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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돈 훔친 아들, 믿음을 가르쳐준 아버지

  • 글·이정빈 전 외교통상부장관

돈 훔친 아들, 믿음을 가르쳐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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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는 내가 몰래 용돈을 꺼내 쓴 금고의 열쇠를 건네주시며 “이젠 너도 장성했으니 이 열쇠는 네가 관리하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후 공직자가 된 나는 당시 아버지께서 정직이 최상의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우리 일곱 형제를 모두 군대에 가게 하셨다. 자식들의 졸업식이나 수료식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아버지께서 논산훈련소로 아들을 면회하러 오셨다….
돈 훔친 아들, 믿음을 가르쳐준 아버지

부처님 탄생지인 네팔의 룸비니에서 생전의 아버지(왼쪽)와 함께 한 이정빈 전 외교통상부 장관(1984년 2월)

부모님에 대한 생각은 나이가 들면서 참 많이 바뀌는 것 같다. 같은 아버지이건만 내가 어렸을 때,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을 때, 그리고 할아버지가 되어 자식·손자들과 지낼 때가 다르다.

어머니는 내가 대학교 다닐 때 50을 갓 넘어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내가 50대 중반일 때 80을 넘어 돌아가셨다. 부모님을 여읜 자식들이 생존시에 못다한 효도를 아쉬움으로 간직하는 것처럼 나도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추억 속에서 되풀이할 뿐이다.

유품상자에서 발견한 초등학교 성적표

어렸을 때 갖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새로워진 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당신이 평생 보관해왔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놀라운 것을 발견하였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일제시대에 다녔던 공립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성적표를 포함해 많은 서류를 보관해두고 계셨던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성적표라면 호적등본을 제외하고는 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아닌가.

60여 년 전의 성적표는 빛 바랜 누런 종이에 불과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게 했다. 소화 19년도(1944년에 해당됨)에 발급된 성적표는 ‘통신표(通信表)’라고 기재되어 있고, 성적이 과목마다 ‘갑(甲)’ ‘을(乙)’ 등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공부를 잘했는지 ‘을’은 하나고 전부 ‘갑’이었다. 아버지의 유품상자에는 성적표 이외에도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의 졸업장과 많은 상장 등 나의 학창시절에 관한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단기 4292년 12월12일자 소인이 찍혀 있는 나의 고등고시 합격을 알려준 ‘전보송달지’와 고등고시 최종합격자 명단이 기재되어 있는 단기 4292년 12월13일자의 빛 바랜 ‘한국일보’도 스크랩되어 있었다(당시는 연대를 단기로 표기하였다. 단기 4292년은 서기 1959년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는 늘 근엄하셨다. 희로애락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분이어서 나에게 아버지는 전형적인 사대부 집안의 가장으로 각인돼 있다. 아버지는 언제나 접근하기 어려운 분이셨다. 학교에 낼 수업료와 용돈도 아버지께는 직접 말씀드리지 못하고 언제나 어머니를 통하곤 하였다.

많은 학부형이 참석하는 수료식이나 1년에 한번씩 열리는 운동회에도 부모님이 참석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나의 성적은 비교적 좋은 편이어서 반에서 1등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료식 때는 대개 1등을 한 학생이 대표하여 수상하는데 나는 이러한 나의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부모님의 손을 잡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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