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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대건설, 살아날 길은 있다”

이명박 전 한나라당 의원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현대건설, 살아날 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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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건설 신화’의 주역인 이명박 전의원이 ‘세금 축내는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오늘의 현대건설을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정치 공백기’를 보내고 있는 그로부터 현대건설 해법과 정계 복귀 계획을 들어봤다.
“현대건설, 살아날 길은 있다”
3월22일 아침, 전날 밤 세상을 떠난 고(故)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서울 청운동 자택 빈소. 정회장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TV 뉴스 화면에 낯익은 문상객이 여러 차례 비쳤다. 그저 의례적인 조문이 아니라 슬픔에 겨워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내는 그의 행동이 카메라 기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듯하다. 그에 비하면 오랜 병 구완에 지친 듯한 상주들의 표정은 오히려 덤덤해 보였다. ‘눈물 젖은 문상객’은 이명박(李明博·60)전의원이었다.

이 전의원은 ‘원조(元祖) 현대맨’이다.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후 1992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날 때까지 꼬박 27년을 현대와 함께했다. 평사원으로 입사한 지 5년 만에 중역이 됐고, 12년 만에 현대건설 사장에 올랐으며,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6개 계열사의 회장을 역임해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정주영 창업자와 산전수전을 치르며 오늘날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의 터를 닦은 인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주영 회장과 이 전의원의 관계를 부자지간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 정회장의 죽음, 그리고 요즘 현대건설의 형편을 지켜본 그의 심사가 궁금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10개월 남짓 앞둔 시점에 오래 전부터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돈 그의 정치적 행보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정주영과의 애증

―고 정회장 빈소에서 슬피 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특별히 어떤 기억이 그분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슬프게 했습니까?

“학교 졸업하고 평범하게 직장 들어가서 관리면 관리, 기술이면 기술 어느 한 분야만 일하다 나왔다면 30년을 일했다 한들 그 기업 총수와 무슨 개인적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내 경우는 좀 달랐잖아요. 입사 때부터 우여곡절을 겪었거든. 나는 학생운동 전력(그는 64년 고려대 경영대 학생회장으로 6·3시위를 주도했다가 6개월간 복역했다)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국내에선 취직을 못할 상황이었어요. 국영기업이나 은행에 취직하려고 시험을 몇 번 봤는데 1차엔 붙어도 면접에선 여지없이 떨어집디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다가 당시 현대건설 같은 작은 회사에 취직하면 정부가 눈 감아줄 줄 알고 시험을 본 거예요. 우선 이런 회사에라도 들어갔다가 블랙리스트에서 빠지면 다른 회사로 옮길 생각이었죠.

물론 현대건설에서도 신원조회에 걸렸어요. 그래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보내고 난리를 친 끝에 두 달 만에 입사가 허락됐어요.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정주영 회장이 끝까지 비밀로 했으니까- 당국은 회사가 한 달에 한 번씩 내 동태를 중앙정보부에 보고하는 조건으로 입사를 허용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5년 동안 보고서를 올려야 했으니 정회장으로서도 할 짓이었겠어요? 현대건설은 내가 그런 사연을 겪으며 들어가 청춘을 바친 회삽니다.”

그가 입사했을 때 정주영씨가 가진 회사는 현대건설 하나뿐이었다. ‘현대그룹’ 이란 이름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당시 정주영 사장은 삼성이 울산에 지으려던 공장을 하청받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있었다. 정주영씨는 이병철 삼성 회장을 만나러 찾아갔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그런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이 됐습니다. 77년엔 내가 그 회사 사장이 됐고 정주영씨는 전경련 회장이 됐죠. 그러면서 현대자동차를 만들고 현대중공업을 만들며 그룹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밟았으니 정회장과 나의 관계는 남다른 것이라고 할 수밖에요. 애(愛)와 증(憎)이 다 깃들인 거죠. 남들은 부자지간 같다고 하지만, 그런 건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재벌 총수와 직원이 부자지간 같은 인간관계로 유지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두 사람의 관계는 피차의 필요에 의해 유지됐을 거예요. 내가 도움이 안 되는데 정회장이 내게 그렇게 대했을 리 없고, 나 자신도 회사에서 보람을 못 느꼈으면 그렇게 붙어 있지 않았겠죠.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여러 가지 기억이 스쳐갔지만, 무엇보다 이분이 하필이면 왜 이런 때 돌아가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가 안팎으로 어려울 때고, 국가도 어려울 때거든요. 직접 일을 하진 않더라도 이런 때 그런 분이 계시면 든든하잖아요. 새벽에 소식을 듣고 청운동으로 달려갔더니 내가 첫 문상객입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쏟아지는데….”

“功이 過 덮었다”

―정주영 회장 사후 언론은 그의 공과를 냉정하게 따져보지 않고 찬양 일변도로 보도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가 맨손으로 대기업을 일궈낸 위대한 기업인임에는 틀림없지만 흠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거든요.

“큰인물이 세상을 뜨면 우선 애도하는 것이 동양적 사고니까. 또한 공이 크면 과를 덮을 수도 있어요. 그런 점에서 그분은 공이 많았다고 봐야겠죠. 정회장이 기업을 창업한 걸로 자기 일을 끝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그분은 사회 여러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거든요.

또 이런 것도 있을 겁니다. 막상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까 인간 정주영이 정말로 검소하게 살았다는 게 드러났잖아요. 40년 된 집에 살림이 더 늘어난 것도 줄어든 것도 없고…. 아마 그 집이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걸 겁니다. 그분 방도 보세요. 평범한 직장인의 안방보다 더 검소했어요. 언론에서도 그렇게 보도했을 겁니다. 그 전에도 정회장이 소탈하다는 얘기는 들었겠지만 실제로 그런지를 본 젊은 기자가 얼마나 있겠어요. 그런데 세상을 뜨고 나서 집에 들어가보니 들은 것보다 더 검소하거든요. 그러니 그분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요.

물론 앞으로 또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서울대에서도 ‘정주영학’ 강의를 한다니 학자들이 그분의 업적을 냉정하게 분석하겠죠. 하지만 정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시대를 초월해 후세 경영인들이 본받을 만하다고 봅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라든지,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대치될 때 처신했던 것 등이 그런 예죠.”

―하지만 오너와 전문경영인 사이의 봉건적 정서를 혁파하지 못한 점 같은 것은 ‘과(過)’로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생전에 정회장은 “앞으로 현대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간다”고 공언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말년에 부자간, 형제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는데요.

“그분이 한때 그처럼 앞선 생각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에요. 기자들 앞에서 ‘정패밀리의 그룹총수는 나로서 끝이다’고 했으니까. 실제로 그렇게 됐다면 또 다른 좋은 평가가 내려질 수 있었겠죠. 그런 생각이 정치상황과 건강 악화 같은 여러 요인에 부딪히는 바람에 현실화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당시에 그런 앞선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정회장이 기업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한 것도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요즘엔 해외에 진출하는 게 대수냐 싶겠지만, 그 당시엔 한국 기업이 해외에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거든요. 남다른 개척정신, 모험정신이 없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죠.”

이명박 전의원은 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됐으나(한나라당·서울 종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잃을 위기에 몰리자 98년 2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이 전의원은 그 해 5월의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고, 99년 8월 대법원 상고심에서 400만 원 벌금형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의 16대 총선에도 출마하지 못했다. 그는 98년 말 도미,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공부하다 지난해 초 귀국했는데, 난데없이 ‘이뱅크’라는 인터넷 증권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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