가 충고했다.

“직장생활 하시려면 두 개의 얼굴을 가지셔야 합니….”

그녀는 상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꽥 소리를 질러버렸다.

“두 개의 얼굴로 사느니 인간 최윤희로 회사를 그만두겠어욧!”

차장, 부장, 부국장으로 승진을 거듭할수록 ‘최윤희식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아침 회의 때 업무 얘기는 5분만, 나머지 시간엔 각자 어제 있었던 일들을 자유롭게 떠들었다. 남자 직원들은 홍등가에 간 얘기까지 털어놓았다. 회식은 영화 아니면 연극 보기. 크리스마스 때는 직원들 직급에 ‘거꾸로’ 선물을 사주었다. 가장 비싼 선물은 제일 낮은 직원에게. ‘맛있는’ 삶을 공유하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이렇듯 재기발랄한 그녀의 남편은 의외로, 매우 보수적인 경상도 남성이다. 최윤희의 표현을 빌리면 ‘정직하고 반듯하기가 정사각형 같은 사람, 치약 하나 짜는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 어느날, 그녀는 남편에게 공언했다.

“자기는 막다른 골목길이야. 최소한 자동차 두 대는 왔다갔다할 수 있어야 사고가 안 나지. 그래서 내 1단계 목표는 자기 마음 속 길을 뚫어 2차선 도로로 만드는 거야. 그러나 최종 목표는 10차선 고속도로, 공사비는 완전 무료. 어때, 절로 기대가 되지 않아? 공사기간 단축해달라고 요구하면 하루 만에도 완성해줄 수 있어.”

그래도 묵묵부답인 남편. 최윤희는 멀쩡히 앉아있는 남편의 뺨을 살짝 갈겼다. 그리고 태연스레 말했다.

“빛의 속도로 다가가는 애무야.”

‘확장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남편은 제법 웃길 줄 아는 사람이 됐다. 그런 아버지를 딸, 아들 남매는 ‘최윤희 표 작품’이라 부른다.



눈치·코치·염치가 없는 사람

93년 금강기획에서 설립한 현대방송의 홍보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기자들 상대하는 것이 일. 당시 최윤희는 기자들 사이에서 ‘친구 같고 엄마 같은 취재원’으로 인기를 누렸다. “기자와 정자의 공통점은 사람이 될 확률이 1억분의 1밖에 안된다는 것”이라는 후배의 비아냥에도 “아냐, 얼마나 순수한 사람들인데!”를 연발하며 행복해하길 그만두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한파가 닥치자 그녀는 회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표를 던졌다. “내가 나가면 젊은 친구 세 명은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52세의 여성 실업자. 그런데 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강의, 책 쓰기, 방송 출연, 영상물 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서울특별시 심의위원, 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 위원…. 그동안 ‘행복, 그거 얼마예요?’ ‘어디서 감히 짹짹’ 등 두 권의 에세이집을 냈다. 고정 출연중인 라디오 프로그램만 5개. 쉬고싶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바쁜 요즘이다.

“그래도 참 재미있어요. 사람들 많이 만나고, 감동 받을 일도 숱하고. 목욕탕 가면 때밀이 아줌마랑, 집 앞 골목길에선 과일행상 아저씨랑, 조영남, 김용옥, 김지룡, 조용필, 또 스님이랑 수녀님들이랑….”

그녀의 사람 사귐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언젠가는 지하철을 돌며 구걸하는 장님 할아버지와 친구가 됐다. 할아버지가 걸고 있는 종이푯말엔 ‘나는 장님입니다’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최윤희는 할아버지와 몇 마디를 나눈 후 다짜고짜 펜을 꺼내 이렇게 고쳐 써줬다. ‘나는 아내와 두 딸이 있지만 그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효과가 좀 있더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반가워 어쩔줄 모르며 말했다. “수입이 세 배로 늘었어!”

또 얼마 전엔 인사동 길거리에서 두 일본 청년을 만났다.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다가온 그들이 서툰 한국말로 말했다.

“앉아도 되겠습니까?”

“네, 사실은 저도 아까 앉기 전에 의자한테 물어봤어요. 근데, 어디서들 오셨어요?”

이렇게 만난 그들과는 어느새 밥을 나누는 친구가 됐다. “보고 싶은 윤희씨…”로 시작되는 그들의 아침 문안 이메일로 인해 하루가 더욱 즐거워진 그녀다.

이런 일도 있다. 서울시청에 들어가려는데 전경 수십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중 한명에게 다가가 슬며시 물었다.

“저, 진실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무슨 일인가요?”

“알몸 수색에 항의하는 전교조 집회가 있어서요.”

“어머, 전교조. ‘나 교조’도 아니고 ‘전 교조’라니 참 겸손하네요. 그런 분들을 왜 벗기고 그러셨대요?”

인형처럼 서 있던 전경들도 푸하하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무채색인 그들에게 잠시나마 청년의 얼굴을 되찾아주고 싶어서였단다.

최윤희의 친구 만들기 비법은 뭘까.

“전 바로 들어가요. 쓸데없는 계산하느라 머리 굴리지 않죠. 눈치, 코치, 염치, 이 세 가지가 없는 사람이 바로 저거든요. 사람을 만나면 입술이 아니라 가슴을 노크해요. 고향이 어디냐, 직장이 어디냐, 그런 거 말고, 무슨 색깔을 좋아하죠, 관심사가 뭔가요, 이런 것부터 묻는 거지요.”

답답한 이에겐 “어느 쪽으로 창문을 내드릴까요”하고, 잘난체 하는 이에겐 “왜 그렇게 힘들게 사세요”라고 눈 동그랗게 뜨며 물어본다.

‘세상에 감동 아닌 사람이 없다’는 우리 시대의 마음 사냥꾼 최윤희. 그녀는 아직 소녀, 아니 개구쟁이 꼬마친구다. 마고할미의 지혜를 품은.

신동아 2000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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