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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과의 전쟁 벌여온‘백신의 황제’

WHO 신임 사무총장 이종욱

  • 글: 송상근 동아일보 사회2부 기자 songmoon@donga.com

결핵과의 전쟁 벌여온‘백신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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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들 “이것은 꿈이다”고 외쳤다. 그러나 한국인이 국제기구 선출직 의장에 뽑힌 것은 결코 기적이 아니었다. 이 당선자가 20년간 WHO에서 보여준 능력과 총력 외교를 펼친 정부의 뒷바라지가 엮어낸 한편의 드라마였다.
결핵과의 전쟁 벌여온‘백신의 황제’
“이 박사가 됩니다. 선거 전에 이런 얘기하면 안 되지만 당선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선거가 실시되기 하루 전인 1월27일 오후 7시경. 김성호(金成豪) 보건복지부장관은 이종욱(李鍾郁) 박사의 당선을 100% 장담했다. 스위스 제네바 시내에 있는 뫼벤피크 호텔 지하 일식당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표 분석이 다 끝났다”며 확신에 찬 표정을 짓는 김장관 옆에서 복지부 문경태(文敬太) 기획관리실장은 예상 득표수까지 친절하게 설명했다. “1차 투표에서 우리만 더블 디지트(두자릿수)의 표를 얻을 겁니다. 다른 후보들은 5, 6표씩 분산될 것이고…여세를 몰아 3차 정도에서 끝날 걸로 봅니다.”

한국인 최초의 국제기구 首長

하룻밤만 지나면 김장관과 문실장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되겠지만 기자는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저러다가 만약에 이박사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 언론에서는 벨기에의 피터 피오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봤다. 현지 분위기가 그런데도 한국 대표단을 이끌고 온 김장관이 정반대로 얘기하니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월28일 오전 9시 반부터 시작된 투표 결과는 김장관이 말한 대로 나타났다. 1차 투표에서 이박사가 12표를 얻어 1위를 하고 7차까지 가는 접전 끝에 피오트를 누르고 당선됐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국제기구의 수장(首長)이 탄생하는 순간 투표장에 있던 한국 대표단은 서로 끌어안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 저녁 7시 제네바 시내의 한식당 ‘이조’에서는 당선을 축하하는 만찬이 마련됐다. 김장관, 정의용(鄭義溶) 제네바 대표부 대사, 엄영진 WHO 집행이사 등 참석자들은 선거 운동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박사가 WHO 직원들과 회의를 마치고 밤 9시50분경 식당에 들어서자 정대사가 인사말을 했다.

“이박사를 국제기구의 수장으로 모시게 돼서 큰 영광입니다. 외교사에 빛나는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큰 영광입니다. 이박사가 연임하도록 축배를 제의합니다.”

이박사는 “계속 영어로만 얘기하다 한국어로 하려니까 잘 안 된다”고 농담한 뒤 선거운동을 도와준 정부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정대사님은 한 국가의 대사를 세 번 네 번 찾아다녔다고 어느 외국 대사가 말하더군요. 노력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김성호 복지부장관님은 전세계가 좁다 하고 다 돌아다녔습니다. 그게 다 표로 돌아왔습니다. 영국의 나종일(羅鍾一) 대사님은 눈이 펑펑 오는데 털모자 쓰고 저하고 같이 왔다갔다 하셨고요.”

192개 국가가 가입한 WHO는 ‘유엔 산하 최대 국제기구’로 알려졌지만 정확히 말하면 산하 기구는 아니다. 독립적 성격의 전문 기구이다. 유엔 사무총장이 책임자를 임명하는 다른 유엔 기구와 달리 WHO는 투표로 사무총장을 선출한다. 2년 단위로 편성하는 예산 규모는 22억달러.

WHO 사무총장은 국제 사회에서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각국 원수에게 면담을 신청하면 예외없이 응한다고 한다. 질병 및 빈곤 문제가 심각한 아프리카, 동남아, 남미, 중동에서 WHO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전세계에서 8000여 명이 WHO에서 주는 월급을 받고 일하는데 사무총장이 인사권을 갖는다.

이처럼 막강한 자리에 한국인으로는 처음 당선됐지만 정작 이박사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76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얼마 안 돼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줄곧 외국 생활을 한 데다 사생활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 때문이다.

그를 만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말을 아낀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거 당일 저녁 이박사가 제네바 시내의 한식당 ‘이조’에서 열린 축하 만찬에 참석한 뒤 직접 차를 몰고 집으로 갈 때였다. 기자가 양해를 구하지 않고 운전석 옆자리에 뛰어 들면서 “몇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하자 그는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선거 자료집에는 1981년부터 미국 ‘린든 B 존슨 열대지방 의료센터’ 의무관으로 미국령 사모아에서 지낸 것으로 돼 있다. 그 후 계속 WHO에서 근무했다. 대학졸업 뒤 왜 개업하지 않았는지, 5년간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했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셨다면서요?”

“아니에요, 다 돈 받고 한 일인데….”

“WHO 근무 전에 남태평양에서 봉사활동을 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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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상근 동아일보 사회2부 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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