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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우리 것’에 목숨 건 뚝심의 연극인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 총연출 손진책

  • 이계홍 < 작가·용인대 겸임교수 >

‘우리 것’에 목숨 건 뚝심의 연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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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사가 펼쳐진 40여 분 동안 조화와 평화의 정신이 정점에 달했다.” 전세계 5억명 이상의 시청자를 상대로 펼쳐진 ‘한국 CF’,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을 지켜본 미국 CNN 방송의 평가다. 한국의 이미지를 압축해 세계에 선보인 이 거대한 이벤트 뒤에는 총연출을 담당했던 손진책씨의 열정이 있었다.
6월1일 필자와 만난 ‘극단 미추’의 손진책(55) 대표는 녹초가 돼 있었다. 파김치처럼 축 늘어진 자세며 표정은 가엾다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였다. 검게 그을린 부석부석한 얼굴은 필자가 어렸을 적에 본 기억이 있는 ‘아편쟁이’ 몰골 그대로다. 긴 머리를 뒤로 모아 제비꼬리처럼 묶은 모습, 격식이나 형식은 가볍게 무시하는 태도부터 예술 하는 사람 특유의 파격성, 허무 기질을 솔솔 풍긴다.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자유인이라지 않던가.

손씨는 바로 전날인 5월31일 저녁 7시30분부터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을 총지휘했다. 행사를 끝낸 뒤에도 그 뒤처리며 고생한 사람들과의 밤 늦은 회식 때문에 새벽 3시까지 현장에 있다가 돌아온 뒤끝이었다. 개막식 보름 전부터 이런 강행군을 계속했다. 새벽부터 개막식 마무리 연습을 시작해서 재차 3차 반복하고, 자정이 넘어야 끝나는 일과였다. 이제 겨우 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또 불청객인 필자를 만났으니….

온몸과 영혼에 깃들어 있는 모든 에너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아 부은 모습. 이것저것 물어도 답변이 허공에 둥둥 떠있는 형국이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퍼져 있는 손씨를 보니 얘기를 나눌 형편이 아니지 싶었다.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서운한 발걸음을 돌렸다.

며칠 뒤 다시 만났을 때 그는 긴 머리칼을 아예 밀어버리고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었다. 왜 갑작스럽게 머리를 짧게 쳤냐고 물었다. “변화는 좋은 것 아닌가요?” 당당한 반문이 대답을 대신한다.

“8년간 머리를 길렀어요. 행사를 끝내고 나니 삶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친김에 달려가 머리를 깎아버렸죠.”

오랜만에 머리를 짧게 깎으니 자꾸 간지럽다며 대화 내내 긁적거렸다. 긴 머리칼이 없어진 서운함도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손씨에게서는 큰일을 잘 치르고 난 뒤의 홀가분함이 배어 나왔다.

“욕 먹진 않은 것 같네요”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홍죽리 미추산방. 서울 불광동에서 승용차로 40분 가량을 달려 구파발, 장흥을 지나 험한 산을 하나 넘으면 손바닥만한 평야가 나오고, 그 왼편으로 창고 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도올 김용옥이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극단 미추의 본부다. 1층은 공연장, 2층은 사무실, 3층은 손씨가 거처하는 안집이다. 그의 설명처럼 ‘세상에서 가장 값싸게 지은 건물’이어서인지 외관은 허름하고 엉성하다. 돈 생기면 짓고, 없으면 쉬고 하다보니 완공되기까지 6년이나 걸렸단다.

집무실 벽면에 세워진 서가에는 잡다한 책들이 빽빽히 꽂혀있다. 주로 민속과 문학서적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언뜻 보면 국문학도의 서재쯤으로 보인다. 서가 한쪽에는 부처상이 30개 가까이 놓여있다. 청동 불상에서부터 석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다시 ‘넘겨짚기’ 직업병이 동한다.

-불교 신자인가보군요.

“신자는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불교와 가깝다고 할 수는 있겠지요. 불상은 그저 취미로 모은 것들이에요.”

서재 안쪽을 가리키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서가에는 성모상과 예수상, 십자가도 여러 개 놓여있다.

“지방을 돌아다니거나 해외 여행을 할 때면 불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가 돼버렸어요. 친지나 친구들이 준 것도 있지만 대부분 돈 주고 사들인 것입니다.”

인터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처음이 잘 풀리면 대화는 끝까지 잘 흘러가는 법. 일단 그를 만나기로 한 이유였던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 얘기부터 해야 마땅하지 싶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예의성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개막식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리허설과 본공연을 모두 보았습니다만, 형식상으로는 웅장하고 현란하면서도 내용상으로는 한국 전통과 현대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총감독으로 개막식을 연출한 소감부터 말씀해주시죠.

“욕은 먹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달랑 한마디. 대답치고는 싱겁기 이를 데 없다.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칭찬에 칭찬을 더했건만 반응은 썰렁하기 이를 데 없다. 워낙 과묵한 성격인 데다 말재간이 뛰어난 사람도 아닌 듯했다. 개막식 후의 피로도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없는 말을 지어내가며 칭찬을 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많은 독자들이 TV를 통해 지켜봤겠지만, 개막식은 정교하게 만든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공들여 연습한 흔적이 역력한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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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 작가·용인대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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