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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전두환 노태우는 죄인…왜 그들을 용서해줍니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 위원장

  • 글: 황호택 hthwang@donga.com

“전두환 노태우는 죄인…왜 그들을 용서해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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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사정권 시절 자행된 인권 탄압과 의문사를 추적함으로써 숱한 화제를 낳았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 9월16일로 조사 기한이 만료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진실 추적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 기관의 활동은 과연 정교했는가. 한상범 위원장을 만나 의문사진상규명위 1년 9개월 동안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두환 노태우는 죄인…왜 그들을 용서해줍니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 위원장

정통성이 약했던 유신체제(1972∼79)와 제5공화국(1980∼87)은 정권을 위협하는 정치적인 반대자들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숱한 의문의 죽음을 만들어냈다. 1972년 10월17일 유신선포에서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15년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암흑기였다.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정치인·지식인·종교인·학생·언론인들은 영장도 없이 끌려가 중앙정보부·보안사·경찰 대공분실 등에서 신체와 인격을 무너뜨리는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언론은 철권통치의 폭압 아래서 때로는 저항했으나 때로는 긴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검찰과 사법부는 수사기관들이 고문을 통해 조작한 사건을 그대로 추인하는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다. 유신 체제 출범 직후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장석구씨가 옥중에서 갑자기 숨진 일과 중정에 잡혀가 조사를 받던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가 숨진 일 등은 바로 박정희 시대에 빚어진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이다.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는 학생과 지식인들을 무차별로 체포해 고문을 자행하고 징역을 살렸다. 서울대생 박종철군처럼 죽음을 부른 고문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난 사건은 오히려 드문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수사기관에 연행된 뒤 소식이 끊겼다가 부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서울대생 김성수군의 사체에는 시멘트 덩이가 철사로 묶여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단순 자살로 처리했다.

지난 세월 조직적으로 은폐된 고문치사의 진실을 가리는 것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맡겨진 과제였지만 고문에 의한 죽음이라는 강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증거를 찾지 못해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된 사건이 적지 않다.

자식이 의문의 죽임을 당한 부모들은 10∼20년 동안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다. 그들은 이 땅에 민주 정권이 수립되자 의문사가족협의회를 결성해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의문사 가족들은 국회 앞에서 422일 동안 천막 농성을 벌여 마침내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탄생했다.

“의문사 진상 끝까지 파헤쳐야”

한상범(韓相範·66) 동국대 교수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후 의문사위는 여러 차례 여론의 주목을 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비록 완전한 진실을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장준하씨와 최종길 교수 사건도 죽기 전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아냈고, 자살로 처리됐던 허원근 일병 사건이 타살이었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의문사위는 재야에서 오랫동안 의문사를 추적해온 민간인들과 검찰 경찰 군 수사기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합동으로 일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 단체다. 의문사위 사무실은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뒤 이마빌딩에 있다. 활동시한이 종료돼 보고서 작성 작업에 들어간 의문사위 한상범 위원장을 만났다.

―1년 9개월 동안 100명에 가까운 인력이 83건을 조사했는데 아직도 활동 시한을 연장해야 할 만큼 규명해야 할 사건이 많이 남아 있습니까.

“단순 살인사건도 경찰의 수사와 검찰의 기소, 사법부의 재판을 거쳐 대법원에서 확정되려면 넉넉잡아 2,3년이 걸립니다. 의문사위에서 다루는 사건은 대부분 10여 년 전에 수사기관에서 자살로 처리하고 종결한 사건입니다. 의문사위는 수사기관의 결론을 뒤집는 조사를 합니다. 기존 수사 정보기관들이 과거 그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습니다.

의문사위에 강제 조사권이 없어 관련기관에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더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습니다. 참고인이나 당사자들은 불러도 나오지 않거나 조사를 받으면서 거짓말을 해도 처벌할 장치가 없습니다. 위원장 명의의 동행명령에 불응해도 과태료 1000만원을 부과하면 그만입니다.

과태료는 행정벌이지 형사벌이 아닙니다. 동행명령장을 받은 사람이 돈으로 때우겠다고 하면 우리로서는 다른 대책이 없습니다. 가장 형이 무거운 살인죄도 공소시효가 15년입니다. 그러니까 1987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강제권을 발동할 도리가 없습니다.”

2000년 의문사위는 당초 9개월짜리 한시기구로 출범했다. 그러나 접수된 83건을 도저히 9개월 동안에 처리할 수 없어 2001년 이후 6개월씩 두 차례 시한을 연장해서 9월16일 일단 조사시한이 종료됐다.

―동아일보도 의문사위의 활동시한을 연장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사설(社說)을 썼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대선싸움을 하느라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의문사위가 해체되고 나면 의문이 풀리지 않은 사건들은 영원히 역사 속에 묻혀버리는 건가요.

“내가 대통령에게 세 가지 방안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의문사위의 활동시한을 연장해주든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사건을 다루게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새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요.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지 법개정 절차를 밟아야 돼요.

내년 2월말 보고서를 작성한 뒤 미결 사건을 그대로 두고 의문사위가 해체되면 해방 직후의 반민특위처럼 돼버립니다. 의문사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권위주의 정권의 폭정을 청산하고 그 아픔을 치유하고 바로잡자면 의문사의 진상을 끝까지 파헤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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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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