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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수지는 알아도 수지킴은 모른다”

수지킴 사건 특종 이정훈 기자 vs 은폐혐의 구속 이무영 전 경찰청장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분당 수지는 알아도 수지킴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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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의 수지킴 사건 수사를 중단시킨 혐의로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구속됐다. 그러나 이 전청장은 수사를 중단시킨 사실이 없다고 항변한다. 어느 편이 옳은 것일까. 이 전청장을 만나 직격 인터뷰했다.
이무영(李茂永·57) 전 경찰청장이 수지킴 사건 수사를 중단시킨 혐의로 2001년 12월10일 구속됐다. 검찰측 설명에 따르면 이 전청장은 2000년 2월 김승일(金承一) 당시 국정원 대공수사국장의 부탁을 받고, 경찰청 외사관리관실이 하고 있던 수지킴 사건 수사를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되는 날까지 이 전청장은 “수사를 중단시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주지하다시피 이 전청장은 경찰 수사권 독립을 추진했던 인물. 때문에 경찰청에서는 ‘이 전청장의 구속은 검찰의 보복이다’라는 주장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이들은 “이 전청장은 김승일 국장의 부탁을 받고 수사를 중단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정원이나 검찰이 요구하면 역학 관계상 꼼짝없이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 경찰이다. 관계 법령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으니 경찰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 전청장으로서는 국정원의 지시를 따르라고 규정한 관계 법령을 어긴 것이 된다”고 지적한다.

검찰은, 검찰총장이 국회에서 탄핵 대상으로 몰릴 정도로 위기에 몰린 상황을 역전시키는 기회로 수지킴 사건 수사를 활용한 면이 있다. 한 검찰 소식통은 “검찰은 수지킴 사건에 관련된 자들을 엄벌에 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무너진 검찰의 위상을 지키려 했다”고 말했다. 2001년 12월1일 기자는 수지킴 사건 수사를 중지시킨 혐의를 받고 있던 이무영 전 청장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이 전청장과의 인터뷰는 열흘 전쯤 약속된 것이었다. 이 전청장은 2002년 여름에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전북지사 후보로 출마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청장으로서는 전북지사 후보로서의 포부를 밝히기 위해 인터뷰에 동의한 것으로 보이는데, 수지킴 사건이 터져 나옴으로써 인터뷰의 주제가 바뀌어버렸다. 2년 전수지킴 사건을 처음 공개한 기자는 총력을 다해 수지킴 사건과 관련한 질문을 퍼부었다. 이 전청장과의 인터뷰는 그가 구속되기 전날까지 전화 통화를 통해 좀더 보완했음을 밝힌다.

-이청장께서는 경찰청의 수지킴 사건 수사를 덮은 장본인이라는 보도가 있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분당 수지는 알아도 수지킴은 모릅니다. 수지킴은 이기자가 전문가니, 제가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인지 아닌지는 더 잘 알 것 아닙니까. 수지킴 사건은 1987년 초에 발생했다고 하던데, 그때 저는 88올림픽 기획과장(총경)으로 경비계획을 짜고 있어 그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어젯밤에 이기자가 쓴 ‘신동아’ 기사를 읽고 1987년에 수지킴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세상에! 1987년이면 대명천지인데, 그런 일이 다 있었더군요. 1987년에 수지킴 사건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제가 왜 재수사를 은폐하겠습니까.”

“청장실 나가다 김국장을 만났다”

-2000년 1월20일자 ‘주간동아’에 제가 수지킴 사건을 처음 보도하고, 이어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홍콩까지 날아가 수지킴 사건을 취재한 후 2월12일 방영했습니다. SBS 팀이 홍콩을 방문한 직후 경찰청 외사관리관실은 홍콩 주재 경찰관을 통해 홍콩 경찰의 자료를 구해 수지킴 사건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2월15일 국정원의 김승일 대공수사국장이 이청장을 찾아온 것은 사실 아닙니까.

“김승일 국장을 만난 것을 해명하기에 앞서 당시의 제 상황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저는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한직으로 꼽히는 경찰 관련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마다 경찰 개혁 방안에 관한 시방서를 만들어보곤 했습니다.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께서 경찰청장에 임명했을 때 저는 곧바로 경찰 개혁에 착수할 준비가 돼 있었던 것입니다.

1999년 11월15일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경찰청장 임명장을 받던 날,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받은 후 대통령께 경찰 개혁에 관해 보고를 드리겠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임명장을 받은 후 바로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경찰 개혁 방향을 적은 제 취임사를 드리고 20여 분간 경찰 개혁 방향에 대해 보고드렸습니다. 경찰 개혁은 타기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찰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이라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대통령께서는 좋은 생각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통령의 격려로 고무된 저는 자신을 갖고 바로 경찰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1999년 12월1일부터 2000년 3월9일까지 ‘경찰 대개혁 100일 작전’에 들어간 것입니다. 저는 전체 경찰공무원의 96%를 차지하는 경위 이하 경찰공무원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것이 경찰 개혁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하고, 경찰 헬기를 타고 울릉도와 마라도까지 날아가 간담회를 갖고, 현장 근무자의 애로 사항을 청취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경찰 개혁 방향에 대해 밝히고 경찰 개혁의 당위성에 대해 역설했습니다. 세세히 세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때 제가 만난 현장 근무자가 무려 1만5000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김승일 국장이 저를 찾아왔다고 하는 것은 제가 경찰 개혁 100일 작전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던 2000년 2월15일이라고 합니다. 날짜까지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가 그렇다고 하니 그날이 맞겠지요. 김국장은 경찰청장실에서 5분간 나를 만나 수지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 중지를 요청해, 제가 받아들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기억은 다릅니다. 우선 제 기억은 김국장의 기억만큼 명료하지 않습니다. 그날 비서실장(吉炳松 경정)이 ‘국정원의 대공수사국장이 찾아왔다’고 하기에 다른 일로 청장실을 나오다가 김국장을 만난 것 같습니다. 가볍게 수인사만 하고 나가려고 하자, 김국장이 홍콩인가 뭔가 하는 이야기를 꺼내기에, 저는 ‘외사 사항이라면 외사관리관(김병준 치안감·현재는 경찰청 정보국장)과 협조하시지요’ 하고 밖으로 나간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잠깐 잠깐! 말씀을 잘라서 미안합니다만, 경찰청에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국에 해당하는 보안국이 있지 않습니까. 대공수사국장이 찾아왔으면 보안국장을 만나라고 해야지 왜 외사관리관을 만나라고 합니까.

“그때 대공과 관련된 외사 사항이 많았습니다. 중국에서는 한국인 사업가를 납치해 돈을 부쳐주면 석방해주겠다고 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던 때였으므로 외사관리관이 중국 공안에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곤 했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나는 한국인 납치사건에 대해 국정원은 당연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공수사국장이 홍콩 어쩌고 하기에 저는 외사 사항으로 판단하고 외사관리관을 만나라고 한 것입니다.”

-수지킴 사건은 중국에서 일어난 한국인 납치와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그런데 왜 외사관리관실에서 수지킴 사건을 다룹니까. 대북 용의점이 있는 사건이라면 경찰청에서는 보안국이 맡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외사관리관실에서는 대공사건도 담당합니다. 과거 외사관리관(경무관)은 ‘보안심의관’이란 이름으로 보안국장(치안감) 밑에 있다가 독립기구로 떨어져 나왔으니까요. 한때 국정원에서도 해외파트가 북한과 해외를 전부 담당하지 않았습니까. 주간동아와 SBS 보도가 있은 후 홍콩에 있는 우리 경찰 주재관이 홍콩 경찰에게 수지킴 관련 자료를 요청해 그 자료가 경찰청 외사관리관실로 들어온 모양입니다. 그러니 외사관리관실은 수지킴 사건에 관한 자료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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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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