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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철환 한국은행 총재

“한국경제, 불투명하지만 더 나빠지진 않는다”

  •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hwang@donga.com

“한국경제, 불투명하지만 더 나빠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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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외환보유액 충분하나 더 늘려야
  • ● 물가오름세 안정될 것
  • ● 인플레이션만큼 위험한 것 없다
  • ● 원화환율 안정세 유지
  • ● 한은 완전 독립해야
  • ● 미국경제는 회복세, 일본경제는 예측불허
전철환(全哲煥·63) 한국은행 총재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초기인 1998년 3월 취임, 외환이 바닥난 ‘곳간’을 넘겨받아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비교적 무난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 정부 들어 여러 대학교수들이 청와대와 경제부처, 연구소 등에 들어왔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관료 출신들에게 밀려났다. 충남대 교수 출신인 전총재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무원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가 교수로 진로를 바꾼 이채로운 경력을 갖고 있다. 경제기획원, 교통부, 중화학공업기획단 등에서 오래 경제정책을 다뤄봤기 때문에 다른 교수 출신들과는 달리 ‘현실 적응’에 무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전총재의 연설이나 좌담을 몇 차례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복잡한 경제현상을 아주 쉽게 설명하는 남다른 기술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젊은 관료시절의 현장 체험과 오랜 대학교수 생활을 통해 연마한 이론이 어우러져 정밀한 현상 분석이 나오는 것 같다.

전총재는 인터뷰에서도 명쾌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평소 강연에서는 메모를 보지 않고 달변을 들려주던 그가 인터뷰에서는 금리 환율 물가 등 주요 경제문제에 대해 질문할 경우 꼼꼼하게 준비해온 자료를 뒤져가며 답변했다. 중앙은행 총재의 입에서 ‘아차’하는 사이에 말 한 마디만 삐끗 잘못 나와도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총재를 보좌하는 이들은 그의 이처럼 신중한 자세가 작은 실수 하나도 허용하지 않게 한다고 귀띔했다.

외환보유액 더 늘려야

━1997년 한국경제를 쓰러뜨린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한국은행이 보유한 외환의 급격한 감소였습니다. 우리 경제규모에서 외환을 얼마나 비축해놓아야 적당하다고 봅니까?

“외환보유액이 5월 말 기준으로 936억3000만 달러입니다. 지난해 말보다 조금 줄어들었는데,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빌려온 자금을 거의 다 상환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17억 달러 가량 남아 있지만 이것도 8월까지 모두 상환할 계획입니다. 우리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일본 중국 홍콩 대만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습니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적정 외환보유 수준은 그 나라의 경제여건이나 특성에 따라 다릅니다. 금융시스템이 건전한 나라는 그렇지 못한 나라보다 외환을 덜 갖고 있어도 돼요. 경제의 질적 측면까지 고려해 적정 외환보유액을 산정하는 작업은 그리 단순한 수학이 아닙니다.

대체로 경상 외환지급액 기준으로 3개월분 이상의 수입을 충당할 수 있는 규모이거나 단기 외채 기준으로 1년 이내에 만기 도래하는 차입금의 상환을 충족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유한 936억 달러는 월 평균 경상지급액의 5.8배이고 1년 내 만기 도래하는 단기 외채의 1.6배 수준이므로 단기적으로는 대외지급 능력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기업 및 금융시스템이 선진국처럼 건실한 상태가 아닙니다. 구조조정이 진행중이고 대외 신인도도 아직 만족할 만한 단계로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남북한 관계 같은 특수한 요인까지 고려하면 외환보유액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좀더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연방기금 금리를 올 들어 2.5%포인트 인하했는데 한국은행은 2월에 0.25%포인트 인하했을 뿐입니다. 재정경제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내심 금리의 추가 인하를 희망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겠지만 원론적인 말씀이라도 해주시죠.

“한국을 포함해 지금까지 18개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미국과 경제여건이 다르다며 금리 인하에 부정적이었던 유럽 중앙은행도 5월10일 목표금리를 우리처럼 0.25%포인트 내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마다 처한 경제상황이 다릅니다. 각국의 중앙은행이 FRB의 통화정책을 무조건 따르지는 않습니다. 자국의 대내외 경제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판단해 금리인하의 시기와 폭을 결정합니다.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경기상황과 물가동향, 금융시장 등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관찰, 분석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하겠습니다. 해외 경제여건도 종합적으로 참고해 결정할 겁니다. 그러니 지금 방향을 예단해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금리는 정부나 국민이 원한다고 해서 올리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제 상황에 비춰 인하할 필요가 있으면 인하하고 필요가 없으면 안 하는 것입니다.”

인터뷰를 가진 지 며칠 뒤에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국은행은 콜금리를 인하하지 않고 동결했다. 그래서 인터뷰 내용을 다시 뜯어 읽어봤지만 콜금리 동결을 시사한 대목은 찾아내기 어려웠다. 중앙은행 총재가 되려면 듣는 사람이 감을 잡을 수 없도록 애매하게 말하는 기술을 익혀야 하는가 보다.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도 금융정책에 관해 의회에서 증언할 때 완곡하고 모호한 용어를 사용해 시장에 주는 충격을 줄인다.

공부 미련 못 버린 공무원

━여담 같은 질문을 하나 해보지요. 미국 같은 나라도 외환을 보유할 필요가 있습니까? 미국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결제통화를 갖고 있으니 아쉬울 게 없을 듯한데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그런 면에서 유리하지요. 그중에서도 미국은 기축통화 국가거든요. 물론 미국도 유로화나 엔화 등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처럼 외환을 많이 가질 이유는 없죠. 더욱이 경제시스템도 아주 튼튼하니까요.”

FRB의 금리정책을 분석하고 전망하자면 그린스펀 의장의 학문적 배경이나 경제철학을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런 차원에서 전총재의 개인 이력을 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다.

전총재는 서울대 경제학과 4학년 때인 1960년 고시 행정과(12회)에 합격했다. 사법과를 포함한 고시 12회 동기 중에는 이종남 감사원장, 김기춘 한나라당 의원, 하경철 헌법재판관, 강경식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이규성 전 재경부 장관, 장덕진 전 농수산부 장관, 염보현 전 서울시장 등이 있다. 분배문제를 집중 연구한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총재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스승이고 한국경제발전학회를 물려주는 등 학문적 교분이 깊다. 전총재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1966∼68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고시에 합격해 13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 그만둘 때는 상당히 어려운 결단을 내리셨을 것 같습니다.

“공무원을 하면서도 학문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컸습니다. 그 시절에는 학사학위만 있어도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기에 공무원을 하면서도 시간강사로 강단에 섰죠. 1976년 은사이던 박희범 선생님이 충남대 총장으로 가셔서 경제학과를 신설했습니다. 유자격자가 드물던 때라 그분이 내려오라고 해서 과감하게 대전으로 내려갔죠.”

━관계에서 출세할 비전이 안 보였습니까? 솔직히 말해 출세하려고 고시 공부하는 것 아닙니까.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웃음). 징계처분을 받거나 남보다 승진이 늦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이 말씀을 드리기는 조심스러운데, 제가 공무원 생활을 그만뒀을 때가 유신시대였습니다. 그때 ‘공무원 노릇을 오래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정도로만 이해해주세요.”

전총재의 경력을 보면 재야 성향이 엿보인다. 1980년에는 교수 시국선언에 참여했고 경제정의실천연합에서도 활동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은 ‘재야 경력’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재야 활동’ 대신 ‘비정부기구(NGO) 활동’이라고 써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가 치른 여러 차례의 고초가 ‘정부기구’에서 활동했기 때문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비정부기구 활동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가 1980년에 겪었던 일도 가까운 몇 사람 외에는 잘 모른다. 그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싫어하고 한은 총재가 된 후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조차 꺼린다. 그만큼 기억하기 싫은 악몽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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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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