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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

버섯농사꾼 된 LG 구자경 명예회장의 즐거운 은퇴생활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버섯농사꾼 된 LG 구자경 명예회장의 즐거운 은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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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그룹 총수는 흔히 ‘제왕’에 비유된다. 돈, 권력, 명예, 혹은 그 이상의 어떤 카리스마. 내놓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인 그 자리를 구명예회장은 스스로 차고 나왔다. 이것이 우리가 그를 만나야 하는 이유다.
봄날 교정(校庭)은 세우(細雨)로 촉촉이 젖어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1시간 40분 가량을 달려 도착한 그곳에 연암축산원예대학이 있다.

연암(蓮庵)은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의 호다. 그 아들이 구자경(具滋暻·77) 명예회장. 구명예회장의 소년 시절 꿈은 ‘젊어서는 교사로 나라 이끌 동량을 기르고 은퇴 후에는 농장에서 백성 먹일 양식을 기르는 것’이었다. 원대로 교사가 된 스물한 살 청년은, 그러나 5년 뒤 제자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된다. 확장일로에 있던 선친의 사업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시 45년. 꽃과 풀과 나무를 사랑하던 소년은 어느덧 71세의 노인이 됐다. 교사의 꿈은 완성치 못했지만 남은 또 한 가지 꿈만큼은 꼭 이루고 싶었다. 95년, 구회장은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 총수 자리를 미련 없이 차고 나왔다. 그리고 자리잡은 곳이 74년 자신의 손으로 설립한 연암축산원예대학. 그 곁에 버섯재배전문 농장인 ‘수향농산’을 차려놓고 ‘생산하는 자’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먼 길을 달려 구회장을 찾은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지난 3월21일,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정회장은 세상을 뜨기 몇 개월 전까지도 직접 그룹 중대사를 챙겼다. 그에게는 사실상 ‘은퇴’란 것이 없었다. “죽는 날까지 일하겠다”는 것은 그의 평소 지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회장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많은 이들은 그 이유를 사후(死後) 준비에 소홀했던 탓으로 돌렸다. ‘왕자의 난’으로 대표되는 현대그룹의 환란도, 미리 후계 구도를 정리하지 못하고 옛 경영방식을 그대로 고집한 ‘왕회장’의 ‘욕심’ 때문이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래서일까 정회장의 별세와 관련한 언론 보도에는 구자경 명예회장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왔다. 정회장과는 전혀 다른 말년을 선택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4대 재벌 그룹 총수는 흔히 ‘제왕’에 비유된다. 돈, 권력, 명예, 혹은 그 이상의 어떤 카리스마. 가진 것 많고 오르기 어려운 자리인 만큼 내놓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구회장은 그 일을 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 ‘명예’ 회장이 됐다. 그는 어떤 이유로 자진해 총수 자리를 내놓은 것일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은퇴 후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가. 그 후 이어진 굵직굵직한 사건들, 외환 위기, LG반도체 빅딜로 대표되는 혹독한 구조조정, 통신산업중심 그룹으로의 변신 모색, IMT2000 사업자 선정 탈락, 주요 계열사의 주가 폭락…. 평생을 바쳐 일군 그룹의 부침을 바라보는 소회는 어떠했을까.

소박하고 털털한 시골 할아버지

인터뷰 약속 시간은 오후 3시. 20분 남짓 남은 시간 동안 교정을 둘러봤다. 꽃나무 한 그루 허투루 심어놓지 않은, 단아하고 고즈넉하기까지 한 풍경. 학교라기보다 잘 가꾸어진 정원 같다. 인근 주민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제격일 듯했다.

대학 정문 앞 일차선 도로를 살짝 넘어서면 바로 버섯농장이다. 농장 입구 왼편에 구회장이 기거하는 붉은 벽돌집이 있다. 그 맞은편으로 제법 큰 규모의 가설건물 몇 동이 늘어서 있다. 그중 맨 앞동이 농장 사무실. 건설현장사무소처럼 투박한 모양새다. 그 안, 소파 몇 개가 드문드문 놓인 방에 앉아 있자니 문이 벌컥 열리며 구회장이 들어선다.

진녹색 면 셔츠에 검은 모직바지, 갈색 중절모와 털 안감 댄 가죽조끼로 ‘중무장’한 차림새였다. 미국 서부 어딘가의 대농장주를 보는 느낌. 당당한 체구가 여든 가까운 나이를 무색케 했다. 악수하느라 잡은 손 또한 크고 단단했다. 뚝 떨어진 기온 탓일까. 봄 고뿔에 걸려 몸이 편치 않다면서도 입가엔 소탈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건물 안쪽, 역시 ‘편리’를 염두에 둔 듯 소박하게 꾸며진 개인사무실에서 구회장과 마주 앉았다. 준비해 간 버섯 관련 책자 한 권을 선물인 양 내밀었더니 꽤 오랜 시간 꼼꼼히 넘겨본다.

“음―, 세상에 참 별별 버섯이 다 있구먼. 이 버섯이라는 것이 파고들수록 끝이 없어.”

주로 ‘먹는 버섯’에 관심을 기울여온 탓일까. 책에 소개된 버섯 중에는 구회장도 미처 접하지 못한 것들이 제법 됐나 보다. 책을 들여다보는 눈길이 어린 학생의 그것처럼 진지하기만 했다.

매실차 한 잔씩 앞에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가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어린 기자 앞인 만큼 말을 놓을 법도 하건만 잊지 않고 꼭 존대를 했다.

이어지는 문답은 미리 받아놓은 서면(書面) 인터뷰 자료와 1시간 가량 이어진 대화를 종합한 것이다. 민감한 발언도 없지 않았으나 이는 세월이 좀더 흐른 후 공개하기로 한다.

―무척 건강해 보이십니다. 그래도 봄 감기는 피하기 힘드셨나 봅니다.

“그래요. 달리 아픈 데는 없는데 매년 꼭 한 번씩 감기를 심하게 앓아요. 재작년 12월24일에도 감기가 너무 심해 입원까지 했죠. 의사가 ‘담배 안 끊으면 치료 못한다’고 엄포를 놓기에 하루 두 갑씩 피우던 걸 그날로 딱 끊어버렸어요. 그런데도 영 낫지 않아 제 스스로 실험용 쥐가 되기로 했죠. LG화학에서 실험 중인 신약이 있었는데 그걸 가져다 먹었어요. 열흘을 먹으니 차도가 있고 다시 열흘을 더 먹으니 완전히 낫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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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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