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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여의도 입성한 ‘토론의 달인’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빨강이든 파랑이든 색깔 진하게 가져야”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여의도 입성한 ‘토론의 달인’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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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성당원제, 정책 차별성, 1인2표제가 총선 성공요인
  • ● 당 강령 과격한 건 사실…그러나 헌법 위배라고 보진 않아
  • ● 부유세는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 위한 사회안전망 재원
  • ● 능란한 비유법은 노동자 설득과정에서 익힌 수사학
  • ● 사회주의 꿈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 ●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같은 종자
여의도 입성한 ‘토론의 달인’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민주노동당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한양빌딩 4, 5층을 중앙당사로 쓰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영등포시장 공판장으로 옮겨가고 한나라당이 천막당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당사만 놓고 보면 민주노동당이 제일 버젓하다. 노회찬(魯會燦·48)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당사 쇼’를 한다”고 평가절하했다.

한양빌딩은 과거 새정치국민회의의 당사였다. 권영길 대표의 방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쓰던 방이다. 몸이 불편한 DJ가 사용하던 특수화장실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주가 노 총장에게 “DJ가 여기 있다가 대통령이 됐다. 터가 좋은 건물”이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터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2000년 1월30일) 4년여 만에 의석수 10석을 차지하며 제3당으로 부상했다.

민주노동당 당사의 집기는 하나같이 작고 검소하고 실용적인 것들이다. 노 총장은 약속시간보다 20분 가량 늦었다. 사무총장실에 부속실 같은 것도 없고 노 총장 방에서 기다리는 동안 ‘손님’에게 물 한잔 내놓는 사람도 없었다. 무슨 일로 왔는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문 밖이 시끄러워 내다보니 당사를 찾은 한 당원이 당직자에게 “야 실장이면 다야. 무슨 벼슬하는 줄 알아”라며 언성을 높였다. 육탄전 직전에서 멈췄다. 당직에 대한 존경이나 예우 같은 것은 없는 당이라는 것을 잠깐 동안에 체험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이 최종목표 아니다”

노 총장은 4·15 총선기간 TV에 민주노동당의 간판 토론자로 나서면서 일약 스타로 떴다. 친구들과 저녁 먹는 자리에서도 사인받으러 오는 사람이 줄을 서 “자존심 상해서 다시는 너하고 저녁 안 먹겠다”는 핀잔을 듣는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정당득표율을 13.1%로 끌어올리는 데는 노 총장의 역할이 컸다. ‘노회찬 국회보내기 운동본부’라는 인터넷 사이트도 생겼다. 민주노동당 주변에선 노 총장이 비례대표 7번이었다면 전국구에서 7번까지 당선되고 끝났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비례대표 의석배분기준(유효득표의 3.0%)에서 0.179 %가 부족해 ‘10선(選)’의 꿈이 깨졌다. 노 총장은 자민련이 의석배분에서 배제되면서 개표 막판에 당선이 확정됐다.

-4월15일 저녁부터 16일 새벽까지 비례대표 의석을 놓고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밤새 엎치락뒤치락했는데요. 잠을 제대로 못잤을 것 같습니다.

“당선되면 한번 포부 있게 일해보는 거고, 안 될 경우에 대비해서도 마음 정리를 빠르게 했어요. 안 되더라도 내가 선거과정에서 얻은 게 많고, 우리 당의 현실로 볼 때 여러 역할을 해나가야 하니까요. 우리가 일을 궁색하게 진행했지만 포부가 크고 목표는 높은 곳에 있습니다. 국회의원 되는 게 최종 목표가 아닙니다.”

-창당 4년 만에 의미 있는 승리를 이끌어낸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첫째 당 운영에서 진성(眞性)당원 제도를 택해 차별성을 보여줬고 깨끗한 정당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습니다. 둘째는 정책의 차별성입니다. 아직까지 일각에 민주노동당 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50~60% 지지를 목표로 했던 건 아닙니다. 초기에 다른 당과 현실적 차별성을 만들어내 지지세력을 규합하는 데 성공한 거죠. 사회주의냐 사민주의냐를 따지는 이념적 차별성은 공허하거든요. 부유세나 무상교육, 무상의료처럼 실생활과 관련 있는 정책적 차별성으로 독자영역을 구축했습니다. 우리는 탄핵문제와 관련해 열린우리당과 같은 입장을 취했음에도 2중대란 얘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민주노동당은 확실히 다르다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죠.

셋째는 1인2표제입니다. 1인2표제는 우리가 위헌소송을 내 쟁취한 법률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진보정당이 발전하는 데 비례대표 정당투표제가 크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간 1인2표제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를 했습니다. 정당투표제가 처음 시행된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8.23%를 얻었습니다. 1인2표제로 광역의회 전체의석의 10%를 선출하기 때문에 다른 당에서는 거의 관심을 안 뒀어요. 우리는 거기에 목숨을 걸다시피 해 8.23%를 얻고 광역의원 9명(비례대표)을 당선시켰습니다. 남이 보기에 전국적으로 시의원, 도의원 9명을 확보한 것에 불과했겠지만 우리로서는 일종의 라이선스를 얻은 셈이 됐죠. 제3당 지위를 얻음으로써 국고보조금을 받았고 그 결과 대통령선거 때 5% 이상 얻은 정당이 참여하는 방송토론에 권영길 후보가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전국적인 정당으로 알려지게 됐고요. 어차피 지역에서 몇 석 안 나온다고 봤기 때문에 정당득표를 선거운동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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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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