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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 인터뷰

“재용이는 준비된 경영인, 대견하다”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재용이는 준비된 경영인,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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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삼성 구조조정은 이제부터
  • ● 환갑인 내년부터 ‘외출’ 시도할 것
  • ● 2005년까지 세계 1위 제품 30개 만들터
  • ● 정치와는 不可近 不可遠
  • ● 대북사업, 외국인투자 의식해야
  • ● 한달 독서량 20권, 요즘은 ‘他力’ 읽는 중
  • 이건희 삼성 회장은 ‘신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신경영과 구조조정의 현주소, 삼성의 미래상, 아들 이재용 상무의 경영자질, 자신의 사생활 등에 대해 진솔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편집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해 항암치료를 받으셨는데, 최근 미국 병원으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만 건강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아주 좋아요. 아프기 전보다 오히려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신경 써주신 덕분입니다. 그렇게 한번 앓고 나니까 새삼 건강이 참 중요한 거로구나 싶더군요. 그 동안 할 일은 잔뜩 쌓여 있고 의욕도 넘쳐서 식음을 전폐하고 밤 새워 고민한 적도 많았는데, 이젠 운동도 하면서 건강을 좀 돌보는 편입니다.

‘운동’이라고 해야 뭐 특별한 것은 아니고 가볍게 산책을 하는 정도죠. 저녁을 먹고 7∼8시쯤 호텔 신라 뒤쪽에서 남산으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 쭉 걷는데, 의외로 호젓하고 경치도 참 좋습니다. 주로 집사람하고 같이 다니는데 더러는 딸아이나 며느리와 함께 가기도 해요. 8km 가량 되는 길을 한두 시간쯤 걸으면서 집사람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몸도 마음도 가뿐해지는 것 같아 아주 좋습니다.”

-원래 ‘야행성’이신데다, ‘신경영 선언’을 전후해서는 위기감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셨다고 들었습니다. 요즘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주무십니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몇 시에 자는지, 몇 시간이나 자는지 나도 잘 몰랐습니다. 신경영을 고민할 때는 초밥 몇 개만 먹으면서 이틀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고, 그러다 지치면 하루종일 잠만 잔 적도 있어요. 지금은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가능한 한 자정 전후에는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 6시쯤 일어납니다. 이렇게 하니까 몸도 좋아지는 것 같고, ‘제발 건강 좀 챙겨라’는 집사람의 잔소리도 덜 듣게 돼서 좋아요.”

생살 도려내는 아픔

-외환위기 이후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우에 이어 현대까지 위기를 맞았는데, 그와 대조적으로 삼성은 큰 흔들림 없이 거친 파고를 극복하고 ‘독주체제’로 들어선 느낌입니다.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다고 보십니까?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삼성은 6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크고 작은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그 때마다 삼성은 개인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하는 공동체정신을 발휘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습니다. 대나무가 마디를 만들어 가면서 계속 자라고 더 튼튼해지듯 삼성도 위기를 극복하면서 체질이 더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체질을 키워놓았기에 외환위기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도 임직원 모두가 ‘삼성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고, 그 덕분에 어려움을 이겨내고 구조조정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또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경영자는 기업을 자기 몸처럼 여깁니다. 때문에 구조조정은 경영자에게 마치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안겨줍니다. 공들여 키운 사업을 줄이거나 버려야 했던 당시 심정은 매우 고통스러웠고, 특히 마지막 수단으로 인력감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때는 뼈를 깎는 아픔,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경영자들이 먼저 상여금을 반납하고 복지혜택을 줄이는 등 솔선수범하면서 구조조정을 이끌었고, 임직원이 개인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하면서 회사 살리기에 나섰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큰 무리 없이 구조조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삼성은 적자사업과 한계사업을 정리하며 수익성 위주의 구조조정에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큰 수익을 못 내더라도 먼 앞날을 내다보고 투자를 계속해야 할 업종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선 갈등이 크셨을 텐데요.

“눈앞의 수익에만 급급해 무조건 줄이기만 하는 것은 기업인의 본분이 아니라고 봐요. 나라 살림살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인데, 자꾸 줄이기만 하면 전체적으로 오그라져서 성장잠재력이 떨어집니다. 저희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수익성’, ‘부가가치’, ‘미래 성장’의 세 가지를 염두에 뒀습니다. 10년 후, 30년 후에 삼성이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지를 연구해 가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 덜 급한 것들은 줄이고 그렇게 해서 얻은 힘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제가 사재(私財)를 들여 직접 투자했고 오늘날 삼성반도체의 기반이 됐던 부천공장마저 팔고 거기에서 나온 돈으로 시스템LSI 등 비메모리 분야에 투자했던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습니다.”

‘신경영’ 평가 일러

-삼성의 구조조정이 이제는 웬만큼 완숙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데도 구조조정본부는 삼성의 사령탑 기능을 계속하게 됩니까? 구조본은 막강한 파워를 지녔던 옛 삼성 비서실을 연상케 합니다.

“과거에는 구조조정본부가 그룹경영의 구심점으로서 계열사들의 경영을 리드해온 측면이 없지 않지만, 지금은 각사별로 책임지고 경영하는 체제가 자리잡혔습니다. 다만 계열사 스스로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조정을 독려하고 각사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공항의 관제탑 기능을 하는 구조조정본부가 당분간 필요하다고 봅니다.

밖에서는 삼성의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고 칭찬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급박하게 돌아가는 디지털 혁명기의 변화를 보면 진정한 구조조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지난 몇 년간 양적으로 추진해 온 구조조정을 이제는 질적인 구조조정으로 전환해야 하고, 또한 구조조정 자체가 일상적인 경영활동으로 자리잡도록 해야 합니다.”

-삼성이 비교적 수월하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외환위기를 맞기 전에 일찌감치 계열분리를 단행, 가족 지분을 정리함으로써 몸을 가볍게 만들어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삼성은 다른 대기업과 달리 계열분리 과정에 잡음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제일제당이 떨어져 나갈 때 상당한 마찰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해가 다 풀렸습니까?

“제일제당은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이고 핏줄로 따지자면 저와 숙질간입니다(이재현 제일제당 부회장이 이회장의 장조카). 당시 회사를 분리하면서 집안의 어른으로서 조카를 도와주려고 신경을 쓴 것이 주변의 몇몇 사람들 때문에 오해를 빚었던 것인데, 그런 오해는 오래 갈 수가 없죠.”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보자”며 신경영 바람을 일으키신 지도 벌써 8년이 지났습니다. ‘삼성은 2류다’, ‘삼성전자 같은 비효율·낭비 집단은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과 반성에서 비롯된 신경영이 그간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고 보십니까?

“이제 겨우 8년입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굳어진 관행과 관습을 바꾸기에는 부족한 기간이에요. 새집 짓기보다 헌집 고치기가 더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적어도 10년은 지나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습니다. 임직원들의 마인드가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양과 질을 동시에 생각해서 그것이 경영에 반영되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봐야겠죠. IMF체제라는 어려운 기간에도 삼성은 계속 좋은 성과를 냈는데, 이는 정부와 국민이 도와주고 우리 임직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반도체를 비롯해서 몇몇 주력제품의 세계 경기가 좋았던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 우리가 잘해서 그런 것으로 착각하고 경쟁력이 생겼다며 자만할까 봐 걱정됩니다. 지금의 불안한 세계경제 여건을 보면 한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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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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