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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호주 소년병 론 캐시맨의 인생유전

“나는 자랑스런 ‘가평대대’ 용사, 내 삶은 무너졌지만 후회는 없다”

  • 글: 윤필립 재(在)호주 시인 phillipsyd@naver.com

한국전 호주 소년병 론 캐시맨의 인생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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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에 뛰어든 열여덟 살 호주 소년 론 캐시맨. 2년 동안 치열한 전투를 치러낸 그는 참혹한 전장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해 40년을 폐인처럼 살았다. 정신병원을 드나들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그는, 아픈 기억을 마령산 안개 너머로 내던지는 최면요법을 통해 정상인으로 돌아왔다. 2003년, 꼭 50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옛 전우들과 마령산에 올라 가슴 가득 아침 안개를 들이마셨다.
한국전 호주 소년병 론 캐시맨의 인생유전

1951년 10월 마령산전투에 투입된 론 캐시맨.

50여년 전, 전쟁영웅을 꿈꾸며 자란 호주 소년이 있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즈음이라 전쟁터에서 돌아온 귀환병사들이 온갖 무용담을 퍼뜨리고 있었다. 멜버른의 노동자마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은 명문교인 멜버른 보이스 하이스쿨에 입학해 공부했다. 소년은 전쟁영웅이 되는 것만이 진정한 남자가 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1950년 6월25일, 17세 소년은 나라 이름도 처음 듣는 ‘코리아’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얼마 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을 침략한 공산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한국에 파병할 병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소년은 그 길로 달려가 지원서를 냈다.

그러나 나이 제한에 걸리고 말았다. 만 18세 이상이라야 입대가 가능했다. 소년은 나이를 채우려 4개월을 더 기다린 끝에 군에 입대했고, 다시 1년 가까이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받았다.

전쟁영웅이 되겠다는 열망 때문이었을까. 소년은 군사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전쟁터로 떠났다. 멜버른→시드니→다윈→괌→마닐라→하라무라 군사학교(일본)→김포→연천→마령산으로 이어지는 대장정이었다. 전쟁터로 향하는 소년의 포부는 아주 단순했다.

한국전 호주 소년병 론 캐시맨의 인생유전

그로부터 53년 후인 지난 7월, 자택 서재에서 포즈를 취한 론.

“내가 원하는 바는 소총수가 되어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는 것이다(All I wanted to be was a rifleman fighting the Communists in Korea).”

전쟁터에서 정신병동으로

1951년 9월, 소년이 도착한 경기도 연천 북방의 마령산에는 호주 육군 제3대대가 주둔해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소년은 부대에 배치된 바로 다음날, B중대 6소대 소총수로 마령산에서 약 3㎞ 떨어진 고왕산(355고지)전투에 투입됐다. 소년은 아직 열아홉 살에서 몇달이 모자란 틴에이저였다.

전투는 주로 밤에 벌어졌다. 낮에는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 때문에 중공군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국의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소년 신병은 캄캄한 소로를 걸어가면서 몇 번이나 계곡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후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그는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세 번이나 큰 부상을 당해 후송됐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대원이 60여명인 6소대에서 2년간 전사 또는 실종자 수가 꼭 60명이었으니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1953년 7월27일, 종전도 아닌 휴전으로 전쟁은 끝났다. 그는 절체절명에 빠진 전우들을 목숨걸고 구해낸 공적으로 사병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서훈인 무공훈장(Military Medal)을 받았다. 마침내 그토록 소망하던 전쟁영웅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을 때 소년은 20세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수없이 맞닥뜨린 삶과 죽음의 기로는 그후 무려 40년 동안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정신세계를 파괴했다.

정신적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주로 참혹한 전쟁을 겪은 참전용사들에게 나타나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죄의식과 공포감이 시도 때도 없이 악몽처럼 나타나는 마음의 병이다. 그는 이 병 때문에 인생의 대부분을 정신병동을 드나들며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최면요법을 사용하는 노(老)의사를 만나 아주 특별한 치료를 받게 됐다. 그리고 기적처럼 회복됐다. 완치됐을 때 그의 나이는 예순을 넘어서 있었다.

그처럼 고통스런 삶을 살았지만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40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옛 3대대 전우들을 만났고, 5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함께 전투를 치른 한국인 전우들도 만났다. 중국으로 날아가 한국전쟁 당시 적으로 총부리를 겨누던 이들과도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 또한 무너져내린 생의 잔해들을 주워모아 개인적인 전사(戰史)를 기록했고, 투병기를 써 아직도 질곡을 헤매고 있는 전우들에게 들려줬다.

로널드 케네스 캐시맨(Ronald Ke- nneth Cashman). 대개 론 캐시맨으로 불리는 상처받은 전쟁영웅의 정식 이름이다.

필자는 해마다 4월23일에 열리는 ‘가평 퍼레이드’를 참관하기 위해 시드니 근교에 위치한 호주 육군 제3대대(일명 가평대대)를 찾았다. 가평 퍼레이드는 1951년 4월23∼24일 이틀 동안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를 막아낸 가평전투를 기념하는 행사로 지난 50여년 동안 이어졌다.

“죽창과 곡괭이를 든 중공군들이 우리 참호를 향해 달려옵니다. 나는 총을 쏘면서 달아나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요. 마구 소리지르다 땀에 흠뻑 젖어 잠을 깨면 아내가 물 한잔을 가져다 줍니다.”

악몽에서 깨어나는 시간은 대개 새벽 2~3시경. 아내가 가져온 물을 마시고 프랭크는 거실로 나가 밤을 지새운다. 이틀밤을 꼬박 지새우며 싸운 가평전투에서처럼.

참전용사 프랭크가 이렇게 고통을 털어놓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얘기를 듣고 있던 에디 라이트(71)씨가 “그런 증상이 아직도 계속되면 곤란한데….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해. 혹시 론 캐시맨 얘기 못 들었냐?”며 최근 소식을 전했다. 론 캐시맨의 이야기는 ‘능선에서 얼쩡대지 마(Keep off The Skyline)’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고, TV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져 곧 방영될 예정이라고 했다. 방송에는 50년 만에 만난 한국인 전우들의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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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필립 재(在)호주 시인 phillips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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