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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를 만드는 사람들 2

딱, 딱, 따악… 세계시장 평정한 ‘손톱깎이의 제왕’

벨금속공업 이희평 사장

  • 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딱, 딱, 따악… 세계시장 평정한 ‘손톱깎이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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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당 200원짜리 손톱깎이 하나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사람. 벨금속공업 이희평 사장은 꼬박 30년을 손톱깎이 연구·개발에 매달린 끝에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85개국 소비자들에게 해마다 8000만개의 손톱깎이를 만들어 파는 ‘손톱깎이 왕국’의 제왕을 만났다.
딱, 딱, 따악… 세계시장 평정한 ‘손톱깎이의 제왕’
”딱, 딱, 따악….”

손톱깎이 회사 사장이 손톱을 깎고 있다. 잘린 손톱 조각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기자의 얼굴까지 날아오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손톱을 깎는다. 손가락을 바꿔가며 손톱 깎는 데 열중한 그의 오른손 중지가 까맣게 죽어있다. 프레스 기계에 짓이겨졌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젊은 사람이 나이 먹을 대로 먹은 근로자들 다루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관리자랍시고 공장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지적해대니까 수십년 기름밥 먹은 사람들이 내놓고 무시하더군요. 안되겠다 싶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6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업대에 섰습니다. 고장난 프레스기를 고치다가 장갑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평생 달고 다닐 훈장 하나 얻었죠, 뭐.”

“세계 최고의 손톱깎이를 만든다”는 벨금속공업 이희평(李喜平·59) 사장은 손톱에 난 상처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스스로 현장에서부터 성장한 경영자이기 때문에 노사대립도 뛰어넘고 구조조정도 무리없이 거쳐 지금의 회사를 이뤄놓았다고 자부한다는 것이다. 1987년 노사대립이 한창일 때는 강당에 전직원을 모아놓고 ‘360대1’의 토론을 통해 노조를 설득한 끝에 조업을 재개한 적도 있다.

이희평 사장이 손톱깎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71년. 올해로 30년을 넘어섰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막 창업한 벨금속공업에 입사할 때 그의 직함은 관리담당 실장이었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외에는 직원이라야 사장을 포함해서 서너 명밖에 안되는 영세기업이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실장이 아니라 사장이라고 생각하며 일했다고 한다.

“회사내 각 부서 열쇠를 제가 모두 갖고 있었어요. 매일 11시 넘어 퇴근했어요. 품질관리, 자재관리, 경리에 이르기까지 손대지 않은 업무가 없었죠.”

최고 브랜드 ‘TRIM’ 물려받아

손톱깎이를 만들 만한 강철 자재를 구할 수 없어 주변에 나뒹굴던 드럼통을 조각내서 손톱깎이를 만들던 시절이었다. 드럼통 철판을 작두로 잘라낸 뒤 연마기로 일일이 날을 갈아 손톱깎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손톱깎이의 품질은 당연히 형편없었다. 손톱 끄트머리가 깔끔하게 다듬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흉하게 뜯겨 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니 소비자들의 안방을 차지한 것은 미국산 제품. 당시 소비자들이 장롱 서랍이나 안방 보석함에 ‘모셔두고’ 사용하던 스테인리스 손톱깎이에는 대부분 ‘트림(TRIM)’이라는 영문 브랜드가 찍혀 있었다. 트림은 1948년 설립된 세계적인 손톱깎이 제조업체 바세트(BASSETT)의 브랜드.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손톱깎이=TRIM’이라고 인식될 만큼 인지도가 높았던 제품이다.

그러나 이제 트림 제품은 더 이상 미국 기업에서 생산하지 않는다. 트림 손톱깎이를 만드는 곳은 벨금속공업이다. 이른바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이다. 바세트는 손톱깎이를 만드는 국내 5개 업체를 모두 실사한 뒤 벨금속공업과 계약을 맺고 ‘세계 최고’의 명예를 물려주기로 결정했다. 그러고는 지난해 7월 아예 공장문을 닫아버렸다.

그래서 이제 ‘벨’이라는 브랜드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한 상표로 꼽힌다. 벨 상표를 붙인 손톱깎이는 세계 85개국으로 수출된다. 물론 미국이 가장 큰 수출시장이지만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5대양 6대주에 안 가는 곳이 없다. 그만큼 품질로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그까짓 손톱깎이에 무슨 품질 타령이야? 손톱만 잘 깎이면 되지….”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사장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대번에 정색을 한다.

“이래 뵈도 손톱깎이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공정이 30개가 넘습니다. 프레스에다 금형, 연마, 도금, 열처리, 조립, 접착, 포장까지 공정 하나하나에서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기자는 이사장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손톱깎이의 위·아랫날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고 조금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랫날이 윗날보다 바깥쪽으로 약간 튀어나온 구조다. 사람의 치아와는 반대의 구조로 돼 있다. 사람의 위·아랫니가 어긋나 있지 않고 맞닿아 있으면 아래턱이 튀어나온 비정상 구조가 되듯이 손톱깎이도 위·아랫날이 미세하게 어긋나도록 만들지 않으면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이렇듯 작은 손톱깎이 하나에도 언뜻 봐서는 찾아내기 어려운 품질의 비밀이 여러 곳에 숨어있다. 특히 열처리 공정에는 예리한 양날의 경도(硬度)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술적 노하우가 담겨 있다. 벨금속공업은 이러한 일련의 제조공정을 모두 자동화해 품질 면에서 그야말로 ‘손톱만큼’의 오차도 없는 세계 최고 품질의 손톱깎이를 만들고 있다. 공장의 자동화 설비는 이러한 품질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사장은 “외국 바이어들이 천안에 있는 우리 공장에 와보고 엄청난 규모에 입을 쩍 벌린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5500평이나 되는 부지에 자리잡은 천안공장은 손톱깎이 만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다. 건물 면적만 2800평. 게다가 그 안의 설비를 둘러보면, 아줌마 직원들 몇몇이 둘러앉아 대충 부품을 조립해 제품을 만들고 있으리라는 선입견은 한방에 날아가버린다. 대표적 3D업종으로 꼽히는 도금공정까지 자동화했으니 전공정을 자동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금과 열처리 공정을 자동화한 것은 이 공장만이 갖고 있는 자랑거리다. 그러나 10억원이 넘는 설비를 들여와 모든 공정을 자동화한 것은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자구책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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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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