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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디지털 경제’ 강연한 비트컴퓨터 조현정 사장

  • 이나리 byeme@donga.com

평양에서 ‘디지털 경제’ 강연한 비트컴퓨터 조현정 사장

  • 대한광업진흥공사 박문수 사장이 북한 광물 자원 탐사에 승부를 걸었다. 북한의 휴폐광을 개발해 철광석 등을 생산한 후 이를 남한으로 가져오겠다는 것. 남한으로서는 중요한 광물자원을 확보하는 셈이고 북한은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자는 것이다.
  • 경의선 상의 화차가 아오지 탄광에서 나온 석탄을 싣고 포항제철로 향하는 그날을 향한 박사장의 비전을 들어보았다.
국내 1호 대학생 벤처창업가로 유명한 비트컴퓨터 조현정 사장(43·趙顯定)이 지난 1월 31일~2월 3일 북한에 다녀왔다. 방북중에 조사장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500여명의 북한 과학기술 전문가들을 상대로 강연을 한 것이다. 주체사상 교육의 ‘심장부’인 인민대학습당이 남한 기업인에게 개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장은 “국정원에서도 민간인으로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에 비견될 만한 획기적 사건이라 평가하더라”는 말로 서두를 꺼냈다.

―어떤 계기로 북한을 다녀오게 됐습니까.

“85년부터 알고 지내던 재미동포 한 분이 있습니다.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죠. 지난해 선교차 북한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정보기술 관련 질문을 많이 받았나봐요. ‘그런 일이라면 남한의 조현정이란 사람이 최고’라며 절 추천했던가 봅니다. 10월경 재방북하는 길에 제 초청장을 받아 왔더군요. 그 초청장이라는 게 길게는 한두 달 이상 걸려야 나오는 거라던데, 제 경우엔 단 하루만에 발급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 북쪽에선 나름대로 조사를 마쳐놓았던가 봐요. 조총련을 통해 일본잡지 ‘주간아사히’에 실린 관련기사까지 스크랩해놨다고 하더군요. 그 밖에 한국 IT업계 동향에도 아주 어둡지는 않은 듯했습니다.

초청장을 받은 후에도 바쁜 일이 많아 차일피일 미루다 1월 말에야 짐을 꾸리게 됐습니다. 물론 그 사이 북한 실정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공부를 얼마간 해 놓았지요.”

―방북과 관련 북한측에서 내세운 조건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기업인이건 누구건 북한에 가려면 얼마쯤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겐 그런 요구도 없었어요. 말 그대로 ‘우리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달라’는 것이 초청 사유의 전부였습니다.”

―일정을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1월30일 중국 북경에 도착해 그곳 북한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았습니다. 수속 시간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사관 측에서 내준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지요. 현지 시간으로 다음날 오후 3시경 비행기를 타 오후 4시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서부터 줄곧 남원예술단과 함께 움직였는데 그 쪽 팀과 비교해 저에 대한 예우가 유난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아예 작심하고 ‘저 사람한테 들을 수 있는 얘기는 다 들어야겠다’고 방향을 정한 듯 했어요. 그날 저녁 식사시간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전자공업성상(한국의 정통부+산자부 장관), 조선콤퓨터센터 소장, 조선프로그램협회 이사장 등 북한의 주요 과학기술 관련 인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니,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교육’에 가까웠지요. 저도 어렵게 찾아온 기회인만큼 이것저것 가리고 주눅들 것 없이 하고 싶은 말, 알려주고 싶은 것들을 모두 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 갔습니다.”

“과학기술로 강성대국 건설”

―북한 정보통신 산업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수준을 말한다는 건 좀 섣부른 일이고…. 아무튼 정보기술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에서도 알 수 있듯, 북한은 과학기술을 경제 성장의 유일한, 또 가장 유력한 방편이자 동력으로 상정하고 있는 듯했어요. 요즘 북한 어딜 가나 가장 많이 듣고 볼 수 있는 단어가 ‘강성대국’입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3대 혁명과제 중 근래 들어 김위원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과학기술이라고 하더군요.”

―북쪽에서 말하는 ‘과학기술’과 우리나라에서 일반화 된 IT, 즉 정보통신이란 용어 사이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법도 한데요.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말하는 과학기술이란 말 그대로 ‘과학’을 바탕으로 한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의 중요성에 대해선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그 초점은 프로그램 짜기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컴퓨터=하드웨어+소프트웨어’라는 식의 단순한 인식이지요. ‘전산화’를 컴퓨터 활용의 모든 것으로 치환해 생각하는 경향도 있고…. 글로벌라이제이션, 디지털 경제, 그 속에서 진짜 ‘돈’이 되는 것은 정보와 컨텐츠라는 것, 네트워크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는 아직 눈뜨지 못한 듯 했습니다.

그래서 과학기술과 IT는 다르다는 것, IT를 과학적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나중에는 저나 그 쪽 분들이나 IT라는 단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됐지요.”

“장군님께 보고드렸습니다”

―북한의 IT산업 발전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인력이 우수해요. 수학, 과학 등 기초교육이 잘 돼 있으니까요. 우리처럼 북한에서도 뛰어난 인재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진출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하더군요. 인공지능이나 퍼지이론의 경우,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듯 했습니다.

문제는 발상의 전환입니다. 이 또한 극복 가능하다고 봅니다. 방북중에 만난 사람들에게서 선진 IT산업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감지할 수 있었거든요. 남한 사례도 많이 들고, 그 쪽에서 보면 거부감 들 만한 얘기들도 제법 했는데, 이의를 제기하기보다는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한마디 한마디를 깊이 새겨듣더군요. 저한테는 방북인사라면 누구나 해야 한다는 김일성 생가나 동상 방문도 생략되었습니다. 그런 시간마저도 아껴 북한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많이 해달라는 뜻으로 알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 인민대학습당 강연 얘기를 좀 해주시죠.

“강의는 방북 둘째날인 1일 이루어졌습니다. 당초에는 조선콤퓨터센터 강당에서 조선콤퓨터센터,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대, 평양프로그램센터 등의 과학기술 전문가와 책임자급 50여 명을 상대로 강연하는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날 저녁 대화 내용이 고무적이었던지 인원 수를 대폭 늘리고 장소도 인민대학습당으로 바꾼 거예요.

강연이 끝난 뒤 전자공업성상이 ‘공화국 역사상 최초로 남쪽 사람이 많은 인민들 앞에서 강의를 했다. 그것도 공화국이 자랑하는 인민대학습당에서. 아침에 장군님(김위원장)께 보고 드렸다’고 말하더군요.

강의는 4시간 동안 진행됐습니다. 넓은 강당에 사람들이 꽉 찼는데, 나중에 들으니 자리가 없어 그냥 돌아간 사람도 100명쯤 된다고 하더군요. 강의 전 주의 받은 건 딱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영어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것, 또 하나는 체제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도 ‘거부감’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우려가 있으니 배려해 달라는 정도였습니다.

강의 시작하자마자 ‘남한에서 온 벤처사업가’라고 나를 소개한 뒤 새 시대가 요구하는 국가, 기업, 노동의 개념 등을 주욱 설명했습니다. 날씨도 추웠고 지루했을 법도 한데 졸기는커녕 눈길 한 번 떨구지 않더군요. 간간이 웃음도 터져나왔고, 전체적으로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과학기술 관련 연구소나 기업체도 방문하셨습니까. 분위기며 장비는 어떻던가요.

“조선콤퓨터센터 등 몇 곳을 둘러봤습니다.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였어요. 북한이 자랑하는 바둑게임 등도 구경했지요. 컴퓨터는 주로 펜티엄Ⅱ급을 쓰더군요. 펜티엄Ⅲ도 10% 가량 돼 보였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는 건 펜티엄Ⅳ급입니다. 특이한 건 키보드에 한글 자음과 모음이 나와 있지 않다는 거예요. 대부분이 대만, 일본, 미국 등지에서 수입된 제품인 탓이지요.

프로그램 개발 방식도 많이 달랐습니다. 북한 연구원들은 그야말로 혼자 컴퓨터 원리를 터득해 탑을 쌓아 올리듯 어렵게 어렵게 프로그램을 짜고 있더군요. 우리나라에선 이미 개발된 프로그램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일반화돼 있거든요. 교재와 정보의 차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IT산업 분야에 있어 북한과 우리나라의 협력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남북경협 얘기가 자주 나오고 있지만 IT 분야의 협력이야말로 실현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시너지도 클 것입니다. 북한 인력이 우수한데다 우리는 언어와 정서를 공유한 한민족이 아닙니까. 괜히 인도인, 러시아인 불러들여 어렵게 작업할 필요가 없지요. ‘정보’가 핵심인 IT의 특성상, 이는 남북통일과 이질감 해소에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그들의 장점을 키워주면서 협력 범위를 적절히 확대해 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덧붙여 북한측이 ‘시장의 논리’에 눈을 떠야겠지요. 이 역시 아주 먼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이미 북한 엘리트들 사이에는 산업의 ‘시장성’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남북한 IT산업 분야 협력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표준화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용어부터 통일해야죠. 비근한 예로 북한에선 컴퓨터 운영체계인 리눅스를 ‘리낙스’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일본 교재를 보고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선 한국 컴퓨터 교재를 북한에 전달하는 일을 추진하려 합니다. 북측에서도 흔쾌히 동의했고요.

북한 연구원들을 상대로 사이버교육센터를 운영할 생각도 해봤는데, 조선콤퓨터센터조차 인터넷이 되지 않아 어렵겠더군요. 인프라 개선에 힘쓰면서 교재와 교육을 공유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왕 첫발을 내디딘 만큼 이후 북한 IT산업 발전과 경제협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해만 해도 두 차례 더 와달라는 초청을 받았어요. 꽃 피는 춘삼월이면 다시 한 번 북한 땅을 밟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동아 2001년 3월 호

이나리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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