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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인터뷰|노무현 의 大權 도전 구상

“대중적 폭발력으로 이변 일으키겠다”

  • 박성원swpark@donga.com

“대중적 폭발력으로 이변 일으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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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 시대에는 영·호남을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장관직을 마친 뒤 경선에 나설 것이고 정통 야당의 법통을 잇는 유력주자로 떠오를 것입니다.”
8·7개각으로 해양수산부장관에 취임한 노장관은 장관직을 맡게 된 것을 정치인으로서 좋은 기회로 여기는 것 같았다. 특히 여권의 잠재적인 차기 주자군의 한 명으로 거론되면서도 행정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약점을 갖고 있던 그로서는 국정을 맡기에는 다소 ‘튀는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을 불식하고 일종의 자질을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노장관은 이런 판단 아래 일찌감치 민주당의 8·30 전당대회 최고위원 출마를 포기하고 입각을 희망해왔다. 특히 해수부장관직은 부산·경남 지역의 ‘바다 민심’을 잡을 수 있는데다가 노동부나 보건복지부처럼 첨예한 이해집단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따르는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운행능력’을 검증받기에 다소 부담이 덜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장관직이 준 ‘기회’

그러나 경남 김해 출신인 노장관이 김대중(金大中)정권의 각료로 일하기까지는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고졸(부산상고)인 그는 75년 제17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대전지법 판사를 지냈으며 78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해오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87년 대우조선 이석규사건으로 투옥, 그 해 11월 변호사업무를 정지당하기도 했다. 88년 13대 총선 때 원내에 진출, 5공 청문회를 통해 스타로 화려하게 떠올랐으나 14대 총선과 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소속으로 부산에서 출마, 낙선했고 대선을 앞둔 97년 11월 국민회의에 입당, 98년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했지만 지난 4·13총선에서는 ‘지역감정 타파’를 명분으로 내걸고 다시 부산(북·강서을)에서 출마를 강행, 석패했다. 비록 ‘지역바람’에 밀려 낙선했지만 일관되게 명분있는 도전을 감행, 선전했다는 점에서 여권에서는 일찍부터 중용설이 나돌았다.

노장관은 장관직에 취임하면서 정부내에서 그 동안 한일어업협정 후유증 등으로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인 해수부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앞으로 야당의원의 입장이 돼 꼬치꼬치 질문하고 필요하면 전문가도 동원할 테니 모든 것을 솔직하고 자세히 답변하라.”

취임 직후 노장관의 일성이었다. 노장관은 실제 실·국별 업무보고를 장관실에 앉아서 받지 않고 한·중어업협정 후속협상 등 현안이 가장 많은 수산정책국을 시작으로 실·국장실을 직접 찾아다니며 받기 시작했다. 간부들이 내용을 상세히 모르거나 어업인 등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담당 사무관을 그 자리에 직접 불러 사실을 파악하거나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정책이 실제 효과를 얻으려면 현장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게 노장관이 강조하는 현장행정론이다. 해수부직원들은 노장관의 이런 스타일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노장관이 청사 17층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직원들 옆자리에 식판을 놓고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노장관은 출퇴근 시간에 현관문에서 ‘의전’을 갖추는 경비직원의 ‘중요업무’도 하지 못하게 했다.

─처음으로 정부에 들어와 일해보니 어떻습니까. 국회의원 할 때와 장관직 할 때, 어느 게 나은 것 같습니까?

“국회의원은 자유로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리라면 장관직은 주어진 직무상 많은 제약을 받지만 하나하나 구체적 성과물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데 보람이 있는 거 같아요.”

반(反)DJ 정서가 개혁 막아

─최근 김대중정부의 각료나 핵심인사들은 신문 보기가 겁난다고 할 정도로 국정위기론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벌써 레임덕이 온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김대중정부는 분명 역사에 기록될 만한 업적과 의미를 갖고 있지만 현재는 문제점과 부정적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정권운용에서 몇몇 핵심측근 또는 가신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운용한다든지 권위와 결정이 대통령에 너무 집중돼 있다든지, 대통령만 있고 장관도 주요 당직자도 사실상 없다든지 등등. 하지만 저는 그런 문제들이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럼 이 정권의 근본 위기랄까 레임덕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세요?

“이 정권은 출발부터 레임덕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거죠. 지지기반이 협소한 데서 출발했어요. 정책이나 논리를 갖고 비판당하는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비판당하고 비토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개혁이란 게 본디 그 가짓수가 많아질수록 반대세력이 많아지는 면이 있지만 이 정권의 경우는 무조건적인 반대세력이 두텁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것이 개혁을 지지부진하게 하고 순조롭지 못하게 한 큰 원인 중에 하나라고 봐요.”

─영남지역 정서가 김대중정부의 개혁정책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말로 들리는군요. 이 정부가 국민들로 하여금 거부정서를 강화시킨 경우는 없다고 보세요?

“물론 우리 정부도 문제점이 있었죠. 권력 내부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좀 깔끔하지 못한 점이 있었어요. 게다가 과거 권력이 해온 행태를 답습한 경우도 있어요. 예컨대 검찰조직을 통제하에 두려고 하거나 특검제 등으로 검찰을 무조건 비호하려는 인상을 준 겁니다. 검찰과 같은 공권력을 칼처럼 사용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시민들의 여론과 정서에 맞추는 획기적 전환이 있었어야 하는데….”

─특히 인사문제가 영남권에서 반DJ정서를 온존·강화시켰다는 지적이 많은데….

“호남 사람들을 많이 기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어요.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아닌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또 이 정부 들어서던 시기에 많은 구조조정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 떠나야 했던 사람들은 결국 불만의 화살을 호남 쪽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어요. 이런 정서는 어쩔 수 없어요. 중대선거구제가 됐더라면 지역구도를 좀 희석시킬 수 있었겠지만 국민들은 이를 거부해버렸어요.”

노장관은 이 대목에서 영남의 반DJ정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현실을 사례를 들어가며 탄식조로 말했다.

영남인들 맘에 들려면 DJ하야 밖에 없어

“제가 얼마 전에 부산에 가서 시민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여론주도층에 속하는 한 사람이 이래요. ‘아, 이거 부산의 민심이 너무 안 좋습니다. 대통령한테 가서 좀 잘하라 하이소’ 라고 말이죠.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물었더니 별방안은 없이 ‘그냥 좀 잘하라고 그래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어요. ‘(DJ가) 노벨평화상을 받아도 (영남 사람들은) 심기가 불편한 판인데 김대중대통령의 무슨 정책인들 당신들 맘에 들겠소. 딱 한 가지 길이 있기는 있겠지. 김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그만두면 기분이 좋겠죠? 그것밖에 없다는 거죠?’라고. 그 사람이 아주 미안해하면서 ‘듣고 보니 그렇네요’라고 말해요. 이런 판인데 김대통령에게 무슨 정책수단이 있겠어요?”

노장관은 이 대목에서 한숨을 깊이 내쉬고는 또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런 (영남의) 정서적 벽은 엄존한다고 치더라도 정부와 대통령은 이를 완화하려고 노력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요? 더욱이 영남권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민심이 이반해가는 현실이라면.

“물론 원인이 어디에 있건 지도자에게 책임이 있고 책임을 느껴야죠. 그러나 지도자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닙니다. 무엇을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처음부터 풀기 어려운 문제여서 여기까지 온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어요. 지도자 문제도 이 땅에 있는 지도자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지 뭐 하늘에서 떨어진 지도자를 갖고 문제를 풀어갈 수는 없는 겁니다. (김대통령이 아니라면) 다른 선택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 말이에요.”

─물론 김대통령이라는 제품 자체를 바꿔버릴 수는 없고, 이 제품의 성능을 가장 좋게 하기 위해 어떤 방도가 있는지가 논의의 초점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김대통령이 총재직과 당적을 내놓고 정쟁에 초연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게 좋지 않으냐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

“있을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봐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사항이에요. 꼭 당을 떠나지는 않더라도 미국식 대통령-여당 관계로 정비하는 방안 등의 정치적 결단도 있겠죠.

문제는 어떤 시대든 그 시대에 맞는 지도자가 있는 겁니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경제개발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갖고 있었던 거고 김대통령은 당 밖의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맞는 리더십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이 양반에게 다음 시대에나 있을 법한 완전한 당내 민주화 리더십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예요. 물론 대통령이 당에 역할과 힘을 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고 이런 구시대적 의식과 관행은 대통령이 깨주셔야 해요. 그러나 그걸 잘 할 수 없는 것도 김대중 대통령의 한계예요. 그 한계를 인정하고 이 김대중시대에는 그가 맡은 시대의 임무를 잘 완수해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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