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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여의도 입성한 ‘토론의 달인’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빨강이든 파랑이든 색깔 진하게 가져야”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여의도 입성한 ‘토론의 달인’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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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풍이 없었다면 민주노동당 의석이 더 늘어났으리라 생각합니까.

“사실 탄핵안이 가결된 날 우리는 심각한 위기를 느꼈어요. 지지율이 올라가다가 탄핵 때문에 휘청거렸습니다. 나중엔 극복됐지만…. 탄핵이 없었더라도 이 정도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열린우리당은 이번 총선을 통해 과반 제1당으로 약진했지만 영남에서 의미 있는 의석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한나라당은 호남 충청에서 참패했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이번 총선에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지역당이 됐다. 지역에 관계없이 전국에서 고른 득표율을 보였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전국당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 선거의 고질인 지역주의가 사라질 단서가 보였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바로 정책정당끼리 붙는 겁니다. 보수와 진보정당이정책으로 대결할 때 지역주의의 벽을 깰 수 있습니다. 지역주의는 국민이 틀어쥐었다기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조장한 측면이 강합니다. 지역주의가 쉽게 없어지지는 않겠지요. 다른 대안이 계속 스며들어 그 부분이 넓어지고 지역주의의 비중은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탈지역주의, 정책 중심, 정체성 중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빨강이든 파랑이든 색깔을 진하게 가져야 합니다.”



-보수적인 인사들은 지역갈등보다 보혁대결이 더 위험하고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걱정하던데요.

“지역갈등이 겁날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무력충돌로 발전하지는 않았잖아요. 보혁(保革)대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국가들을 봐도 다 보혁구도잖아요. 전세계에서 보혁구도가 아닌 나라는 미국 하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보혁으로 감으로써 정책 중심의 투표가 이뤄집니다. 우리의 지역주의는 수십 년간에 걸쳐 형성된 지역 카리스마와 관련돼 있었거든요. 이번에 그게 다 제거됐기 때문에 지역주의가 복원되기는 어렵습니다.

박근혜씨가 영남을 YS만큼 대표할 수 있을까요.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호남에서 한화갑씨가 DJ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거든요. 지역을 묶어주던 인격체가 없으므로 지역주의가 재생산되지 못하는 거죠. 오랫동안 형성된 문화가 그냥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점점 완화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 봅니다. 그 빈 공간에 보혁이 스며들어야 합니다. 계층의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것처럼 덮어놓을 수는 없죠. 드러내놓고 치료할 시기라고 봅니다.”

-꼬박꼬박 당비를 내는 당원이 국회의원 후보와 당 대표를 선출하는 진성당원 제도는 민주노동당이 처음 시도했는데 열린우리당도 벤치마킹을 하더군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민주노동당이 처음 발명한 제도는 아니죠. 민주노동당도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수입했습니다. 우리 당은 국회의원 한 명 없이 당을 만들어서 4년을 버텨온 독특한 정당입니다. 명망가도 없고 돈도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진성당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 있는 자 들으라’

이쯤해 총선 이야기를 접고 노 총장의 삶의 이력을 더듬어보는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촌철살인의 비유와 부드러운 토론술로 스타가 된 노 총장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이 나라가 지향할 사회체제에 관해 어떤 생각의 틀을 갖고 있는 사람일까.

온라인과 오프라인 자료들을 뒤져봐도 그의 성장기와 관련한 기록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경기고를 다니며 유신반대 유인물을 제작하고 첼로를 연주할 줄 알며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용접기술을 배워 공장에서 일한 위장취업 1세대 인물. 그를 둘러싸고 ‘위험한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에서부터 ‘균형감각을 갖춘 운동가’라는 찬사가 엇갈린다.

노 총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초량초등학교와 부산중학교를 나왔다. 부모는 함흥 출신으로 피난민 생활을 하다 만나서 결혼했다.

아버지는 북한에 있을 때 원산도서관에서 일했다. 만주로 징병가는 열차 안에서도 하이네 시집을 볼 정도로 시를 좋아하던 문학청년이었다. 노회찬의 ‘회’자는 항렬이고 ‘찬’자는 아버지가 좋아하던 시인 이찬(월북)에서 따왔다. 어머니는 북한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아버지는 월남 후 부산에서 제약회사에 다녔다. 피난민촌에서의 살림은 중산층 이하였다. 노 총장 위로 누나가 있고 밑으로 남동생이 있다.

“집안 분위기가 생활수준과 무관하게 문학과 예술을 애호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문학과 예술이 밥 먹여주냐고 말할 때 부모님은 밥을 덜 먹더라도 문화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두 분은 사글셋방에 살면서도 오페라를 보러갈 정도로 예술을 사랑했습니다.”

노 총장은 중학교 1학년 때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모는 학업성적이 좋아야 한다는 얘기보다 베토벤의 ‘운명’을 더 들으라는 얘기를 했다. 중학교 때는 부산시향 첼로 수석주자 배종구씨에게 배웠다. 경기고에 다닐 때는 음악선생의 소개로 국립교향악단 첼로 수석주자 양재표씨에게 사사했다.

그는 1973년 경기고 1학년때 정광필군(대안학교 교장)과 둘이서 유신반대 유인물을 제작해 살포하는 사고를 친다. 제목을 성경 구절에서 따와 ‘귀 있는 자 들으라’로 했다. 첫머리에 서울대 4·19 선언문 ‘자유의 종을 난타하라’를 인용한 뒤 격렬하게 유신체제를 비판했다. 필적이 드러날까봐 등사기를 사용하지 않고 청타집에서 16절지 양면에 인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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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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