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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공 치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

PGA 우승한 프로골퍼 최경주

  • 글: 황호택 hthwang@donga.com

“공 치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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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즌 중에는 맥주 한 컵도 마시지 않고, 공을 칠 때는 절대로 입을 열지 않는 사나이. 그러나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마음 여린 사나이 최경주. 미국 진출 5년 만에 PGA 우승컵을 움켜쥔 그는 4대 메이저 대회 석권을 위해 오늘도 굵은 땀방울을 흘린다.
“공 치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
최경주는 한국에 들어오면 미국에서 PGA(미프로골프협회) 투어를 돌 때보다 더 바빠진다. PGA 스타의 반열에 오른 그를 모셔가려는 행사가 줄을 잇는 바람에 여간해서 시간을 뺏기 어렵다. 최경주의 일정을 관리하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의 주선으로 경기도 용인시 88컨트리클럽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최경주는 88컨트리클럽 운영위원들과 라운딩을 했다. 필자는 약속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최프로의 샷을 감상해볼 요량이었으나, 풍덕천 사거리에서 길이 꽉 막히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다 약속시간을 20분 넘겨 컨트리클럽에 도착했다. 다행히 사진기자가 먼저 도착해 최경주를 붙잡아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필자가 “토요일의 수지 용인 일대 교통은 못 말려요. 늦어서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를 하는데도 최프로는 기분이 상한 듯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는 사진을 찍고 나서 대뜸 “인터뷰를 20분 안에 끝내자”고 말했다.

“IMG에서 한 시간 일정을 잡았지만 20분 늦게 도착했으니 40분밖에 남지 않았고, 내게 다른 일정이 생겨 20분 먼저 인터뷰를 끝내야 하겠습니다. 서로 20분씩 까먹는 거죠.”

뭔가 착오가 있었다. 원래 1시간 반 동안 인터뷰를 하기로 돼 있었다. 최프로와 IMG의 협의 과정에서 30분이 어디론가 실종돼버렸다.

최경주는 골프의 룰을 모든 인생사에 적용하며 사는가보다. 골프는 범실에 대해서는 반드시 페널티를 주는 스포츠이다. 귀책 사유가 나에게 있으니 할 말이 없지만, 200자 원고지 100여 장을 메우려면 최소한 2시간 정도 인터뷰를 해야 한다. 일간지에 쓰는 손바닥만한 인터뷰도 아닌데, 잡지의 대담 인터뷰를 20분만 하자는 것은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여튼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기로 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늘은 어떤 모임의 골프였습니까.

“사적인 거예요.”

최경주는 1998년부터 미국 가기 전까지 88컨트리클럽에서 헤드프로를 지냈다. 미국에 진출할 때도 88컨트리클럽 운영위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88컨트리클럽에서 헤드프로 생활을 하며 미국 가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내가 미국에 갈 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분들을 위해 하루 정도라도 시간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경주는 2002 PGA에서 두 차례 우승해 상금랭킹 17위에 올랐다. 박세리는 LPGA(미여자프로골프협회)에서 한 해에 다섯 번 우승하기도 했는데, 두 차례 우승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묻는 것은, PGA 프로들에게는 대단한 결례다. PGA와 LPGA를 동렬에 놓는 것은 남자 프로축구와 여자 프로축구를 대등한 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년에는 좋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2003년에는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해 고국 팬들을 기쁘게 해야겠지요.

“한국 팬들은 목표에 대한 집착이 강해 부담스러워요. 선수가 목표 달성을 못하면 ‘이제는 갔네’라는 말을 쉽게 하지요. 만약 작년에 내가 17위가 아니고 100위권으로 밀려났다면 그런 소리를 또 들었겠지요. 사실 PGA 투어에서는 50위 안에만 들어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최경주는 1968년 5월19일생으로 35세. 빠른 동작과 강한 파워를 요구하는 종목이었다면 오래 전에 선수생활을 접었어야 할 나이다. 골프 선수는 정년이 길고 나이가 들어도 시니어 투어에 참여할 수 있으니 명성만 얻으면 평생 ‘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내가 바로 명예의 전당”

―몇 살까지 선수생활을 할 계획입니까.

“아무도 모르는 거죠. PGA 투어에서 K. J. CHOI(최경주의 영문 이름)가 얼마나 좋은 기록을 내, 길이 이름을 남길 수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단순히 K. J. CHOI가 미국에서 2승 올리고 조금 있다가 가버렸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박세리 선수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명예의 전당 같은 건 솔직히 관심 없어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에 선수의 값어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내가 바로 명예의 전당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된 거죠.

물론 PGA 투어는 LPGA에 비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가 엄청나게 힘듭니다. 그러나 혹시 압니까. 내가 나중에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 명예의 전당으로 보내줄지. 그러니까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말이 빠른 편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분량의 인터뷰를 하는 데는 말이 빠른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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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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