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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의 삶

미워할 수 없던 임수경, 나를 부처라 부른 김상현

‘담장 안 사람들’과 33년 함께 한 전직 교도관 윤덕근씨

  • 글: 이계홍 언론인 ·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미워할 수 없던 임수경, 나를 부처라 부른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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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옥 안에 있다 해서 모두 죄인이 아니요, 감옥 밖에 있다 해서 모두 깨끗한 사람이 아니던 시절. 갇힌 사람도, 가두는 사람도 겸연쩍을 수밖에 없었던 교도소를 30여 년 간 지켜온 사람은, 세상과 사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은퇴한 교도관이자 수필가가 들려주는 ‘내가 만난 재소자들의 이야기’.
미워할 수 없던 임수경, 나를 부처라 부른 김상현
윤덕근씨(69)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펴냈다는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33년의 교정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전직 교도관이 그간 자신이 만났던 이들에 대한 소회를 풀어놓았다는 것이었다. ‘한 권의 책으로 보는 재소자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수필집의 제목은 ‘이름은 왜 불러’(정론사). 송창식의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책 제목 또한 흥미를 자극했다.

물론 수필집 한 권 냈다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대형서점에 가면 쌓여 있는 책이 몇 권인지 알 수 없고, 인터넷에는 갖가지 이야기를 갖가지 방식으로 풀어내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 책 한 권이 뭐 그리 큰일이겠는가. 그보다는 저자인 윤덕근씨의 삶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평생 재소자들의 사연을 테마로 글을 써왔다는 이력, 8년 전 청주여자교도소 소장을 끝으로 은퇴한 이후에도 여전히 재소자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말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교도관 하면 빠삐용이나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악덕 간수’만 떠올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바람이 차가운 어느 날,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윤씨의 자택을 찾기로 했다.

윤씨의 집이 있는 서울 공덕동의 언덕배기 교차로는 출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차들로 뒤범벅이 돼 있었다. 약속시간을 넘겨 도착한 옹색한 교차로 한켠에 낡은 외투를 걸친 작달막한 노인이 가로수 밑을 서성거린다. 묻지 않아도 윤덕근씨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안내를 받아 아파트에 들어서자, 거실에 놓인 낡은 테이블 위 컴퓨터와 바닥에 놓여 있는 교자상에 올려져 있는 두툼한 원고뭉치가 눈에 들어온다. 30년은 족히 넘었을 낡은 가구들이 서 있는 살림살이는 더없이 단출하다. 거실 창에 붙어 있는 구구단이 적힌 대형 색종이,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그림책을 보니 아이가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늙은 부부 둘이 살았는데, 얼마 전부터 손주 녀석을 기르고 있습니다. 우리 때는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서야 구구단을 외우고, 졸업할 무렵에야 한글을 뗐잖아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구구단을 떼더라고요. 대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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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의 얼굴에 어리는 흐뭇한 표정을 보니 머리 속에 들어 있던 딱딱하고 엄한 교도관의 이미지는 단숨에 날아가 버린다. 그러나 혹시 또 모를 일, 집안에서 따뜻한 사람일수록 밖에서는 가혹하다고도 하지 않는가. 차근차근 그가 밟아온 교도관 생활을 들여다보기로 마음먹으며 첫 질문을 꺼냈다.

-책 제목 ‘이름은 왜 불러’가 무슨 뜻입니까.

“교도관이 재소자를 부를 때는 대부분 이름이 아니라 수인번호로 부릅니다. 간혹 인간적으로 다가가고 싶어 이름을 부르면 적지않은 재소자들이 ‘이름은 왜 불러, 번호나 불러라’ 하고 냉소적으로 말하곤 합니다. 오래 전부터 그런 ‘익명화’가 과연 좋은 것인지 생각이 많았습니다. 지나온 교도관 생활을 정리하다 보니 그 말이 특히 마음에 남아 제목으로 삼게 되었지요.

책을 쓰게 된 것은 갈수록 범죄가 늘고 있는 현실, 위험 수위에 다다른 인명 경시 풍조가 가슴 아팠기 때문입니다. 재소자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교도관 출신으로서 침묵을 지키기에는 속이 터졌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들의 일화를 모아 교훈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왜 많고 많은 직업 중에 하필 교도관으로 평생을 사셨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먹고 살 방편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군대를 자원 입대했을 정도니까요. 제대한 뒤에도 다시 군에 들어가려고 애쓰다 실패했어요. 제발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하자는 마음으로 공무원 시험을 친 것이 교도관에 입문하게 된 계기입니다.”

주민등록에는 1934년 4월로 되어 있지만 윤씨가 실제 태어난 해는 1933년이었다. 그의 고향 충북 청원은 번화한 고장이 아니었다.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려 사는 인생’을 살다 간 아버지 때문에 그는 사실상 편모 슬하에서 자라났다. 일제 시대 서울로 이주해와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역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한약방을 운영하는 신탄진으로 내려갔다.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그를 키운 것은 8할이 외로움이고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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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계홍 언론인 ·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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