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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좌파의 불모지에 진보의 뿌리를 내린 사람들

한국 대표적 지식인의 사상적 원류 ① 진보주의자

  •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 kimhoki@yonsei.ac.kr

좌파의 불모지에 진보의 뿌리를 내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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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 본격적인 진보주의는 1987년 6월항쟁의 열린 정치공간 속에서 비로소 ‘학문적 시민권’을 획득했다. 진보주의 지식인 그룹은 1990년대를 지나면서 이론적으로 매우 성숙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심각한 정치적 딜레머에 빠져 있다.
지난 여름 한국 지식사회에서는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있었다. 한편에서는 세무조사가 한국사회의 오랜 숙원인 언론개혁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한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명백한 언론탄압으로 보고 언론자유의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를 계기로 지식사회는 빠른 속도로 분열되었고,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에서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이런 공방전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발언 수위나 논쟁태도를 볼 때 새삼 지식인과 지식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식인이란 지식과 연관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지식과 연관된 분야에는 교육, 언론, 문화 등이 있으며, 여기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넓은 범위의 지식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식인 가운데 ‘독특한’ 집단 하나가 바로 대학교수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다. 첫째, 지식이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틀’을 다루는 것이라면, 이런 인식의 틀을 둘러싼 담론은 어느 나라건 주로 대학교수들이 만들고 유포해 왔다는 사실이다.

둘째 특징은 지식인 집단이 자리잡고 있는 대학제도에서 비롯한다. 최근 정보사회의 도래와 함께 대학의 위기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대학은 여전히 진리의 거처이자 자유의 상징이다. 대학의 상대적 자율성은 그 구성원인 대학교수에게 사회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하나의 권리이자 의무로 부여해 왔다.

좌파냐 우파냐

지식사회에는 적지 않은 균열이 존재한다. 특히 인간과 사회를 탐구대상으로 하는 인문·사회과학의 경우 이론적 접근이나 이념적 시각, 그리고 정치적 견해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해 왔다. 대학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서유럽의 지식사회는 이론 및 이념적 시각에 따라 매우 복잡다단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실용적 전통과 자유주의적 경향이 강한 미국에서도 이념과 정치적 시각에 따른 미세한 차이들을 감지할 수 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볼 때 대학교수와 이들이 주축을 이루는 지식사회의 이러한 구성은 일견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교수로 대표되는 지식인이 사회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갖고 있지만, 적어도 인문·사회과학의 경우 사회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지식인’으로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이 진리 탐구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더라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에서 완전히 가치중립적인 것이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오늘날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과학기술의 경우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일지라도, 그것의 사회적 적용과 영향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지식사회의 다양한 구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념적 시각과 정치적 견해에 따른 좌파와 우파의 개념이다. 1994년 ‘좌파와 우파’를 발표해 세계적으로 커다란 화제를 모은 이탈리아 정치학자 보비오(N. Bobbio)는 정치란 필연적으로 대립적이기 때문에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계속 정치적 사고에 영향을 끼치고, 따라서 이러한 구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평등에 대한 태도에 따라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가능한데, 좌파가 더 많은 평등을 원하는 그룹이라면, 우파는 평등을 부정하지는 않되 사회가 불가피하게 계층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본다면, 일반적으로 진보주의는 좌파에, 보수주의는 우파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사실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며, 역사적인 시기와 문맥에 따라 변화되어 왔음에 주목해야 한다. 19세기 자유시장 옹호자들이 당시에는 좌파에 속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우파로 분류되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구분도 이와 유사한데, 일반적으로 변화를 중시하면 진보주의로, 안정을 중시하면 보수주의로 분류한다. 하지만 변화와 안정도 시점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한국에서 진보주의 인문·사회과학은 1980년대 중반에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물론 그 이전에 박현채 교수의 ‘민족경제론’, 한완상 교수의 ‘민중사회학’, 이효재 교수의 ‘분단사회론’ 등 진보적 성격이 강한 담론들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진보주의 인문·사회과학의 시작은 1985년 ‘창작과 비평’에 실린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볼 수 있으며,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열린 정치공간 속에서 ‘학문적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특히 사회구성체 논쟁은 ‘사회과학의 시대’를 열었다고 할 만큼 대학사회와 지식사회에 일파만파의 영향을 끼쳤다. 현 시점에서 보면 그 열기가 과도했던 감이 없지 않지만, 사회구성체 논쟁은 진보주의 인문·사회과학의 정립이라는 점에서 ‘전환적 의의’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한국전쟁 이후 단절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적 전통의 ‘복원’을 의미했다.

한국의 진보주의

하지만 사회구성체 논쟁은 1990년대 들어 그 열기가 갑자기 식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대외적으로 1989년 동구권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대내적으로 6월 민주항쟁 이후 제한적 수준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상황인식이 등장한 게 가장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이후 진보주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는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 시민사회 논쟁, 한국경제 위기 논쟁 등이 진행되었다. 또 1980년대와 다른 다양한 이론적 시각과 정치적 견해들이 나타났다. 1989년 합리적인 시민운동을 표방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출범 이후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의 창립,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의 출범은 이와 직·간접으로 관계된 진보적 지식인 그룹을 등장시켰다.

현재 한국의 진보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은 적지 않다. 지난해 ‘한국 현대사상의 흐름’을 발표해 국내 학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윤건차 교수(일본 가나가와대)는 한국 지식인 지도를 만들었는데, 그는 진보주의 지식인을 ‘구좌파적 마르크스주의’, ‘신좌파적 마르크스주의’, ‘알튀세르적 마르크스주의’, ‘좌파적 시민사회론’, ‘급진적 민주주의론’, ‘진보적 민주주의론’ 등으로 분류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이런 분류에 문제가 없지 않으나, 당대 우리 사회 지식인의 이념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라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반성이 사회학자로서 우리 지식사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었다면, 부러움은 윤교수가 국내 학계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글은 최근 지식사회의 격동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한국 지식사회에 대한 가벼운 사회학적 보고서다. 우리 사회 지식인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그들은 우리 시대를 어떻게 진단하고 또 어떤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한국 지식인들의 생각을 탐색해 보는 게 이 글의 목표다.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미리 밝혀두고 싶은 것이 있다. 필자는 가능한 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지식인들의 공과를 논의해 보려 했으며, 각 이념을 대표하는 지식인의 선정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학계 안팎의 다양한 평가에 의존했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 진보주의를 대표하는 네 명의 지식인들을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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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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