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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난형난제 列傳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한국의 난형난제 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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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경재 이명재 이정재
  • ● 정해창 정해왕 정해방
  • ● 이규성 이규홍
  • ● 장영식 장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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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상훈 이상철
  • ● 손학래 손영래
  • ● 임내규 임내현
  • ● 송진훈 송진혁 송진현
지난 1월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후임에 이명재(李明載·59) 전 서울고검장이 임명되자 신임 이총장의 형제들이 또 한번 화제에 올랐다. 이총장을 비롯해 형 이경재(李景載·63) 전 중소기업은행장, 이정재(李晶載·56) 전 재경부 차관 등 3형제는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후 지난해 초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후진을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는 미덕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동생의 비리로 재임 8개월만에 불명예 퇴진한 데 이어 여동생까지 구속되면서 곤욕을 치른 신 전총장 형제와 극적인 대조가 됐다.

이총장 3형제는 ‘대구 3재(才)’로 불린 수재들이었다. 경북 영주가 고향으로 대구에서 명문 경북고를 나와 서울대에 진학한 뒤 행정고시(경재·정재)와 사법고시(명재)에 잇달아 합격했다. 1990년대 초 이총장이 대형 경제범죄를 주로 다루는 서울지검 특수1부장으로 있을 때 이 전행장은 한국은행 자금부장과 은행감독원 부원장보를, 이 전차관은 재무부 이재국장을 지내 ‘3재(載)가 한국경제를 끌고간다’는 말을 낳았다.

‘3才 3載’

이경재 전행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4학년 때인 1960년 고등고시 행정과(12회)와 한국은행 입행시험에 동시 합격했다. 강경식·이규성 전 재경부 장관, 전철환 한국은행장 등이 고시 동기. 이 전행장은 고심 끝에 한국은행으로 진로를 정했다. “공무원을 하려면 집에 먹을 게 좀 있어야 할텐데, 우리집 형편은 그렇지가 못해 ‘안정된 월급장이’를 택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은행에서 뉴욕사무소장·자금부장·이사·감사를 역임했으며, 은행감독원 부원장보, 금융결제원장을 거쳐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5월 중소기업은행장에 취임했다.

이 전행장은 1997년 1조3500억원의 사상 최대 적자를 낸 기업은행을 취임 후 2년 연속 흑자로 돌려세웠다. 2000년에는 40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해 웬만한 우량 시중은행을 앞섰다. 자회사 정리 등 일관된 구조조정과 대기업 여신 축소, 적극적인 수신 유치에 힘입은 결과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막판까지 당사자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확인해 공감을 얻어냈다.

지난해 5월 거듭된 3년 임기가 만료되자 행원들의 연임 요구에도 불구, 행장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금융연구원 초빙연구원으로 연구활동에 매진하면서 매주 하루씩 고향 영주의 동양대학에 내려가 ‘금융기관 경영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이 전행장의 누이동생인 춘재(春載·61)씨는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 이 대학 사회과학대학장을 거쳐 현재 심리상담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번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을 만큼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경북여고를 나와 서울대에 진학, 당시로선 신학문 축에 든 발달심리학을 전공했다. 이교수의 부군은 국민은행 상무를 지낸 서상록(徐相祿·62) 인천전문대학장.

이교수보다 두 살 아래인 이명재 검찰총장은 경북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때까지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못하자 당시 ‘시험 봐서 들어갈 수 있는 최고 직장’이던 한국은행에 시험을 치러 합격했는데, 그해 외환은행이 설립되자 외환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대학 졸업 5년만인 1970년 사법시험(11회)에 합격, 군 법무관을 거쳐 1975년 서울지검 영등포지청 검사로 출발했다.

이총장은 뒤늦게 검사가 됐지만, 은행에 근무한 경험을 살려 대검 중앙수사부와 서울지검 특별수사부에서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사건, 명성그룹 사건, 영동개발사건, PCS-종금사 비리사건, 세풍(稅風)사건 등 굵직굵직한 경제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해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당대 최고의 검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 사건 때는 이례적으로 검찰총장이 검사들을 대동하고 TV 카메라 앞에 나와 회견을 가졌는데, 당시 중수부 검사로 이 사건 수사를 주도하던 이총장이 사건개요와 수사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스타검사’로 떠올랐다.

그가 복잡한 경제사건을 수사할 때는 경제통인 형과 동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법도 한데,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전행장에 따르면 “경제의 큰 흐름이나 메커니즘에 대해 더러 조언한 적은 있지만, 명재도 워낙 경제사건을 많이 조사해봐서 어느새 ‘도사’가 다 돼 있더라”는 것.

이총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있던 지난해 5월, 신승남 당시 대검 차장이 검찰총장에 내정되자 검찰을 떠났다. 신승남 전총장은 이총장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지만, 사법시험 9회 출신으로 이총장보다 두 기수가 앞서 이총장이 굳이 물러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이총장은 사시 합격이 늦은 자신이 검찰에 남아 있으면 후배들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 “선배님이 검찰조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며 만류하는 후배 검사들을 뿌리치고 미련없이 물러났다가 7개월만에 검찰총장으로 금의환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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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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