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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대권도전 선언한 김중권 민주당 최고위원

“이젠 DJ그늘 벗어나겠다”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이젠 DJ그늘 벗어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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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의 그림자. 당·정에 간섭말아야
  • - DJ에게 섭섭하지 않아, 기회 못살려 허탈할 뿐
  • - 영호남 아우를 후보는 나, ‘영남후보론’은 유효하다
  • - 지지율 급상승 확신, 11월15일 출정식을 두고보라
김중권(金重權) 최고위원은 화술이 독특하다. 김최고위원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면서 마치 3자가 얘기하듯 이야기를 전개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난 8월24일에 내가 청와대 개편을 요구합니다. 대통령을 만나 ‘집권후반기로 가기 때문에 국민의 소리를 들어주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청와대 주변에 많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그런 사람 중심으로 청와대를 개편해주십시오’, 대통령에게 그렇게 요구하는 겁니다.”

주어와 술어가 조응하지 않고 시제(時制)도 일치하지 않는 독특한 말투는 김최고위원의 평소습관인 듯했다. 김최고위원의 측근들도 이를 지적하자 “그러고 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같다”고 했다.

김최고위원은 최근 한두 달 사이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8월말 대통령을 향해 당정개편을 요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국무총리 청와대비서실장 빅3 퇴진을 주장했으나 김최고위원만 당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원내진출을 위해 내심 검토해온 10·25 서울 구로을 재보선 출마도 여권내 견제세력의 반발로 무산됐는데, 그 무렵 당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자 당무거부 파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아마 김최고위원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일 것이다. 그런 체험담을 ‘관찰자시점’에서 얘기하는 김최고위원의 술회를 듣노라면 그가 느꼈을 격한 감정은 슬그머니 배제되고 줄거리만 남는다. 어쩌면 이 점을 노린 의도적인 수사(修辭)가 아니었을까.

신동아와의 인터뷰는 지난 10월13일 오전 9시 서대문 임광빌딩 김최고위원의 변호사사무실에서 있었다. 이날 김최고위원은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했다. 하나는 당대표를 그만두게 된 경위였고 또다른 하나는 대표를 그만둔 심경이었다.

―지난해 12월 대표 취임사에서 ‘강한 여당론’을 주창하셨습니다. 그 목표는 얼마나 달성했다고 평가하십니까.

“강한 여당을 만들기 위해 당내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정책생산의 주도권을 당이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당은 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곳이어서 민심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정책생산을 당에서 해야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당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함께 국정을 책임지는 상생의 동반자관계를 확립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강한 여당론입니다. 이를 위해 당대표로 있으면서 당의 회의질서를 세웠습니다. 연수제도도 확립했습니다. 당이 정책주도권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대야관계에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야당이 정권쟁취 욕구만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밖에서 보기에 한나라당은 김대중 대통령과 청와대를 집중 공격했고 그 과정에 여당인 민주당은 소외된 느낌이 든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야당의 정략적 사고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얘기로 청와대를 건드리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극대화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김최고위원은 “청와대가 사사건건 당의 일에 간섭하는 모습이 외부에 드러났기 때문에 야당의 공격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며 말끝에 가시를 세웠다.

김중권 최고위원의 좌우명은 세 가지다. ‘내가 먼저 무거운 돌을 들자’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남이 먼저 배신하기 전에 내가 남을 배신하지 않는다’이다. 한결같이 우직함이 느껴지는 좌우명들인데 김최고위원은 얼마전 이런 좌우명의 ‘내공’을 시험받는 사건에 맞닥뜨렸었다. 8월말 ‘항명’으로 언론에 묘사됐던 대표직 사퇴를 둘러싼 파문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김최고위원은 “항명이라는 표현은 신문이 만들어낸 용어고 이제부터 진상을 얘기할 테니 잘 듣고 정리해달라”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당대표도 바꿔주십시오”

8월24일 오전 김최고위원은 김대중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청와대 개편을 요구했다.

“집권후반기로 가기 때문에 국민의 소리를 들어주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청와대 주변에 많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그런 사람들 중심으로 청와대를 개편해주십시오.”

이처럼 김최고위원이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청와대 개편을 요구하기까지 김최고위원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사이에는 크고작은 감정대립이 있었다. 3·26개각 때 당대표인 김최고위원이 사전에 언질을 받지 못한 것은 오히려 작은 사건이었다. 그후로도 당대표를 흔드는 청와대의 움직임이 계속됐다는 게 김최고위원 측의 생각이었다. 10월25일 치러질 서울 구로을 재선거에 출마할 민주당 후보 선정에도 청와대가 개입해 김최고위원의 출마를 막았다고 믿고 있다. 김대통령에게 청와대 개편을 요구하면서 김최고위원은 자신의 팔도 과감하게 잘랐다.

“여당이기 때문에 당정은 물려있는 거예요. 그래서 대통령에게 청와대 개편을 하면서 당도 개편해달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총장이나 정책위의장 정도를 바꾸는 것으로는 안된다, 당3역 교체니, 4역 교체니 하는 정도로는 당정개편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으니 대표가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대표가 바뀌어야만 대통령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고요.”

김최고위원은 자신을 포함한 전면적인 당정개편 건의를 “대통령에 대한 충정”이라고 표현했다. 김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김대표의 얘기를 숙고해 보겠다”고만 답했다고 한다.

그날 오후 김최고위원은 울산과 대구에 예정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민주당사로 돌아오지 않고 곧장 공항으로 갔다. 지방 행사에 참석한 뒤 대구에서 하루를 자고 8월25일 서울로 올라왔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대표직 사퇴결심을 굳힌 김최고위원은 당사 사무실에 들러 책상을 정리했다. 그리고 비서에게 짐을 서대문사무실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당시 김최고위원은 먼저 대표 집무실을 비운 뒤 8월27일 아침, 월요일마다 있는 확대당직자회의에서 정식으로 사퇴표명을 한 뒤 사회봉을 물려주고 회의장을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형님, 재고해 주십시오”

“그런데 같이 일했던 사무총장이나 원내총무나 정책위의장에게 이 얘기를 귀띔하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총장과 총무를 찾은 겁니다. 박상규 사무총장은 인천에 있어 전화로 얘기했고, 이상수 총무가 내 방에 왔어요. 그래서 내가 ‘어제 대통령을 만나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고 대표직을 사퇴하기로 했다’고 얘기를 하고 월요일까지 일체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이상수 총무와 나는 고려대 선후배 사이이기 때문에 사석에서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이총무가 ‘형님 재고하십시오’ 하고 말리는 거예요. 이미 결심했기 때문에 말릴 단계가 아니다, 이렇게 나가는 것이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다, 이 정부를 살리고 이 당을 살리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총무를 달랬습니다. 마침내 이총무도 ‘알겠습니다. 그럼 외부에 일체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며 받아들이더라구요.”

다음날인 일요일 김최고위원은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골프장에 갔다. 민주당팀과 서울대 교수팀, SK그룹팀과 친선 골프를 쳤다. 시합을 마친 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서울대는 서울대대로 SK그룹은 SK그룹대로 학교나 회사에 대해 선전했다.

민주당 차례가 돼 김최고위원이 나섰다. 김최고위원은 당에 대해 몇 마디 얘기를 한 뒤 “내가 내일 안으로 중대한 정책 결단을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참석자들 사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김최고위원이 말한 ‘중대 결단’을 대권도전으로 이해한 참석자들은 “김대표 열심히 밉시다” “민주당을 맡을 수 있도록 뒷받침합시다”하며 잔을 부딪치기도 했다. 이런 ‘소동’을 김최고위원은 가만히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이상수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장 만나달라는 것이었다. 김최고위원이 “지금 골프장에 있어 곤란하다”고 하자 이총무는 “내일(8월27일) 새벽에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이총무가 이호웅 대표비서실장과 함께 김최고위원의 북아현동 자택을 찾아왔다. 이 자리에서 이총무는 거듭 대표사퇴를 말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그만둘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거듭 이총무의 반대를 접하면서 김최고위원도 심사숙고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퇴의사를 철회했다.

큰 결정을 했다가 철회한 뒤라 김최고위원은 그날은 당사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결근의 이유로는 심신이 피곤해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했다.

“그런데 8월27일 월요일 아침에 조간신문을 보니까 내가 구로을 재선거에 출마하지 못한 것 때문에 투정부리는 사람으로 나 있더라고요. 청와대도 나를 막 공격하고 있었구요. 이것이 나를 굉장히 자극한 겁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내가 뭔가 한마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인 화요일에 청와대 비서실을 공격한 것 아닙니까. 비서실의 기능과 자세에 대해 치고 나간 겁니다. 파동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내가 당무를 거부한 것으로 돼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새로운 정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당직사퇴를 하겠다 한 것이 이렇게 각색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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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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