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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정점에서 맛본 오르가슴 같은 희열”

동아마라톤 완주 ‘보통 사람’ 9인의 감동인터뷰

  • 특별취재팀

“고통의 정점에서 맛본 오르가슴 같은 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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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라톤은 고난의 행군이다. 마라토너들은 극한의 고통에서 마약을 맞은 것 같은 행복감을 맛본다고 말한다. 좌절을 딛고 희망을 품게 만드는 마라톤의 마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희망을 품고 달린다.”

3월17일 열린 2002동아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 세계 29개국 99명의 선수와 아마추어 마라토너 1만2075명이 참가해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며 ‘인간한계’를 시험했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출발해 잠실주경기장에 이르는 42.195km의 풀코스를 달리는 이날 대회에서 참가자들의 기록은 맞바람 탓에 다소 저조했다.

남자부에선 아시아 최고기록(2시간6분51초) 보유자인 일본의 후지타 아쓰시(25·후지쓰)가 2시간11분22초의 기록으로 우승해 월계관을 썼고, 여자부에선 중국의 웨이야냔(21·인민해방군 소위)이 국내에서 벌어진 마라톤 역사상 최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참가한 마스터스 레이스에선 정관균(36·위아주식회사)씨가 2시간30분42초의 기록으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여자부에선 문기숙(45·주부)씨가 2시간53분32초의 기록으로 1위로 골인했다.

‘행복한 완주’가 목표

출발 전, 1만2000여 건각(健脚)들이 모여든 경복궁 주변은 흥겨운 잔칫날 같았다. 42.195km의 지난한 역주를 앞두고도 참가자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몸을 풀기 위해 가볍게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고적대의 뒤를 따라 출발지인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이동하는 마라토너들의 모습은 열기와 흥분 그 자체였다.

탕!

출발신호가 울리자, 마라토너들의 얼굴에선 표정이 사라졌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 마스터스 선수들은 ‘행복한 완주’를 목표로 자신의 심장소리를 벗삼아 고독한 승부에 나섰고, 엘리트 선수들은 치열한 선두다툼을 시작했다. 출발시각으로부터 2시간11분이 흐른 즈음 남자부 우승자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을 시작으로 마감시한인 5시간까지 완주자들이 끊임없이 결승선을 통과했다.

시각·청각 복합장애인 차승우(39·안마사)씨는 도우미 박복진(52)씨와 함께 4시간13분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끈으로 손을 묶고 방울소리에 의지해 100리(里)길을 달려온 것. 차씨가 3월초 인터넷에 도우미를 찾는다는 광고를 냈고 이를 본 박씨가 연락해 함께 출전하게 됐다. 그는 “시각장애인 마라톤동호회에 전화해 최고기록을 깼다고 빨리 알려주고 싶다”며 “앞을 보지 못하는 내가 풀코스 완주를 했다니 ‘빛’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신순화(32)씨는 코스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최근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프로포즈에 대한 답을 결승선에서 해주기로 했기 때문. 신씨는 “출발 전 기록이 5시간을 넘길 것 같은데, 기다리다 돌아가면 어떡할지 걱정했다”고 말했다. 기준시간을 초과한 5시간40분에 결승선을 통과한 신씨는 남자친구를 발견하고 힘찬 포옹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하는 서정희(35)씨는 ‘공명선거’를 홍보하기 위해 마라톤 레이스에 나섰다. 선관위 ‘공명이 마라톤’ 클럽 회원들과 함께 풀코스에 도전해 3시간28분의 좋은 기록으로 완주했다. “방송으로 중계가 되잖아요. 이것보다 더 좋은 공명선거 캠페인이 어디 있겠습니다. 공짜로 공명선거 캠페인도 벌이고, 살도 빼고, 체력도 기르는 1석3조예요.”

전라남도 순천 연수공단에서 기계정비사로 일하는 최영선(35)씨는 3시간47분의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했다. 아내와 아들, 딸이 환호성을 울리며 결승점에서 ‘자랑스런 아빠’를 맞이했다. 최씨는 “30km지점에선 ‘낙오자 차량’을 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면서 “실패한 아버지가 되지 않기 위해 이를 다시 꽉 깨물었다”고 말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회 참가비도 부담스러웠다는 그는 “가족과 함께 서울 구경도 하고 오랜만에 외식도 한 때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완주한 날”이라고 말했다.

특이한 주법과 복장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들도 있었다. 김수일(37·학원경영)씨는 4시간30분 동안 줄넘기를 하며 풀코스를 완주했다. 줄넘기아카데미를 경영하는 김씨는 “세계 최초로 줄넘기로 풀코스를 완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문정복(46)씨는 반바지와 요리용 가운, 주방장 모자 차림에 일식용 접시와 젓가락을 들고 뛰어 참가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마스터스 참가자 중엔 마라톤 완주 목적뿐만 아니라 회사를 홍보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출전한 사람도 많았다. 얼굴에 상한가를 나타내는 표시(↑)를 하고 ‘종합주가지수1000’이라고 쓰여진 머리띠를 두른 증권거래소 직원도 있었고, 트레이닝센터 정수기 회사 등을 선전하는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사람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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