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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불타는 중년’ 조영남의 4日夜話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불타는 중년’ 조영남의 4日夜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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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자는 나의 종교, 연애하다 죽겠다
  • ● 김용옥이? 내 남자 애인이야
  • ● 작년에 왔던 각설이는 누구?
  • ● 내 인생의 세 여자, 윤여정 백은실 조은지
  • ● 목사를 만나면 목사가 되고 조폭을 만나면 조폭이 된다
  • ● 여자를 사로잡으려면 쫓아다니지 마라
  • ● 치사하지만 꼭 필요한 사랑의 테크닉
  • ● 김정일이 DJ보다 세련된 이유
  • ● 노자는 틀렸다, 역류 타기가 참 인생
  • ● ‘쿨’하고 ‘프랙티컬’한 삶을 위하여
오전 9시. 그에게 전화할 시간이다. 들은 대로라면 그는 지금쯤 선잠 깬 눈 끔벅이며, 오늘은 또 뭘 하고 놀까 궁리가 많을 것이다.

“여보세요-.”

말끝을 길게 끄는 품이 영락없이 그, 조영남(56)이다. ‘행복한 남자’의 표본인 당신을 인터뷰하고 싶다 하자 예기치 않은 답변이 튀어나온다.

“어~, 그렇지. 임진각에서 서귀포까지 나보다 더 행복한 남자 있으면 내가 할복을 해야지.”

이 무슨 터무니없는 자신감인가. 가볍고 예의 없고 허풍기 있고 잘난 체 하는. 역시 생각한 그대로다.

하여튼 시간을 잡고 장소를 정한다. 간결한 일 처리 방식이 쉰 여섯 살 ‘할아버지’답지 않게 쿨(cool)하다.

그는 요즘 무척 바쁘다. ‘조영남 빅콘서트’가 3월21~22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21일은 12년 만에 새 앨범이 발매되는 날이기도 하다. 얼마 전 펴낸 신학서적 ‘예수의 샅바를 잡다’가 잘 팔린 덕분에 강연 해달라 사인회 해달라 찾는 이도 많다. 5월 19일부터는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 개인전을 연다. 아는 이는 다 아는 일이지만 그는 30년 화력(畵歷)을 자랑하는 중견 작가다.

전시회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한 달간은 책 쓰기에 매달릴 작정이다. 요절한 작가 이상(李箱)의 예술과 인생을 논하는 책이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못 말리는 이상 숭배자다. 왜? 천재니까.

어쩌면 그와의 대화는 생각만큼 즐겁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쁘고 유명하고 닳고닳은 50대 아저씨라니. TV 토크쇼에서 보여준 딱 그 정도가 그가 가진 얘깃거리의 전부는 아닐까. 그 역시 “나처럼 온갖 수다 떨고 다니는 사람한테 더 들을 말이 뭐 있겠냐”며 심드렁한 기색이다.

그래도 알아야겠다. 키 작고, 못 생기고, 가수대상 한번 못 받고, 두 번 이혼에 고정 수입처 하나 없는, 열한 살 늦둥이 딸 하나 데리고 외롭게 사는 중늙은이. 그런데 왜 그의 주변엔 늘 돈과, 여자와, 친구와, 명예와, 놀거리와, 기타 등등 세상 사는 온갖 즐거움이 끊이질 않느냔 말이다. 왜 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중년 사내’일 수 있냐 그 말이다.

▒ 첫째 날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최윤희 선생이 전화를 했다.

“내일 조영남 씨 만나기로 했죠? 오늘 마침 그분하고 영화 한 편 보기로 했는데, 합류하지 않을래요?”

바쁘다더니 영화 볼 시간은 있나보다.

광화문의 한 극장. 먼저 도착한 두 양반이 로비 벽에 전시된 조각가 강익중의 타일 작품을 감상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둘 다 예순이 코앞인데 옷차림은 대학 신입생, 딱 그 수준이다.

“그런데 이 타일, 몇 개나 될 것 같아요?”

글쎄…, 8000개, 아니면 1만 개? 어른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타일엔 모두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한장 한장이 다 재미있지만 멀리 물러서서 그 어우러짐을 음미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이거 다 해서 7000장쯤 돼요. 야, 멋지네. 근데 오른쪽에 있는 저 부조는 없애는 편이 낫겠어. 작품 감상을 방해하잖아.”

다음 달부터 ‘월간 미술’에 우리나라 건물에 대한 공간비평을 연재하기로 했단다. 이 건물도 대상으로 삼아야겠다며 꼼꼼히 살펴본다. 시간이 돼 지하 극장으로 내려가려는데 한 중년 여성이 종이와 펜을 들고 다가온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공손한 자세로 펜을 받아들고 열심히 사인을 한다. 생각보다 ‘덜 건방진’ 모습이다.

영화는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를 만든 빔 벰더스 감독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심상치 않다. 구두닦이로, 행상으로 영락한 쿠바의 옛 재즈 연주자들. 1940 ~50년대 아바나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이들은 70~80대, 심지어 90대 노인이 되어 뒷골목을 떠돌고 있다. 카메라는 이들의 삶과 노래와 연주를 담담하게 쫓아간다. 사건도 갈등도 없는, 그저 소박한 다큐멘터리일 뿐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을 옥죄는 슬픔이 있다. 특히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그들이 마침내 미국 카네기홀 메인 무대에 올라 미국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 마지막 장면은 오래 두고 잊지 못할 감동이다.

영화가 끝난 뒤, 청소하는 아줌마가 왔다갔다할 때까지 그는 미동이 없다. 좀 있다 “야, 이거…” 하며 일어서는데, 이런, 빨간 눈이 축축히 젖어 있다. 울었구나.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이지, 내가 90년대 초 바로 저 카네기홀 무대에서 리사이틀을 했다는 거 아니오. 그때는 어려서 그랬나,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불러젖혔어. 그냥 해치워버렸다구. 근데 지금 막 후회가 되네, 마구 회한이 밀려와. 어? 근데, 당신들은 왜 우는 거요?”

근처 간이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쯤엔 다시 장난기 많은 중늙은이, 그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나도 영화 만들고 싶은 거 있다’며 어린 시절 무용담 몇 가지를 스리슬쩍 끼워 넣는다.

조승초씨와 김정신 권사

조영남은 황해도 남천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생년월일이 정확지 않다. 아버지는 1944년이라고 하고 어머니는 1945년이라 우겨 결말이 나지 않았단다. 뭐 자식 태어난 해도 기억 못하는 분들이 있냐니까 “나도 몰라, 원래 그래” 하며 낄낄거린다. 건망증은 유전인 듯 그 역시 무엇 하나 똑바로 기억하는 것이 없다. 첫 결혼은 언제 했냐, 그럼 이혼은 언제 했냐는 물음에도 대답은 하나 “I don’t know”다.

어쨌거나 6·25전쟁이 터지자 그의 가족은 월남해 충남 삽교읍에 둥지를 틀었다. ‘내 고향 충청도’나 ‘삽다리를 아시나요’ 같은 히트곡들은 이 제2의 고향을 소재 삼은 것들이다.

노래 잘하고 그림 잘 그리고 공부까지 잘했던 조영남은 삽다리의 꼬마 스타였다. 장난질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 가을이면 콩 볶아 먹고 동무들끼리 누가 더 방귀 많이 뀌나 내기를 하지 않나, 어렵게 구한 치약을 최신 사탕이라 속여 배탈이 나게 하질 않나, 동네 갓난쟁이가 마당 한켠에 내지른 용변을 흙바닥에 굴려 떡이라고 속여먹질 않나…. 그런데 그의 변명이 가관이다. “내 품성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100% 조상 탓”이라는 거다.

아버지 조승초 씨(그는 아버지, 어머니란 말 대신 조승초 씨, 김정신 권사라는 호칭을 즐겨 쓴다)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내 생애에 직접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된 분”이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덜컥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 것. 그렇다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 쓸데없는 기대나 관심에 주눅들 필요 없었던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안 그런 척하면서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점이다. 그가 1994년에 펴낸 두 권 짜리 인생고백서 ‘놀멘놀멘’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의 아버지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소위 ‘골때리는’ 사람이었다. 병석에 눕기 전 아버지는 나에게 ‘록빼꾸’라는 화투 놀이를 가르쳤다. 내가 아버지로부터 록빼꾸를 사사한 것이 여덟 아니면 아홉 살 즈음이었다. 당시 상황으로는 양반과 상놈을 은근히 찾아대는 충청도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앉아 화투를 친다는 사실은 거의 파격적인 행위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군수군 흉을 봤지만, 아버지는 개의치 않았다.

아버지의 소위 골때리는 파격성은 거기서 끝나질 않았다. 아버지는 나와 내 동생에게 체계적으로 장난질하는 법을 직접 시범으로 보여줬다. 제일 재미있는 것이 양잿물 뿌리기였다….’

책 제목인 ‘놀멘놀멘’도 아버지의 입버릇에서 따온 말이다.

‘아버지는 서툰 내 목공질을 돌아보시며 걱정스러운 듯이 한마디씩 하시곤 했다. “놀멘놀멘 하라우!” 놀면서 천천히 하라는 말의 이북 사투리였다.’

그러니 그가 “놀멘놀멘 사는 건 다 조승초 씨 탓”이라 우겨도 그저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그 아버지는 조영남이 ‘딴따라’로 이름을 날리기 직전 세상을 하직했다. 입관식 날, 그와 동생 조영수(부산대 성악과 교수)는 묘자리 앞에서 철없이 눈싸움을 벌이다 어머니한테 된통 야단을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 김정신 권사는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덕분에 조영남은 이른바 ‘모태신앙인’이 됐다.

남편이 병석에 눕자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며 3남2녀를 키웠다. 어머니가 한 부업 중에는 가짜 꿀 만들기도 있었다. 집에 사글세를 살던 부부의 생업이 가짜 꿀 만들기였던 것. 어머니는 그 이웃을 도와 4계절 내내 불도 때 주고 주걱도 휘휘 저어 주었다. 그 때마다 ‘자타가 공인하는 삽다리 예배당 최고 원로 권사님’인 어머니 입에선 찬송과 기도가 흘러 나왔다. 불을 때면서도 ‘내 주를 가까이’를 불렀고 휘휘 저으면서도 ‘주여, 주여’ 기도를 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미국에 신학대학에 다니던 조영남은 한국에 들렀다 어머니한테 옛날 일을 따지고 들었다.

“아니, 어머니는 권사 신분으로 어떻게 십년이 넘도록 그런 비양심적인 일을 도울 수 있었단 말이요!”

그런데 어머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길케 안 하문 방세를 못 받는데 어카간!”

그 어머니는 늘그막에 아들이 주는 용돈 대부분을 헌금한 다음, 남은 돈으로 교인들에게 이자 놀이를 해 또 헌금 내고 생활도 꾸려갔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조영남은 “엄마, 엄마 돈 어디 있어? 예배당 다니는 사람들이 남의 돈 빌려가고 안 주면 나쁜 짓 하는 거 아냐?” 하며 채무자 명단을 내놓으라고 독촉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끝내 입을 열지 않은 채 저 세상으로 갔다. 잘잘못 따질 것 없이 그저 잊어버리라는 무언의 타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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