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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김중권 민주당 대표

콤플렉스마저 DJ를 닮은 ‘역전의 승부사’

  • 문 철 fullmoon@donga.com

콤플렉스마저 DJ를 닮은 ‘역전의 승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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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국주도권을 잡으려는 여야의 격돌로 새해 정국이 얼어붙고 있다. 이런 대결정국의 한편에 김중권 신임민주당대표가 서 있다. 김대표 등장 후 여권의 강공이 시작됐고 그를 알아야 현정국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강한 여당론’의 주창자 김중권 대표는 누구일까.
2001년 1월2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지하1층 강당. 김중권(金重權) 신임 대표최고위원이 시무식에서 열띤 목소리로 ‘강한 여당론’을 폈다. 그는 10여 일 전인 구랍 12월19일 당대표에 지명됐고, 다음날 당무위원회의에서 인준을 받은 새내기 대표였다.

“민주당은 집권당으로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강력하고 든든하고 튼튼한 집권당이 될 때 국민들이 우리를 신뢰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자신감 없고 유약하면 국민들이 믿고 지지하지 않습니다. 든든하고 튼튼한 여당, 여당다운 여당이 됩시다. 정부와 여당은 함께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하는 공동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를 마다하거나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는 원고도 없이 일사천리로 연설을 소화했다. 조금 반복적인 표현이 있었지만 문장은 짧고 간결했고,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여러 차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고자 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최고위원과 당4역, 의원, 사무처요원 등 200여 명이 빼곡히 들어선 강당에 작은 수군거림이 일었다.

“김대표가 원래 저렇게 연설을 잘하나?”

“그렇대. 고등학교 다닐 때 웅변도 했다지, 아마.”

그의 연설은 이어졌다.

“2002년에 대선이 있습니다. 개혁의 완수를 위해 정권재창출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겠다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국민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날 연설의 요지는 한마디로 ‘강한 여당론’이었고 이는 이후 김대표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정가에 알려지게 됐다. 과연 민주당은 ‘강한 여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김중권 대표는 ‘강한 여당’을 만들 능력이 있는 인물일까.

사실 전임 서영훈(徐英勳) 대표 시대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서대표는 지갑 속에 달랑 2000원을 가지고 다니다 목격될 정도로 청렴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정치력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워낙 많았다. 서대표체제는 2000년 4·13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되는데 실패했고, 자민련과의 공조 균열로 총선 후 8개월 동안 국회 파행을 막지 못했으며, 연말 들어서는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의 ‘권노갑(權魯甲) 퇴진론’을 계기로 당이 내홍(內訌)상태로 빠져들었음에도 무기력했다.

‘강한 여당론’ 주창하며 등장

김대표 체제는 이런 ‘약한 여당’의 바탕 위에서 대표에 출범했고, 그 자신은 대표 지명 직후부터 야당은 물론 당내부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한나라당의 권철현 대변인은 대표 지명일인 12월19일 곧바로 논평을 통해 ‘김중권 흠집내기’를 시도했다.

“그 난리 끝에 내놓은 인물이 고작 구태(舊態)의 상징 김중권 대표인가? 국정쇄신책의 입장이 아니라 정권재창출에 눈이 먼 인사다. 한마디로 망사(亡事)의 극치다. ‘20억+α’의 돈 심부름꾼, 허울좋은 동진(東進)정책으로 지역감정의 골을 더 깊게 파놓은 인물이다. 선거부정의 상징, 비서실장으로 대통령의 귀와 눈을 막아 국민의 정부 개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한 인물이다. 오죽하면 당내에서조차 난리법석이 나겠는가?”

권대변인이 비꼰 대로 당내 반발이 거세었다. 일부 중진들이 ‘비토’했고 초재선의원들이 ‘개혁노선’을 요구하고 나선 것.

4선인 안동선 의원은 아예 21일 기자회견을 자청, “김대표 지명은 집권세력의 정통성이 전혀 없는 ‘제3의 정당’의 출현이며 국정개혁 추진을 기대했던 국민의 바람과는 거리가 먼 인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범구 의원 등 10여 명의 초재선의원들은 “개혁정책을 통한 민심회복이라는 요구가 대표인선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압박했다.

김대표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노무현(盧武鉉) 해양수산부장관이었다.

노장관은 12월21일 저녁 출입기자들과의 송년모임에서 작심한 듯 김대표를 비판했다.

“웃긴다. 잘못되고 있는 것 같다. 기회주의자는 포섭대상이긴 해도 지도자로는 모시지 않는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안의원 등이 반발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맞는 얘기 아니냐. 공감한다.”

하지만 파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노장관은 이틀 뒤인 12월23일 사과성명을 냈다. 파문이 지속될 경우 당과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고, 결국 자신의 입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김대표는 ‘악몽’과도 같은 며칠간 침묵했다. 그리고 크리마스 이브인 12월24일 성탄절 예배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처음 입을 열었다.

“(노장관이) 취중에서 한 발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한다. 그것을 가지고 문제삼는 것보다 서로 덮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김대표는 1월10일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안동선 의원을 상임고문에 임명했다.

시련이 수그러들자 김대표는 ‘강한 여당론’ 실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과업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2001년도 예산안 처리. 국회는 이미 법정기일인 12월2일을 지키지 못했고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12월9일도 넘겼다. 헌정사에 처음 있는 이런 악례(惡例)는 ‘강한 여당’의 첫 난관이었던 셈이다.

그는 성탄절인 12월25일 아침 일찍 당사로 출근, ‘예산안 최종점검회의’를 주재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일요일에는 거의 하루종일 교회에 살았던 그가 ‘일요근무’ 특히 ‘성탄절근무’마저 불사한 것은 상당한 파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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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철 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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