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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아들의 신앙 허락해준 참 자유인

  • 글: 현길언 한양대 국제문화대 교수·작가 hyunku@hanyang.ac

아들의 신앙 허락해준 참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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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은 혈육으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노력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연세가 많아질수록 옷차림에 마음을 쓰셨다. 별로 배운 것은 없지만 아버지는 정연한 논리와 반듯한 글씨로 주변 사람들을 압도하셨다. 그 힘은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옳고 그름에 대한 정확한 판단, 그리고 타인에 대한 친화력에서 나온 것이다.
아들의 신앙 허락해준 참 자유인

1985년 현길언씨가 한양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을 때 자리를 함께한 부모님(왼쪽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어느 날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서 아버지 모습을 보고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었어도 아버지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아이로 있었는데, 어느 새 내가 아들 앞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에게서 느꼈던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엄숙함과 거리감을 지금은 내 아들이 내게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두렵게 했다.

아버지는 항상 나보다 먼 데 있는 어른이셨고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분이 아니셨던가? 나는 그분보다 많이 배웠고 사회 생활의 폭도 넓으며 인생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분께서 자신을 지키면서 흔들림 없이 살아오신 것을 생각하면, 나는 아버지의 그림자도 따라가지 못한다.

그분께서는 학교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하셨다. 한평생 제주도 산골 집성촌의 작은집안 장손으로서 조상에 대한 의무와 당신의 동생과 자식들과 집안 식구들에 대한 책임으로 일생을 사신 분인데, 그 점은 내가 앞으로 백년을 더 살아도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것 같다.

당신은 육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화려한 꿈은 꾸지도 않으셨다. 하루하루 가족이 무사함을 소망하며 살아오셨고 무정한 세월에 노쇠해 가는 육신을 지켜 가까이 있는 사람들 앞에 구김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셨다. 그 자존심이 이제 늙음의 나이에 접어든 나에게 부럽기 그지없이 다가온다.

명당 찾기에 여념이 없었던 증조부

아버지는 대한제국이 문을 닫던 경술(庚戌)년 목축과 밭농사로 100여 호가 모여 사는 현(玄)씨 집성촌에서 작은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셨다. 나라 형편이 뒤숭숭하자 집안 어른이신 나의 증조부님께서는 세상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보시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로지 조상 묘 자리를 찾는 데만 관심을 두셨다. 시골 살림이지만 머슴을 데리고 살았던 형편이라 유명하다는 지관(地官)을 집안에 살게 하면서 조상 묘를 쓰기 위한 명당 찾기에 열을 올리셨다.

아버지는 그러한 당신의 할아버님(나의 증조부) 밑에서 한문을 읽다가 옛 현청 마을에 신식학교가 문을 열자, 친구를 따라 그곳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부님이 증조부님의 명을 받아 소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 아버지를 불러내 그 길로 집으로 데려오셨다. 증조부께서는 장손이 신식 공부를 하는 데 반대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뭔가 더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어 집안을 뛰쳐나와 제주에서 가까운 마을에 사시는 고모(내게는 왕고모)네를 찾아가 그곳에서 정식으로 학문을 공부하셨다. 그것이 아버지의 전학력이다.

증조부께서 명당 찾기에 열을 올리는 사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다 날아가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고 한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 아래 6남매를 두고 일본으로 돈 벌러 떠나셨다.

그때부터 집안의 장손 역을 맡게 된 아버지는 동생과 어른을 섬기며 집안 일을 떠맡았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한평생 일이 되었다. 어느 집안의 가장이 식구들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하겠는가마는, 아버지께서는 해방과 4·3사태라는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도 그 일을 묵묵히 감당해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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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현길언 한양대 국제문화대 교수·작가 hyunku@hany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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