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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 올스타 박찬호

호텔경영 꿈꾸며 고급영어 배우는 베벌리힐스 백만장자

  • 송재우 < 스포츠평론가 > jwsong@sports.com

ML 올스타 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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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꿈을 이루는 사람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박찬호가 마운드에서 공을 뿌리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미국 진출 8년. 공은 빠르지만 컨트롤이 불안한 ‘반쪽짜리’ 투수였던 박찬호는 야구의 본고장에서 올스타로 선발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박찬호 신화’는 이제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1994년 1월. 국내 야구팬들에게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스무 살의 젊은이가 메이저리그의 명문구단 LA다저스에 입단했다. 한국 야구 100년사에 길이 빛날 뜻깊은 순간이었다. 박찬호. 당시 한양대 2학년에 재학중인 공주고 출신의 투수였다. 그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워낙 비밀스럽게 진행됐기 때문에 야구인들조차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사실 그때까지 여러 명의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의 손짓을 받고 있었다. 최동원, 선동열, 김재박, 정민태 등이 그들이다. 또 프로야구 원년의 영웅 박철순도 일찍이 미국에 진출, 더블A까지 오른 바 있다. 하지만 이들과 박찬호의 차이점은 분명했다. 다른 선수들이 국내에서 확실한 스타로서 대접을 받은 데 비해 박찬호는 야구계에서 속칭 ‘공만 빠른 투수’로 알려져 있었다.

박찬호의 고교 시절 성적표도 그리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 박재홍 등 동기생들이 차세대 스타로 자라나는 동안 박찬호는 이류에 머물러야 했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박찬호는 상대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매스컴의 추적을 덜 받았고 그 때문에 미국 진출이 수월했는지도 모른다. 임선동의 경우 연고구단 LG트윈스에 지명돼 법정까지 갔다가 늦깎이로 프로에 진출하는 홍역을 치렀다.

태평양을 건너 낯선 미국 야구에 투신한 지 8년. 이제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들이 벌이는 올스타전에 출전할 만큼 성장했다. ‘코리아특급’ 박찬호가 올스타로 성장하기까지는 엄청난 땀과 노력이 숨어 있다. 박찬호가 만들어온 ‘8년의 신화’를 되짚어 보았다.

야구만큼 힘들었던 영어

미국 땅을 처음 밟으면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영어다. 박찬호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에만 전념해 온 박찬호가 구사할 수 있는 영어는 ‘Hello’ ‘Hi’ ‘Good morning’등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1994년 다저스의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박찬호는 회화책을 보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훈련장에 가보니 여기저기서 귀에 들어오는 단어는 ‘dude’였다. 1993년 시즌이 끝난 뒤 휴식을 보내다가 오래간만에 만난 다저스 선수들이 반갑게 포옹하며 말하는 ‘dude’라는 말이 박찬호에겐 구세주와도 같았다. 흔히 친한 친구끼리 부르는 단어인 ‘dude’가 미국 진출 후 박찬호가 처음 배운 단어였던 것이다.

여기서 박찬호의 첫 에피소드가 탄생한다. 이미 얼굴이 익은 다저스의 토미 라소다 감독이 동양 선수로는 처음 캠프에 합류한 박찬호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걸어왔고, 박찬호는 큰 소리로 “Hey dude”라고 말한 것이다. 주변에 들릴 정도였기 때문에 곳곳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라소다 감독도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메이저리그 초년병의 실수를 애교로 받아주었다. 당황한 박찬호는 ‘dude’라는 말이 아주 절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윗사람에게는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미국 진출 후 박찬호는 시즌이 끝나면 대학 랭귀지코스에 등록해 영어공부를 했다. 물론 오랫동안 야구를 해왔기 때문에 코치가 말하는 것은 눈치로 알아들었지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몰라 답답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박찬호는 동료들과 얘기하는 걸 꺼리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익혀나갔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가 통역을 데리고 다니면서 필요한 말만 하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메이저리그 초년병 시절 박찬호와 다저스 포수 마이크 피아자는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가 뭔가 전달하려는 피아자와 표정만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박찬호를 보고 한때 국내에서는 ‘피아자가 너무 건방지고 투수를 배려할 줄 모른다’는 비난도 있었다.

1996년 시즌을 앞두고 필자는 박찬호와 전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박찬호에게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냐”고 물었는데 박찬호는 “얼마 전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혼자서 흥정하고 계약까지 했다”며 자랑했다. 값을 깎고 옵션까지 추가로 달았다며 영어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에이전트인 스티브 김에 따르면 박찬호가 본토 사람에게 영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면 가히 ‘용감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라고 한다. 그런 ‘무모함’이 오늘날 TV 인터뷰에서도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초가 된 것이다.

요즘도 박찬호는 영어 공부에 열심이다. 골프의 박세리처럼 박찬호도 개인교사를 두고 고급 영어를 익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과거엔 그냥 돌아다니면서 쓰는 영어가 필요했지만, 이젠 만나는 사람이나 모임의 성격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만큼 박찬호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박찬호가 영어에 욕심을 부리는 이유는 또 있다. 요즘 들어 박찬호는 선수 생활 이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찬호는 은퇴 후 미국에서 호텔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결국 미래의 사업을 위해 영어 실력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투수왕국’의 선발투수

1996년 제5선발을 노리면서 메이저리그에 재입성한 박찬호는 다듬어지지 않은 미완의 대기였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메이저리그 첫 선발 등판을 한 박찬호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해야 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운드에 오른 박찬호는 시속 155km를 웃도는 특유의 강속구를 구사하며 처음 네명의 타자를 연속 삼진 처리했다. 하지만 곧이어 컨트롤이 불안해지며 네명의 타자를 연속 볼넷으로 내보냈다. 그러자 토미 라소다 감독이 마운드로 걸어나갔다.

“다음 타자가 투수니까 마음 편하게 상대하라.”

그러나 박찬호의 컨트롤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투수마저 볼넷으로 내보내고 쓸쓸히 강판당한 것이다. 당시 미국 최고의 스포츠채널 ESPN의 해설자 조 모건은 “야구 인생 40년 동안 이런 장면은 처음 본다”며 박찬호의 ‘널뛰기’ 컨트롤에 혀를 찼다.

그 후 박찬호는 에이스 투수 라몬 마르티네즈의 부상으로 예기치 않게 마운드에 올라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리글리 필드에서 메이저리그 첫 승을 거두는 쾌거를 올린다. 당시 국내 언론들은 박찬호의 1승을 월드컵의 1승과 맞먹는 승리라고 보도했다. 지금이야 1승이 ‘또 하나의 승리’일 뿐이지만, 메이저리그 진출 자체가 ‘기적’이었던 당시 분위기에서는 1승은 ‘대사건’이었다.

박찬호의 컨트롤 불안은 1999년까지 이어졌다. 2000년 시즌 전반기까지 박찬호의 유일한 단점은 컨트롤이었다. 1997년 풀타임 메이저리그 선발로 승격된 이후 박찬호는 매년 10승 이상을 올리는 선발투수로 자리를 굳혔지만, 춤추는 컨트롤은 쉽게 안정되지 않았다. 1999년 13승을 거두고도 기복이 심했던 박찬호는 필라델피아 원정경기에 나갔는데 당시 해설자는 이런 말을 했다.

“박찬호의 공은 사이영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위력적이다. 하지만 박찬호는 아직 투수로 불리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내 눈에 박찬호는 투수라기보다 돌팔매질을 하는 선수에 불과하다.”

이것은 메이저리그 무대에 선 투수에게 모욕에 가까운 말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꾸준히 노력했고 어느덧 과거와 같은 돌팔매질 투수의 모습은 사라졌다. 지난 시즌 18승을 올리며 20승 투수의 터전을 닦았고 매년 9이닝당 4.5개에 이르렀던 볼넷도 이젠 3.5개로 줄어들었다. 면도날 컨트롤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 타자들이 방망이를 들고 마냥 기다리는 시절은 이제 지나간 것이다. 실제로 최근 박찬호는 경기 후반 힘이 떨어졌을 때를 제외하면 거의 볼넷을 허용하지 않는다. 박찬호가 특급 투수의 대열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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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우 < 스포츠평론가 > jwsong@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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