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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대체의학 연구에 몸바친 ‘운동권 의사’ 전홍준

“인간의 탐욕과 잘못된 생활양식이 난치병 주범”

  • 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대체의학 연구에 몸바친 ‘운동권 의사’ 전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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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홍준씨는 청소년 때부터 민주화운동에 가담해 몇 차례 옥고를 치르다가 20대 중반이 돼서야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신념은 그를 다시 거리로 이끌어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때는 전남도청 앞에서 역사의 현장을 함께했다. 다시 의사의 자리로 돌아온 그는 10년간 의대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했지만 1987년부터는 대체의학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대체의학 연구에 몸바친 ‘운동권 의사’ 전홍준
인도주의 실천 의사협의회 창립멤버이자 핵전쟁방지 국제의사협의회 멤버, 건강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운동권’ 의사 전홍준씨. 조선대 의과대학 교수이자 미국 위스콘신대학 의과학센터 연구교수였던 그는 1987년부터 교수라는 사회적 명예를 훌훌 털어버리고 대체의학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길을 걷고 있다.

전라남도 광주의 외곽을 돌아 무등산 초입인 운림동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갔더니 그의 사무실이 위치한 무량회관이 보였다. 건물 앞으로는 무등산 줄기를 따라 내려온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건물 3층에 자리잡은 사무실에는 ‘의식과 생명 아카데미’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 있다.

수도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무실에서 만난 전홍준(58)씨의 첫인상은 마치 엄격한 계율을 지키는 사제나 승려 같았다. 언뜻 세상의 욕심을 초월한 듯한 표정도 엿보였다.

-매우 엄격한 산사의 스님처럼 보이는군요.

“얼마 전 단식을 했어요. 일주일 정도 단식을 하면 정신이 맑아져요. 체내의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음의 찌꺼기들을 걸러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현대인은 영양과잉과 화학물질 위주의 식습관, 환경공해등으로 인해 몸이 비대해지고 이상 체질로 변했어요.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 일정 기간 단식을 하는 게 좋습니다. 신체의 노폐물을 뽑아주기 때문이죠. 단식을 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깨끗해져요.”

-그것도 대체의학 프로그램의 하나입니까.

“그렇습니다. 주요한 프로그램 중 하나죠.”

-여러 대학에서 대체의학을 강의하고 있는데 대체의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솔직히 ‘이거다’라고 짚어주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의학이란 자연치료의학, 심신의학과 같은 전체성 의학을 말하죠. 일본이나 미국, 유럽에서는 이미 상당한 진전을 보고 있어요. 저도 일본과 미국에서 연구하면서 많은 임상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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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개인의 삶과 문명이 변하지 않는 한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본성에 정합하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여겼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기 개발의 도구인 아바타(avatar)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아바타 프로그램이란 무엇입니까.

“1986년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해리 팔머가 체계화시킨 의식개발과 영적 진화를 위한 코스인데, 1998년 현재 61개국에 보급되어 있습니다. 아바타란 고대 신화에서 유래된 말인데, 우주와 생명의 본성을 깨닫고 스스로가 우주에 내려온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바타 프로그램은 편안하고 고요한 의식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명상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수련과 고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명상과 다르죠.”

-특정한 종교나 심리학과 관련된 것처럼 비쳐지는군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종교나 철학, 심리학과도 모순되지 않고 함께 정합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가 하고 있는 일인 대체의학을 화두로 삼았지만 사실 전홍준이란 사람의 남다른 삶이 더욱 흥미롭다.

-광주 지역사회에서는 ‘전홍준 교수’ 하면 ‘운동권 의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운동권 의사가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습니까.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해야겠군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대상황이 저를 운동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죠.”

전씨가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때 4·19혁명이 일어났다. 이때 그는 친척 형(전만길 전 대한매일 사장)과 함께 자취를 했는데, 형이 고교 학생회장에 광주 학생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래서 어린 그는 시내 고교 학생회 간부들에게 형의 심부름을 다니는 전령이 되어서 본의 아니게 학생운동 분위기를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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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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