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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두 여인, 그리고 아버지의 삭발

  • 글: 서영은 소설가

두 여인, 그리고 아버지의 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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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가족 주변에는 항상 금패엄마의 느낌이 어른거렸다.
  • 우리 가족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고 우리 형제에게 정을 보내던 금패엄마가 아버지의 첫 부인이라는 것을 안 것은 충격이었다. 목소리에 울음이 묻어나는 듯했던 금패엄마가 다녀간 날이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엔 묘한 긴장이 흘렀다.
두 여인, 그리고 아버지의 삭발

자녀들에게 온화하고 이지적이었던 필자의 부친

내가 이 세상에서 아버지와 함께 한 세월은 고작 18년밖에 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사범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간경변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수(壽)는 61세였다.

나의 아버지는 손이 귀한 집 삼대독자였다. 이십대 때 한 여인과 결혼했으나 그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해 이혼하고, 두 번째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두 번째 결혼한 여인이 나의 어머니였고 나는 2녀 중 장녀였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은 아버지의 나이가 40대로 접어든 이후부터 시작된다. 그 이전에 아버지의 생애에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나는 거의 알지 못한다. 어른들의 대화나 상황을 통해 절로 알게 된 일들, 아버지가 신학을 전공했고, 돌아가신 부모님으로부터 제법 많은 토지를 상속받았고, 결혼한 부인이 손을 잇지 못하더라도 헤어질 뜻이 없었으나 부모님의 강권에 못이겨 이혼하고 나서 마음고생이 심했고, 큰 화재를 만나 재산손실을 크게 입었고 등등으로 요약되는 사건들은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관공서의 서류 한 귀퉁이에 몇 마디 활자로만 남아 있었다.

다정다감했던 금패엄마

나의 유년의 기억 한복판에는 한 미지의 여인이 서 있다(물론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금패엄마라고 불렸던 그 여인은 아버지 연배로 어머니보다 십년 이상 연상이었다. 금패엄마는 명절 때면 으레 우리집에 초대되는 손님이었다. 추석이나 정초가 되면, 나는 차례상 준비로 분주한 어머니 주위를 맴돌며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다. 전을 부치던 어머니가 손에 묻은 기름을 행주치마에 슬쩍 훔치다가 말고 생각난 듯이 나에게 일렀다.

“금패엄마한테 가서 내일 아침 우리집에 오시라고 해라.”

기쁜 마음에 곧바로 대문을 향해 내달리노라면 어머니의 책망이 뒤쫓아왔다.

“치마 좀 바로 입고 가거라.”

금패엄마는 쌍꺼풀이 깊은 서글서글한 눈매에 키가 작달막하고 환하게 웃을 때조차도 목소리에 울음이 묻어나는 듯한 여인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듯 적막한 기운이 감도는 마당에 들어서면 나는 항시 나와 내가 가져온 전갈이 금패엄마를 무척 기쁘게 할 거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그 심부름이 기꺼운 것은 그 때문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를 맞이하는 금패엄마의 얼굴에 웃음이 환하게 번지는 것을 보는 것은 그냥 기분 좋기만 한 일이 아니라, 그녀에게 내가 무척 귀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느낌도 갖게 했다. 방으로 들어와 잠시 놀다 가라는 금패엄마의 권유를 나는 수줍음 때문에 머뭇거리다 그냥 돌아섰다.

이튿날 아침 일찍 성장을 한 금패엄마가 우리집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명절에 찾아오는 유일한 친척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등장은 우리 형제들에게 가벼운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일하다 말고도 일어나서 그녀를 반기는 것은 어머니였고 내성적인 아버지는 눈을 내리깔고 비죽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머니가 만류하는데도 금패엄마는 부엌으로 나가 차례상 차리는 일을 도왔고 아버지는 방에서 지방을 쓰고 갈아입을 옷을 매만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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