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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心중中일一언言

“인간은 신성을 이미 내면에 갖추고 있다. 그걸 발현시키면 절로 이타적 존재가 된다”

70여 개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배철현 서울대 교수

  • 글·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사진·홍중식 기자|free7402@donga.com

“인간은 신성을 이미 내면에 갖추고 있다. 그걸 발현시키면 절로 이타적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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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성을 이미 내면에 갖추고 있다.  그걸 발현시키면 절로 이타적 존재가 된다”
그는 원래 신학도였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부모님의 염원으로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81학번)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신앙이 깊지 못해 학과 공부를 등한시했고 쫓기듯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했다. 학점은 바닥권이었고 학교는 신군부에 반대하는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그는 ‘믿음’보다 ‘앎’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신학엔 관심이 없었지만 경전의 원문을 제대로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해외 유학을 결심했죠. 군복무를 카투사(주한미군 파견 한국군)로 하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덕에 토플이나 GRE(대학원입학자격시험) 점수는 높았지만 학점이 문제였습니다. 복학한 뒤 열심히 공부해 줄줄이 A학점을 받았음에도 평균 학점이 2.3(4.3학점 만점)밖에 안 됐죠.”

놀랍게도 그 학점으로 하버드대 입학 허가를 받았다. 평균 학점보다는 급격한 학업성취도가 인상적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거기서 그는 필생의 스승을 만난다. 하버드 학생들 사이에서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보다 아카드어를 더 잘하고, 파라오 람세스보다 이집트어를 더 우아하게 기록하며, 이스라엘의 솔로몬이 고대 히브리어로 남긴 ‘시편’을 줄줄 외운다’고 소문난 존 휴네가르드 교수였다. 그가 부인인 조 앤 해킷 교수와 함께 2009년 텍사스대(UT) 오스틴으로 옮겨가면서 고대 중동학 연구의 중심이 미국 동부에서 서남부로 이동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선 ‘고대 에티오피아어’ 강의를 들어야 했다. 수강생은 그를 포함해 딱 3명. 한 명은 바티칸 교황청의 성서학 교수가 된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에티오피아 유학생이었다. 그에겐 외계어나 다름없었지만 휴네가르드의 가르침을 따라 필사적으로 공부해 3명 중 2등을 했고 제자로 받아들여졌다. 동아시아인으론 최초였다. 그렇게 10년을 공부한 결과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포함한 셈족 언어와 헬라어(고대그리스어)와 라틴어를 포함한 이란·인도어 계통 언어 70여 개 언어 해독이 가능하게 됐다.

이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기원전 6세기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꼽히는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한 다리우스1세는 자신의 공적을 기록한 베히스툰 비문을 세웠다. 이 비문은 3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아카드어(메소포타미아 최초 통일왕국의 언어), 엘람어(페르시아제국의 공식 언어), 당시 페르시아 민중이 사용하던 고대 페르시아어다. 그의 박사 논문은 이 3가지 판본을 비교한 것이었다. 세계 최초였다. 여기에 다리우스1세가 당시 같은 내용을 23개국에 외교문서로 보낼 때 사용한 아람어(당시 중동 지역 공용어) 판본까지 4개 언어를 아울렀다. 아카드어와 아람어는 셈족 언어이고, 고대 페르시아어는 지금의 이란어처럼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다. 그리고 엘람어는 굴절어인 이들 언어와 전혀 다른 고립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


“인간은 신성을 이미 내면에 갖추고 있다.  그걸 발현시키면 절로 이타적 존재가 된다”

2011년 경기 가평으로 집을 옮긴 뒤 집필에만 몰두한 배철현 교수가 최근 출간한 4권의 책.[21세기북스 제공]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2003년 서울대 종교학과의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 담당 교수가 됐다. 종교학 전공자가 아니지만 이들 세 종교의 경전을 원어로 읽고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종교를 믿는 학생들의 통념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서울대에서 가장 위험한 강의를 펼친다’고 소문난 배철현(55) 교수다.

배 교수는 야심 찬 새 시리즈 집필에 들어갔다. 우리는 어디에서 출발했고, 언제부터 인간이 됐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찾아가는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다. 전체 10권으로 계획돼 지난 7월 출간된 1권은 유인원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한 600만 년 전부터 인류 최초의 신전인 ‘괴베클리 테페’가 등장하는 1만1500년 전까지를 다룬다. 내년 출간될 2권은 농업혁명이 발생한 1만 년 전 부터 문자가 탄생한 기원전 3300년까지를 다룰 예정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로 대표되는 인간에 대한 라틴어학명을 변주해가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 있다. 1권만 해도 호모 크레안스(기획하는 인간)부터 시작해 호모 렐리기오수스(종교적 인간)까지 14개의 라틴어학명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인간적 특징으로 생각하는 요소가 처음 등장한 시점을 다루며 그 의미를 음미해간다.

예를 들어 인간이 미술 활동을 처음시작한 시기가 언제일까. 인류 최초의 예술조각으로 간주되는 ‘라 로슈코타 얼굴형상’은 3만5000년 전경에 제작됐다. 프랑스 중서부 라 로슈코타 동굴 입구서 발견된 얼굴 형상의 돌조각이다. 독일 홀레펠스 동굴에서 발굴된 ‘홀레펠스 비너스상’은 3만5000년~3만3000년 전 매머드 상아에 조각된 것으로 밝혀졌다. 고고학적 연구결과만 놓고 보면 그림은 조각보다 늦다.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로 알려진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가 그려진 시점이 3만2000년~2만3000년 전 사이로 추정된다. 책에서 호모 스칼펜스(조각하는 인간)가 호모 핑겐스(그림 그리는 인간)보다 앞에 소개되는 이유다.

배 교수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한 인간적 요소는 따로 있다. 호모 베네볼루스(배려하는 인간), 호모 스피리투알리스(영적인 인간), 호모 콘템플라스(묵상하는 인간), 호모 코무니칸스(더불어 사는 인간)이다.

“인간 본성의 핵심은 리처드 도킨슨(‘이기적 유전자’를 쓴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 주장하는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이타적 유전자’에 있습니다. 그것은 본능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입니다. 저는 이를 ‘신적인 유전자’라고 부릅니다. 횃불을 들고 홀연히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 들어간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의 심연 깊이 숨겨진 그것을 발견하고 다른 호모 사피엔스와 공유해 이를 발현시키면서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인간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배 교수의 책은 따뜻하다. 공감과 배려, 희생과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적 요소이며 인간의 여정이 위대한 이유라고 설파한다. 그래서 배 교수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온화한 현자(賢者)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그는 인문정신으로 무장한 투사(鬪士)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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