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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성공학

탱크부대장에서 안경名人으로 대변신

(주)서전 육동창 회장

  • 장인석 < CEO 전문 리포터 > jis1029@hanmail.net

탱크부대장에서 안경名人으로 대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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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경의 ‘안’자도 모르던 예비역 육군장성이 안경 하나로 세계 일류의 반열에 올랐다. 그 비결은 단 두 가지. 독창적인 디자인과 최고급 소재였다. 그러나 말은 쉬워도 이 두 요소를 제품에 구현하는 데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마비스’ ‘이브생로랑’ ‘로덴스톡’ ‘실루엣’ ‘구치’ ‘레이밴’ ‘오클리’…. 세계적인 명품 안경들만 진열해놓는 유럽이나 미국의 유명 안경점에서도 손꼽히는 일류 브랜드들이다. 17년 전, 해외에서 그런 명품 안경점을 둘러보며 “왜 한국산은 없는 걸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초로의 동양 신사가 있었다. 그로부터 17년 후, 바로 그 남자가 만든 ‘코레이(Koure)’ 브랜드 안경이 세계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주)서전의 육동창(陸東蒼·71) 회장. 일반인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안경업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이름 석자로 통한다. 육회장의 사업 이력은 그 자체로 한국 안경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때 바닥까지 추락했던 우리 안경의 품질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고의 세월과 겹쳐 있기 때문이다.

안경제작 일괄공정 갖춰

그의 성공 과정과 비결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 의문부터 풀어가야 한다. 첫째는 그가 왜 하필이면 안경업을 선택했냐고, 둘째는 직업군인 출신으로 사업경험이 전무했던 그가 어떻게 성공의 길을 찾아갔냐다. 셋째는 그가 안경산업에 뛰어들기엔 너무 나이가 많았다는 점이다. 안경업은 디자인과 첨단 소재, 그리고 정밀가공으로 승부를 겨루는 초경량기술산업이다. 54세의 나이에 새로 시작하기엔 결코 만만치 않은 업종이다.

“안경업을 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습니다. 공직에서 물러나 이제 좀 쉬어볼까 하고 있는데, 집사람과 친척뻘 되는 재일교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일본에서 제법 규모가 큰 안경공장을 운영하던 그 분이 ‘한국에 합작회사를 차리려는데 좀 도와줄 수 없겠냐’고 하더군요. 그 분은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대리점에 위탁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제가 몇 차례 일을 도와준 적이 있죠. 그때 저를 잘 보았는지, ‘당신 아니면 안한다’고 강권하는 바람에 인연을 맺게 됐죠.”

그때까지 육회장은 그야말로 안경의 ‘안’자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었다. 그는 교육자의 길을 걸을 생각으로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범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 1학년도 마치기 전에 터진 한국전쟁이 그의 인생경로를 바꿔놓았다. 장교로 입대한 그는 진급을 거듭하면서 직업군인이 됐다. 기갑 주특기를 받은 그는 기갑부대 대대장을 거치며 국군 기갑부대 창설멤버로 활약했다. 1967년 현역 군인 신분으로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1980년 그만둘 때까지 중앙정보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73년에는 기갑병으로는 가장 높은 계급인 준장으로 진급했다.

1980년, 후배인 전두환 전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부임하면서 옷을 벗은 그는 대한건설협회에서 상임감사로 4년, 삼환기업 전무이사로 1년 동안 근무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1985년, 당시 일본 3대 안경메이커인 이사야마사(社) 김병용 회장의 제안을 받은 것이다.

“김회장을 따라 일본에 가서 공장을 둘러보고 일본 유수의 안경점을 돌아다닌 끝에 결심했지요. 그때 국내 안경산업은 극히 낙후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를 발전시키면 보람있는 일이 되리라 생각했어요. 당시 일본은 안경의 품질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이었기 때문에 기술이전을 받고 전문인력도 양성한다면 우리 안경업계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김병용 회장과 합작회사를 차린 그는 고품질의 안경을 만든다는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가장 먼저 기술인력을 기르고 첨단설비의 공장을 짓는 데 진력했다. 사업 초기엔 충분한 자금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10년 뒤의 수익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계획에 입각해 사업을 추진했다. 당장의 장삿속보다는 안경산업의 발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의 계획을 알아준 관공서와 은행의 지원으로 계획은 가시화됐다.

“대개 새 사업을 시작하면 기존 업계에서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게 상식이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일본에서 신기술을 이전받아야 할 상황이라 전문대를 졸업한 신입사원을 선발해 곧바로 1년간 일본에서 기술 연수를 받게 했죠. 또한 품질 좋은 상품을 만들려면 기술만큼 중요한 게 최신 설비를 갖추는 일입니다. 좋은 상품은 좋은 기계에서 나오는 법이죠. 그래서 일본으로부터 모든 설비를 들여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국내에서 안경 제작 전(全) 공정을 갖춘 업체로는 서전이 유일하다. 그러니 당시 국내 안경업체는 분업화된 가내공장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전도 기술연수를 받은 직원들이 귀국하기까지 1년간은 일본에서 들여온 부품을 조립하는 정도였다. 직원들이 돌아오면서 조립과 도금에까지 손을 대게 됐고, 창업 5년 만인 1990년 일괄공정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막상 고품질의 안경을 생산했지만 초기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국내 대다수 안경에 비해 가격이 높은 것이 문제였다. 서전안경은 당시 국내 고급 안경 소재의 주종을 이루던 니켈실버보다 한 차원 높은 하이니켈과 티타늄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육회장은 할인판매를 일삼아 스스로 제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창업 때부터 다짐한 바 있었다. 그의 목표는 첫째도 품질, 둘째도 품질이었고, 목표의 끝은 세계 수준의 명품안경이었다.

“고민 끝에 낸 아이디어가 특약점 판매였지요. 당시 전국에 약 3000개의 소매점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규모가 크고 괜찮은 업소를 300개 선정해 서전안경을 취급할 수 있도록 특약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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