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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④

‘虛의 미학’을 가진 배우 신성일

“여자를 예뻐하지 않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다”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虛의 미학’을 가진 배우 신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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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그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꽉 차 있음’이 아니라 ‘비어 있음’으로 승부한 배우였다. 그것이 가난이든 순정이든 세파에 시달린 피로든 간에, 역설적으로 그 허함은 그를 늘 한국 영화의 중심에 서 있게 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성에게는 모성 본능을, 남성에게는 왠지 모를 동질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그가 가진 ‘귀티’ 덕분에 비관의 늪으로 빠지지 않는 신비한 이미지이기도 했다. 근래에 등장한 정우성을 제외하고는, 배우가 가진 ‘허(虛)함의 미학’에 있어서 필자는 신성일이라는 이름 외에 더 이상 아는 이가 없다.

‘돈을 벌어야 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한 스포츠신문에 80회 가량 연재하신 수기가 있어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인생역정을 죽 따라가다 보니 참 다채로운 경력이다 싶더군요. 배우에, 감독에, 제작자, 국회의원선거 떨어지고 나서는 식당주인도 하셨고….

“식당주인은 마누라가 했지. 나는 허드렛일 하는 종업원이었어요. 사실 그것도 얼마 못하고 쫓겨났어요. 소란 피우는 주정뱅이들을 몇 번 두드려 팼더니 마누라가 장사 안 된다고 쫓아내더라고요.” (웃음)

-삶을 회고할 때 어떤 생각이 드세요. 그렇게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온 신성일이라는 사람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내가 생각이 많아지면 꼭 상의하는 사람이 대전에 있어요. 어제도 이분하고 산에 올랐는데, 문득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편으로는 신이 나를 지켜봤다면 ‘참 별난 놈이다’ 이렇게 말할 것도 같고요. 내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어요. 아버지 얼굴도 모르니까. 공부도 굉장히 잘하셨고 일제시대 때 은행에서 좋은 자리에 계셨다고 하는데 폐결핵으로 일찍 돌아가셨어요. 사진을 보면 모습이 아주 깔끔하시죠. 결핵이었으니 나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랑 격리되어 지냈고 그나마 돌도 지나기 전에 돌아가셨죠. 그때만 해도 폐결핵은 불치병이었으니까. 근 60년 전 아닙니까.

어머니는 대구 경북여고를 나오고 사회활동도 많이 하신 인텔리였어요. 특히 자식교육에 굉장히 엄격하신 분이었죠. 나한테 ‘아비 없는 자식 소리 듣지 말아라’고 늘 강조하셨고. 그래서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모범생이었죠. 운동도 잘하고 키도 큰 편이어서 확 눈에 띄었던가 봐요. 스스로 강한 프라이드를 갖고 청소년기를 보냈죠.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세가 확 기울었어요. 어머니가 들었던 계가 깨져서 집도 쫓겨나고 나도 일을 해야 했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때부터 공부를 못했어요. 서울대에 시험 봤다가 떨어졌죠. 그리고 나서는 청계천에서 호떡장사를 했어요. 당시 청계천은 피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는데 형편이 말이 아니었어요. 그때가 1956년 무렵인가. 아무튼 요즘 젊은 이들은 상상도 못할 상황이었죠.

그때 우리 집 주위에는 막걸리 파는 집, 지짐 부쳐 파는 집 등 이북에서 내려온 분이 많았어요. 그분들이 ‘저 집 아들은 얼굴도 훤하고 잘생긴 게 호떡집 아들 같지 않다’고 수근대곤 하셨지요. 그래서 ‘아, 내가 호떡장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구나. 다른 일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그 전에도 영화는 많이 봤어요. 어머니 손잡고 극장에 많이 갔죠. 50년대에는 프랑스 영화가 많이 상영되었는데, 마르셀 카르네의 ‘인생유전’ 같은 영화는 확 뇌리에 박혔죠. 그게 하나의 뿌리가 됐을 거예요. 호떡장사를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다른 삶을 꿈꿀 무렵, 어린 시절 봤던 영화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던 거죠. 그 덕분에 영화에 몸을 던지게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곤 해요.”

-동년배의 다른 배우들과는 사뭇 다르네요. 다른 분들은 대부분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어느날 길거리나 학교에서 픽업됐다’고 하시던데요.

“그때만 해도 영화를 좋아했을 뿐 직접 영화판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은 못했죠. 우선 국산영화는 봐도 재미가 없었으니까. 그 무렵 한 친구가 가수가 되어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걸 보니 나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데요. 그때 처음으로 배우가 돼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배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고민 하다가 중부경찰서 근처에 있던 한국배우전문학원을 찾아갔죠.

그때 그 학원이 참 대단했어요. 김수용, 유현목, 김기영 감독을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소득이었어요. 수업에 들어갔더니 양광남씨가 스타니슬라프스키의 ‘배우수업’을 갖다 주더라고요. 그 책을 지금도 갖고 있어요. 고전 중에 고전이죠. 늘상 끼고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어요. 지금은 책장이 누렇게 변해버렸죠.

거기서 6개월 동안 교육을 받고 나니 학원에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더군요. 그래도 오기가 있어서 엑스트라로 시작하지는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어요. 촬영장에 가보면 조감독이 잠깐 엑스트라 좀 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앉아 있다가 카메라 돌아가기 전에 슬쩍 사라지곤 했어요. 엑스트라로 비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때도 내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참 당돌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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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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