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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늦게 갈 수도 있지만 바른 길을 택하라

  • 글: 안강민 변호사·전 서울지검장

늦게 갈 수도 있지만 바른 길을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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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년 부산MBC 사장으로 재직하던 아버지는 마산에서 터진 3·15 부정선거 시위의 생중계를 결정함으로써 4·19혁명의 단초를 만들었다.
  • 젊은 시절 고향에서 야학을 만들고, 빨치산 토벌대의 무리한 작전을 온몸으로 막았던 아버지는 내게 정직을 강조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무심코 거짓말을 했다가 호되게 매를 맞은 나는 이후 정직한 인간이 되려 노력하였다.
늦게 갈 수도 있지만 바른 길을 택하라

1953년 경기중 1학년생이던 안강민 변호사와 그의 부친인 안성수 선생(부산 초장동에서)

몇 주는 지났을 것이다. 나는 신문 한 귀퉁이에서 한동안 잊고 지내던 단어와 만날 수 있었다. 요즘 네티즌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어느 익명가가 쓴 ‘아버지’란 제목의 짧은 수필이었다.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그 수필은 첫 번째로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고 답을 적고 있었다. 읽어 내려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묘사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이 표현에서는 두 아이의 아버지인 지금의 내 모습을 그린 듯하여 씁쓸한 공감마저 느껴졌다.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은 수필 하단부에 있었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더욱 보고 싶은 사람이다.’

그렇다. 이 글을 보자 언젠가 아버지께서 내게 들려주셨던 한시 구절이 생각났다. ‘수욕정이 풍부지, 자욕효이 친부대(樹欲靜而 風不止, 子欲孝而 親不待)’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불어와 흔들어대고, 자식은 효도를 하고 싶지만 부모님은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양친께서 모두 돌아가신 후에야 이 시구를 절실히 떠올리는 것은 역시 내가 둔감하여 뒤늦게 깨닫기 때문이었을까.

가끔씩 나는 내 모습과 행동에 당신께서 심어주신 것들이 남아 있음을 느끼며 나 홀로 있는 것 같지 않아 가슴 한 켠으로는 뿌듯하다. 그래서일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꼭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東岩 安星洙)를 떠올리곤 한다.

나는 30년 가까이 검사로 재직하며 나름대로 충실히 공직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내가 내 나름대로 정의로운 검사가 되려고 노력했던 것은 어릴 때 아버지께서 몸에 배도록 물려주신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께서는 1913년 경남 울산군 하상면 양정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어리광을 피울 법한 막내였지만 여섯 살 때 천자문을 뗄 정도로 총명하셨다고 한다. 문화정책으로 일제의 위세가 심해지던 1930년대 초, 아버지께서는 암울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하시고 마을에 야학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글을 가르치셨다고 한다. 그때 당신 나이는 고작 17∼18세셨으니 젊어서부터 강직하고 소신 있는 성격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버지는 21세 때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하셨다. 해방된 후에는 거창 군수로 부임하셨다. 당시는 우익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섰지만 좌·우익의 대립이 첨예한 때였고, 특히 지리산이 걸쳐 있는 거창은 빨치산 활동이 대단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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