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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연구| 송진우

“내 힘 버려야 남의 힘 뺏을 수 있다”

‘3차원 투구’로 성공신화 일군 ‘야구 9단’

  • 이영만 < 경향신문 부국장 > youngman@kyunghyang.com

“내 힘 버려야 남의 힘 뺏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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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노장. 송진우를 보면 우선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는 투수에게 고희나 다름없는 나이에 한국프로야구 최다승 기록을 깨고 150승 벽까지 돌파했다. 선수협 사태가 터졌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총대를 멨으며, FA 자격을 얻었을 때는 타 구단의 엄청난 물량공세를 외면하고 친정팀을 선택했다. 송진우의 성공신화는 가히 한국프로야구의 귀감이 될 만하다.
송진우는 ‘위대한 투수’가 아니다. 최동원 김시진 선동열 정민태처럼 일세를 풍미하지도 않았다. 박동희 박찬호 이상훈 같은 뛰어난 강속구 투수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특급투수라면 한번쯤 기록한 ‘한 시즌 20승’도 해본 적이 없다.

‘보통투수’ 송진우. 그러나 그는 모든 위대한 투수들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20대와 30대에 두 번이나 전성기를 누리며 150승 고지를 돌파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다승이며 송진우만이 해낼 수 있는 값진 기록이다. 나이로 볼 때 계속적인 기록경신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알 수 없다. 그는 세월을 거꾸로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투수들보다 더 뛰어난 보통투수 송진우. 우리 나이로 38세인 그가 올 시즌에도 6연승 행진을 하는 등 다승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송진우의 시들지 않는 청춘. 그 속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그는 요령을 피우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면 주저없이 한다. 1990년 초 빙그레 시절. 김영덕 감독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마운드에 올랐다.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필요한 시점이면 망설이지 않았고 김감독의 마운드 운용을 이해했다. 그를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이 꾀를 피우라고 권해도 듣지 않았다. 이틀이 멀다하고 던질 때도 있었다. 씩씩하게 던지고 또 던졌다. 그래서 주위에선 그의 투수생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야구장 밖에서도 마찬가지. 3년여 전 선수협 파동이 벌어졌다. 그는 모임을 주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대 회장이 되었다. 원한 것도 아니고 좋은 상황도 아니었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힘들고 괴로웠지만 상황에 자신을 맞추었고 골리앗에 맞서 싸웠으며 전력을 다했다.

송진우는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그의 지능지수(IQ)는 140대에 이른다. 어려운 상황을 피할 줄 알고 요령이 뭔지도 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 필요한 곳에서 부르면 응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한창때의 그를 김영덕 감독은 부지런히 마운드에 올렸다. 그것은 김감독의 마운드운용 특징 중의 하나로 그는 누구보다 송진우를 신뢰했다. 송진우 역시 김감독의 그런 마음을 알았고 김감독을 통해 투수라는 것이 무엇인 줄 알았기 때문에 군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팀 사정상 자신이 나서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다소 일찍 슬럼프에 빠졌고 주위에선 “그럴 줄 알았다”며 송진우의 미련함을 통박했다. 하지만 송진우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나이 먹은 투수의 공 던지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고 지금까지 싱싱하게 공을 뿌리고 있다.

선수협 때도 그는 걸려들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동료 선수들이 왜 자신에게 회장직을 권하는지도 알았다. 송진우는 고참급 선수고 나이 먹은 선수 가운데서는 성적이 좋기 때문에 함부로 토사구팽의 희생양으로 삼을 수 없는 선수였다. 게다가 후배들은 송진우가 결코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그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래도 송진우가 나약했다면 누구도 그를 추대하지 않았을 터이다. 겉보기와는 달리 그는 강단을 갖추었고 선수협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갈 머리와 추진력을 갖고 있었다. 점잖은 송진우가 복잡한 시절의 선수협을 맡았기 때문에 사태가 마구잡이로 흐르지 않을 수 있었다.

자기 관리 뛰어난 모범생

송진우는 1966년 2월생이다. 만 36년 4개월이다. 그러나 그것은 호적상 나이다. 실제 생년월일은 1965년 2월16일.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호적을 고쳤다. 전국체전에 출전시켜야 하는데 생일이 한 달 가량 빨라 출전할 수 없게 되자 손을 본 것인데, 2월생을 3월생으로 하는 것보다 1965년을 1966년으로 고치는 게 편하다고 해서 한 살을 낮추었다.

그래서 실제 송진우의 한국 나이는 38세. 도저히 완투를 밥먹듯 할 수 있는 ‘연세’가 아니다. 그 나이의 다른 투수들이 모두 은퇴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송진우는 올 시즌에도 벌써 5차례나 완투승을 거두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힘이 난다”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송진우는 쉽게 지치지 않는 체질이고 피로도 다른 선수들보다 쉽게 풀리는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몸의 유연성이 뛰어나다는 점도 철인의 조건이다. 큰 부상 없이 프로야구 14년을 꾸려온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타고난 유연성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의 투구폼이 좀 이상하다고들 하지만 버드나무처럼 휘는 유연성을 감안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타고난 신체적 특징만이 오늘의 송진우를 있게 한 것은 아니다. 재산인 몸을 황금처럼 귀히 여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송진우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입에 대본 적이 없다. 술도 한두 잔 정도로 끝낸다. 몸에 나쁜 것은 철저히 배제하는 모범생이다. 그에게 훈련은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것과 같은 ‘본능적 행위’다. 지금까지 단 하루도 운동을 거른 적이 없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철인의 비결인데 선수협 파동을 겪었던 2000시즌에도 그는 13승을 올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그런 송진우가 야구 9단이 된 데는 무엇보다 힘을 뺄 줄 알게 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다승왕과 구원왕을 차지한 1992년을 기점으로 송진우는 조금씩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방위근무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1992년과 같은 성적을 더 이상 올리지 못했고, 30세를 넘긴 1997년엔 B급 투수로 전락했다.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얻어터지는 것이 일상사였다. 스피드가 떨어지고 공 끝에서 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송진우는 타자들을 윽박질렀다. 하지만 위력 없는 투수의 마구잡이 힘은 무용지물이었다. 타자들은 그를 배팅볼 투수처럼 여겼고 방어율은 5점 대에 이르렀다.

별다른 부상도 없이 2년 연속 6승. 송진우의 시대는 갔다는 말이 쏟아졌고 은퇴를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위기의 그 순간에 송진우는 비법을 터득했다. 젊었을 때는 힘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요령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는 더 이상 힘으로 타자들을 몰아가지 않았다. 변화구와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유혹했다. 2차원을 뛰어넘은 송진우의 3차원 투구. 타자들은 속절없이 떨어져나갔고 그는 젊었을 때도 이루지 못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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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만 < 경향신문 부국장 > young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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