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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기자의 사람 속으로

“도발이 아니다, 올바르게 살고자 할 뿐”

상속세 100%, ‘섹스 실명제’ 주장하는 1급 딴따라 박진영

  • 글: 이나리 byeme@donga.com

“도발이 아니다, 올바르게 살고자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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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른 둘 젊은 나이에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리더가 된 사람. ‘야한 것이 좋은 것’임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관습 파괴자. 돈이 싫고 사업이 싫고 결혼이 싫고 독한 게 싫은데, 돈도 많고 사업도 잘하고 결혼도 했고 지독스레 고집이 센, 강준만과 정경화와 모든 ‘올바르게 일관된 인간’을 죽도록 사랑하는 로맨티스트. 그의 가슴 뚜껑 열어보기.
“도발이 아니다, 올바르게 살고자 할 뿐”
전철을 타고 가며 생각한다.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 이유란 게 우습다. 바야흐로 봄 아닌가. 풍선처럼 가볍고 싶고, ‘공중전’ 따위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똑똑한 남자, 사절이다. 너무 섹시한 남자, 부담스럽다. 너무 잘난 남자, 제발 비켜가 주시라.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집합체인 자를 만나러 간다. 박진영(32)이다.

박진영은 스타다. 그냥 스타가 아니라 섹시 스타다. 일찍이 현란한 몸짓과 자극적인 노랫말로 대한민국 여성의 ‘몽상의 대상’이 됐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저작권료를 받는 뮤지션 중 하나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 매출액 100억 원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는 전문경영인이기도 하다. god, 박지윤, 비, 별, 노을…. 이런 스타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남모를 선행으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도 받았다. 차세대 모바일 콘텐츠 개발의 핵심 브레인이자, MP3(인터넷 음악파일) 유료화 문제를 놓고 인터넷 사업자들과 일대 격전을 치르고 있는 대중음악계의 대표 논객이기도 하다.

더하여, 지금 그는 또 다른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 새로 나온 박지윤의 음반 때문이다. 그가 작사·작곡했고, 앨범 타이틀곡으로 내세웠고, 그런데 방송3사로부터 틀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고, 아예 앨범 전체가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는 데 절대적 공헌을 한 노래 제목은 ‘할 줄 알어?’다. ‘도대체 뭘 할 줄 안다는 말이냐’를 놓고 요즘 저명하신 분들 사이에 공방이 한창이다. 덥다. 덥고 습한 기운은 봄의 달뜬 호흡에 치명적이다.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

‘주류 딴따라’의 비주류적 파격

그럼에도 발길은 어느새 청담동이다. 박진영이 운영하는 JYP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들어선다. 5분을 채 못 기다려 그가 온다. 큰 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공들여 다듬은 몸매다. 회의실로 자리를 옮긴다. 얘기를 시작하려는데 분위기가 심상찮다. 조금 전 박지윤의 새 음반이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 이용 불가 판정을 받았단다. 어쩔거냐고 물으니, 좀 당황스럽지만 일단 조치에 따르고 재심을 신청하겠단다.

“그래도 안 되면 소송하려구요.”

흥분할 법도 한데 오히려 좀 어둡달까, 꽤 가라앉은 표정이다. 사실 성 표현 수위와 관련한 논쟁은 그에게 생소한 일이 아니다. 1994년 데뷔 당시부터 그는 ‘지나치게 섹시한 춤, 섹시한 옷, 섹시한 가사’로 많은 공격을 받았다. 특히 2001년 6월 출반한 6집 ‘게임’은 주류 언론은 물론 네티즌과 대학생, 문화산업 종사자들 사이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박진영은 “‘성=즐거운 놀이’라는 시각이 왜 문제가 되느냐”며 자신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렇게 때로는 성상품화의 원흉처럼 이야기되는 그는, 또 한편으로는 독특한 결혼 생활과 가부장제에 대한 전복적 가치관, ‘강한 여성, 독립적 여성’에 대한 일관된 지향으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보기 드문 대중 스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피할 길이 없다. 봄날은 자꾸 간다.

-성 표현 문제는 나중에 되짚기로 하고, 먼저 옛날 얘기부터 해보죠. ‘할 줄 알어 할 수 있어/ 내가 소리를 아 지르게 만들 수 있어 / 주는 건 문제가 아닌데 감당할 수 있냐고….’ 한국 사회에서, 그것도 이른바 ‘주류 딴따라’가 이런 가사를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닐텐데, 역시 미국 생활 때문인가요.

“일곱 살부터 아홉 살까지 2년9개월을 뉴욕에서 살았어요. 아버지가 그쪽 지사로 발령이 났거든요. 주로 흑인들하고 어울렸고, 아주 행복했어요.”

박진영은 1972년 1월 생이다. 1남1녀 중 둘째. 교사이던 어머니는 그를 낳은 후 전업주부가 됐다.

-부모님이 다른 집하고는 좀 달랐나봐요.

“제일 큰 차이는 너무 편하다는 거. 엄마 아빠가 어려웠던 적이 없어요. 지금도 식구끼리 있을 땐 아빠라 부르고, 엄마한테도 누구씨라 부르고 그래요. 콩가루 집안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아버지보다 숟가락 먼저 들면 안 된다든가 그런 규칙이 전혀 없으니까. 두 분한테는 무슨 얘기든 다 하고 못할 얘기가 없어요. 부모님 말씀이, 무슨 대단한 교육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약해서 그러셨대요. 위험한 방식일 수도 있는데 저랑 잘 맞았죠. 아빠랑 고스톱 쳐서 용돈 땄고, 뭐든 말리는 법이 없으셨어요. 늘 ‘왜’라고 물으셨고 논리적인 대답만 할 수 있으면 무조건 믿고 맡겨 주셨죠. 그래서 말을 잘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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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나리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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