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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 조정래

“나는 친북주의자가 아니다”

소설 ‘태백산맥’·‘아리랑’·‘한강’으로 1000만부 돌파한 작가 조정래

  •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hwang@donga.com

“나는 친북주의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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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
  • ● 한국군은 월남전에 용병으로 참전
  • ● 이문열은 문학 외적인 관심 줄여라
  • ● 최인석 이승우 방현석 은희경의 작품이 좋다
  • ● 왜 김근태만 처벌받아야 하는가
  • ● 인세(印稅) 문제로 한길사와 결별
작가 조정래(趙廷來·59)씨가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아리랑’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 20년 간의 글쓰기를 마치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작가가 장년기의 거의 전부를 바쳐 쓴 세 편의 대하소설은 200자 원고지 5만1500장 분량으로, 쌓아놓은 원고지의 높이가 그의 키 세 배를 넘는다.

1983년에 집필을 시작해 6년 만에 완결한 ‘태백산맥’은 이념의 금기지대를 깊숙이 파고들면서 분단문학의 최고봉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태백산맥’은 지금까지 550만부가 팔리며 작가에게 찬사와 함께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주었지만 해방 이후 금기시되던 빨치산들의 삶과 투쟁을 작품화한 데 따른 유형무형의 고통도 겪게 했다.

조씨는 ‘태백산맥’을 완간한 후 약 1년 간 국내외 취재활동을 해 1990년 12월 ‘아리랑’의 집필에 착수해 1995년 7월에 탈고했다. ‘아리랑’은 일제의 토지조사로 농토를 잃은 농민들이 하와이 만주 러시아로 흩어져 생존과 항일의 정신을 이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1997년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등으로 취재여행을 다녀와 다음해부터 ‘한강’을 쓰기 시작해 2002년 완료했다. 마흔에 ‘태백산맥’을 시작해 ‘아리랑’ ‘한강’을 쓰고 나니 그의 나이 예순이었고,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은 대학을 나와 군대를 마치고 결혼해 손자를 안겨주었다.

그는 주색잡기와 담을 쌓고 산다. 둔부 종기, 신경성 위궤양, 오른팔 마비 등 직업병이 생길 정도로 오로지 글쓰기에만 매달려 20년 동안 대하소설 세 편을 완성했다. ‘한강’을 끝내고 쓴 ‘20년 글 감옥에서의 출옥’에는 조씨의 작가 정신을 보여주는 내용이 들어있다.

‘진정한 작가란 그 어느 시대, 그 어떤 정권하고도 불화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돼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는 전혀 관계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나 진보성을 띤 정치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직시하고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

작가는 최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중앙하이츠 빌리지로 이사와 아내 김초혜(金初蕙·59) 시인과 단 둘이 산다. 빌라 앞은 분당구에도 이런 곳이 남아 있을까 싶은 시골 마을이다. 바로 앞산에 덕양군(중종 아들) 묘소가 있다. 아침 일찍 찾아갔을 때 김시인이 차와 과일을 내왔다. 작가는 대학에 강연을 갔다가 선물로 받았다는 철쭉 분재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며 “분재는 좁은 공간에 나무를 심어놓고 고문을 하는 취미”라고 말했다.

신문사 논설위원도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이지만 사설은 길어봐야 200자 원고지 6장, 칼럼은 10장 정도다. 어쩌다 잡지에 길게 써봐야 150장을 넘지 않는다. 조씨가 쓴 ‘태백산맥’(10권)은 1만6500장, ‘아리랑’(12권)은 2만장, ‘한강’(10권)이 1만5000장이다. 전업작가가 20년 동안 쓴 글이라고 하더라도 장강(長江)과 같은 글의 길이에 숨이 막힌다.

키보다 세 배 더 높은 원고량

―초인적인 것에 가까운 글쓰기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1959년 서울에 올라와 1960년대 후반까지 수도가 없는 성북동 산동네에서 살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 4년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까지 7년 동안 물지게를 졌습니다. 엄동설한에 눈이 내린 날은 물 길러 가기가 정말 싫습니다. 추운 날 산동네 비탈길을 물지게를 짊어지고 올라오는 일이 보통 지겹고 힘든 게 아니에요. 이불 속에서 꾸물꾸물하다가 한 10분 지나버리면 30∼40명이 줄을 서요. 게으름을 떨치고 빨리 일어나면 가장 먼저 도착해서 금방 물을 담아 돌아올 수 있어요. 인생이 별것 아닙니다. 남들보다 5분 빠르게 움직여 부지런을 떨면 항상 내가 앞에 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물지게질을 통해 얻었습니다.”

―이 시대에 태어난 작가의 소임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거의 병적일 만큼 실존적인 물음에 대한 책임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 땅에 태어났을까? 왜 우리 역사는 이렇게 흘러왔을까? 작가는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내 기질과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이런 땅에 태어난 야속함, 원망스러움, 어린 시절 6·25를 겪으면서 상처 받고 핍박 받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겠죠.

우리가 문학을 시작할 때는 순수문학만이 문학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참여문학은 존재하지 않았지요. 김동리 황순원 같은 분들이 전부 그런 식으로 몰고갈 때입니다. 참여와 역사 같은 주제가 강한 것에 대해 천착을 하다보니 등단하는 데도 불리했어요. 대학시절에 등단을 못하고 겨우 군대를 마치고 와서 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쓰지 않는다면 작가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 사명감에 긴 소설을 세 번씩이나 쓰게 됐습니다. 참 복잡한 문제입니다. 단순하게 설명이 안돼요.”

1989년 우익단체들이 ‘태백산맥’을 쓴 작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은 아직도 종결되지 않아 검찰의 최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500만권 이상 팔려 전국민이 읽다시피한 소설을 유죄 의견으로 기소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 우익단체들이 또 고발을 할 테니 검찰은 그저 세월에 맡겨놓기로 한 것 같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개정 또는 폐지돼 자동 종결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1999년 우익단체들은 ‘태백산맥’에 대해 500개 고발 사항이 담긴 고발장을 검찰에 접수했다. 검찰은 이중 120개를 추려 작가에게 사실을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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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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