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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토리

위암수술 역경 딛고 내일을 향해 쏜다

‘주부 총잡이’ 부순희

  • 이영미 < ‘일요신문’기자 >

위암수술 역경 딛고 내일을 향해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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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여자권총계 1인자이자 ‘주부 총잡이’로 명성을 떨친 부순희(35·한빛은행)가 지난 4월 위암 수술을 받았다. 올림픽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 사격의 위상을 드높인 부순희. 자신의 병을 세상에 알리는 게 싫어 매스컴과 접촉을 철저히 피했던 그가 암으로 엮인 기구한 가족사와 암 투병기, 그리고 여전히 미련을 떨치지 못한 사격에 대한 회한 등을 처음으로 털어놨다.
2년 전 폐암과 위암으로 언니와 시어머니를 잃은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 자신마저 위암 판정을 받아 절망 상태에 빠졌던 부순희는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아 현재 집에서 요양 중이다. 주위에선 재기를 부추기지만 허약해진 체력 탓에 아직은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현관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그의 얼굴은 무척 창백했다. 전화로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이미 단호히 거절한 터라 무작정 집으로 찾아간 기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이없어하는 그에게 “일단 들어가서 얘기나 좀 하자”고 설득하면서도 안색이 너무 좋지 않아 부담이 컸다.

몸무게가 준 것 같다고 슬며시 운을 떼자 “수술 후 48kg이던 체중이 43kg으로 떨어졌다”고 답한다. 수술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여전히 수술 부위에 통증이 온다며 인상까지 찌푸린다.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하는 ‘취재원’과 어떻게든 성사시키려 머리를 짜내는 기자 사이에 한동안 어색하고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픈 사람에게서 무슨 얘기를 듣겠다고 그러느냐”며 항의까지 할 땐 마땅히 할 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 인터뷰 대신 살아가는 얘기나 나누자고 시작한 게 시간이 지나며 인터뷰가 돼버렸고, 그도 이젠 포기했다는 듯 그동안 굳게 빗장을 걸었던 마음속의 짐들을 하나둘씩 꺼내놓았다.

부순희에게 지난 2000년 한 해는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아들 동규(7)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던 시어머니가 위암으로 그해 10월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두 달 뒤 국가대표 사격선수였던 언니 신희씨마저 13개월 동안 폐암으로 시달리다 눈감은 것이다. 그러고보니 친정 외할머니도 위암으로 돌아가신 터라 그의 가족사는 암과 지긋지긋한 악연을 맺어온 셈이다.



청천벽력 같은 위암 판정


그런 암이 올해초 그에게까지 찾아왔다. 평소 약간의 신체 이상만 있어도 병원을 찾고 종합검진도 정기적으로 받은 터여서 어느 정도 건강엔 자신 있었는데, 이때만큼은 자꾸 배가 아프고 몸이 좋지 않은 게 이상했다.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혹시나’ 하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으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수차례 검사를 받으면서 제발 자신만은 암이 아니길 간절히 기원했다. 짧은 시간에 이미 소중한 가족들을 잃은 데다 그마저 암으로 판명 난다면 더 이상 지탱할 힘조차 없을 것 같았다. 며칠 뒤 결과를 알아보려 다시 병원을 찾은 그는 혼자였다. 남편이 출장으로 집을 비운 것이다.

“정말 무서웠어요. 느낌이 안 좋았거든요. 담당의사의 방문을 노크하는데 너무 떨려 도무지 진정이 안되더군요. 그런데 예감이 적중했어요. 위암 초기란 거예요. 일찍 발견해서 수술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지만,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언니가 생각났어요. 언니라도 옆에 있다면 이렇게 떨리지 않을 텐데…. 병원 문을 나서는데 남편 얼굴이 떠오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너무 불쌍한 거예요. 가족들이 저마다 암으로 고생하는 걸 지켜본 제 입장이 어땠겠어요? 남편이 돌아올 때까진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결과를 전해들은 형부가 그새 남편에게 전화했던 모양이에요.”

아내마저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남편 최재석씨는 출장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현관에서 아내를 껴안고 한참 통곡했다고 한다. 어떤 위로도 필요없었다. 그들 부부는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암 판정을 받은 뒤 부순희는 17년간 분신처럼 붙이고 다닌 권총을 손에서 놓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한편으로 한국여자권총계 1인자로 화려한 시절을 구가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났다. 돋보이는 국제대회 수상 경력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무대를 평정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한으로 남았지만, 일단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삼성의료원에서 받은 수술의 결과는 대성공.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완쾌될 수 있다는 의료진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

“퇴원하는 날, 남편이 이런 얘길 했어요. 새롭게 태어났으니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살아야 한다고요. 그동안 사격한다는 핑계로 굉장히 이기적이고 예민하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시합 앞두고선 긴장감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릴 만큼 신경이 곤두서곤 했죠. 그런 나 자신도 힘들고 지겨운데, 옆에서 지켜본 남편은 오죽했겠어요? 그런 남편의 존재와 배려에 새삼 감사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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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 ‘일요신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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