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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남성탐구

정형근의 피해의식 마광수의 불안감

  • 정혜신

정형근의 피해의식 마광수의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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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형근과 마광수는 ‘시대’와 불화를 빚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경우 전투적이거나 냉소적이게 되는데, 두 사람 모두 적잖은‘피해의식’이 내면화되어 있다. 피해의식은 한때 시중에서 유행하던 ‘왜 나만 갖고 그래?’ 정도의 일상적 수준을 넘어 심각해질 경우 명백한 정신질환 증상인 ‘피해망상’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세상살이는 불화(不和)의 연속이다.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개인의 억울함, 주위 사람들과의 자잘한 토닥거림, 또 다른 자신과의 내면적 불일치 등 우리 일상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은 너무나 많다. 그런 갈등 요인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불화(disharmony)의 감정을 더 많이 느낀다.

깨어 있는 의식이나 튀는 행동, 미심쩍은 과거, 부풀려진 괴담, 스캔들, 천재성 등 보통 사람과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앞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겪는 불화의 괴로움은 범인(凡人)의 그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작가 이문열의 산문집 제목을 차용해서 말해 본다면 ‘시대와의 불화’쯤이 될 것이다.

반체제 지식인이나 전위적인 예술가 혹은 치열한 사회의식을 가진 시민운동가들은 모두 시대와 불화를 겪는다.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대중예술인이나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다. 시대와 빚는 불화가 심해지면 전투적이거나 냉소적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건 ‘피해의식’이 내면화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 시대가 자신의 천재성이나 대의(大義)를 외면한다는 사실에 좌절하다가, 질책받고 억압을 당하기까지 하면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위축된다. 바로 피해의식 때문이다. 한때 시중에서 유행하던 ‘왜 나만 갖고 그래?’ 정도의 일상적 수준을 넘어 심각해질 경우 명백한 정신질환 증상인 ‘피해망상’으로까지 발전한다.



정형근과 마광수의 피해의식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과 마광수 연세대 교수는 ‘시대’와의 불화를 빚고 있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 모두 적잖은 ‘피해의식’이 내면화되어 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이 대목에서 ‘정형근 의원 때문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정의원이 시대와 불화를 빚고 있다는 필자의 해석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재선 국회의원인 그에게 무슨 피해의식이냐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란 객관적 현상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가해자인 사람이 본인 스스로 피해자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경우도 있고, 피해자이면서도 턱없이 자신의 허물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정형근 의원이 이 시대와 불화를 겪으면서 느꼈음직한 ‘피해의식’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형근 의원과 마광수 교수의 ‘피해의식’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걸핏하면 아내를 구타하는 남자가 있다. 물론 그때마다 그에게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남편이 그녀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려고 손을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남편은 혀를 찬다. 지나친 피해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 쪽에서야 억울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피해의식’이 있다는 말은 옳다. 그런데 이따금 그 남자는 그의 아내가 했던 ‘맞을(?) 짓’을, 힘있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하고 있다고 자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그에게는 과장된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되고 그러면 상대방의 어이없다는 반응이 뒤따른다.

“당신, 나한테 무슨 피해의식 있어?”

이런 경우 피해자인 아내와 가해자인 남편 모두에게서 피해의식이 발견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질적·양적인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정형근 의원과 마광수 교수의 정치행동과 지적 활동을 찬찬히 분석하다 보면, 사람들이 피해의식을 가지게 될 때 생기는 양면성 혹은 그때의 미묘한 심리적 차이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6·8부정선거 규탄한 서울대학생회장 출신

먼저 정형근의원에 대해서 살펴보자. 지난 11월 한 인터넷 웹진에서 ‘역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중 최악의 인물은 누구인가’를 묻는 네티즌 선거를 실시했다. 당선자는 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형근이었다.

그가 뽑힌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80년대 공안검사 시절부터 민주화 인사에 대한 고문을 주도했고, 둘째 서울대라는 시가 2억원짜리 브랜드를 팔면서 학력주의를 조장했으며, 마지막으로는 중요한 정치적 사안마다 신빙성 없는 폭로전을 펼치며 ‘식물 국회’로 몰고 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네티즌 조사는 자칫 유명인사 중 워스트드레서를 뽑는 행사처럼 선정적일 수 있고, 또 특정 연령대의 시각만이 반영된 조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조사 결과를 정형근에 대한 글의 첫머리로 시작하는 것은 앞서 밝힌 세 가지 선정 이유 속에 정형근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그의 인간적 성향이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사결과를 보면서 정형근이 6·8 부정선거를 규탄한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지금의 정형근과는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아서다.

정형근은 1945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했다. 경남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후 법대 학생회장과 총학생회장을 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미국 미시간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다. 10년 동안의 검사생활을 거쳐 안기부에서도 핵심요직만 역임하다가 잠깐의 변호사생활을 거쳐 지금은 한나라당의 재선 국회의원이다. 이 정도 경력이라면 엘리트주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4남2녀의 장남으로, 기억하는 이사 횟수만 50회가 넘는다는 가난에 대한 처절한 기억이 있다. 어떤 때는 집을 구하지 못해 일가족이 헤어져 살던 때도 있고 아침 점심을 샘물로 대신하면서 수업료 1000원을 내지 못해 수업시간에 쫓겨난 적도 있단다. 물론 대학도 고학으로 마쳤다.

그의 성장배경과 사회적 경력만 놓고 본다면 정의원은 진작에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에 등장했어야 할 인물이다. 거친 환경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안겨 주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2000년 현재의 젊은이들은 정형근을 역대 최악의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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