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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30만통의 사랑편지로 바꾼 오아볼로

“10년만 해보자. 안 되면 그때 죽자, 했지요”

  • 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30만통의 사랑편지로 바꾼 오아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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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러지고 다시 붙고 부러지고 또 붙는 제 몸의 뼈를 수습하며 50여년을 산 사내가 있다.
  • 1m도 안 되는 작은 키, 7년째 집안에 갇혀 사는 신세. 이름 오규근. 그러나 고통에 이력이 난 이 남자의 표정은 불가사의할 만큼 환했다. 그의 웃음은 온 동네를 감염시키는 전염병이다.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30만통의 사랑편지로 바꾼 오아볼로
서울 응암동은 사랑의 동네다. 오거리 약국 안 골목은 사랑의 골목이다. 수박가게 아저씨는 괜히 벙긋벙긋 웃는다. 이불집 아줌마는 모르는 사람에게 연신 활활 부채질을 해준다. 옆집에 손님이 오면 신이 나서 냉커피를 타들고 달려가는 할머니도 있다. 그 골목 안 깊숙이 ‘사랑의 전도사’ 오아볼로씨가 산다. 방 둘, 부엌 겸 거실 하나와 화장실이 있는 열 평짜리 다세대 주택. 여기가 바로 사랑의 진원지다. 웃음과 기쁨이 넘쳐나 점점 번져나가는 진앙은 아블로씨의 안방이다. 동네 애기들이 찾아와 아블로씨 침대 곁에서 깔깔 웃고, 퇴근한 가장도 이 집 윗목에 엉덩이를 내려놓고 하루의 피로를 풀어낸다.

오아볼로씨는 7년째 방안에만 갇혀 산다. 아니 ‘갇혀’라고 말하는 건 틀리다. 외출하지 못하지만 갇혀 있는 건 아니다. 외려 세상 모든 사람을 향해 열려 있다. 날마다 그는 백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최근에는 우표값이 없어 쉰 사람으로 줄였지만 지금껏 30만통 이상의 편지를 썼다. 그 편지를 받은 이들이 다시 아블로씨에게 답장을 하니 그가 방안에 갇혀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서울 은평구 응암3동 351-21번지. 오아볼로 전도사에게 배달되는 편지는 매일 수북한 더미를 이룬다. 인쇄된 글씨체가 범람하는 시대에 손으로 쓴 펜글씨 자체가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 봉투 더미에서 나는 재미난 구절 하나를 발견했다. 재미? 아니 눈시울이 시큰하다는 편이 옳겠다. 주소가 청송군 진보면 사서함인 걸 보면 아마 거기 보호감호소에 머무는 인가 보다. 응암동 좁은 골목은 비가 오면 미끄럽다. 겉봉에 “우체부 아저씨, 빗길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세요!”라고 서툰 글씨로 쓰여 있다.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는 말, 이런 간절한 마음을 멀리 청송까지 전염시킨 ‘주범’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오아볼로씨일 것이다.

그가 받은 답장은 온갖 종류의 고민이 다 모인 근심 백화점이다. 취직을 못해 자살을 꾀하는 청년, 주변사람에게 원망이 가득 찬 말기 암환자, 이혼 위기를 맞은 부부, 과도한 체중으로 고민하는 여고생, 이유 없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주부, 감옥에 갇힌 재소자, 탈영을 꿈꾸던 군인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인생을 전환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저는 오늘 운동시간에 햇볕을 쬐며 평소에는 못 느끼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느꼈어요. 삶의 작은 것에서 영감을 느끼지 못하면 변화할 수 없다는 전도사님의 말씀을 생각했어요. 마음을 낮추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들여다보니 방안의 거미나 모기에게서도 생동감과 생명의 소중함이 느껴졌어요.”(아까 ‘빗길 조심하라’고 쓴, 보호감호중인 소년)

“저 같은 죄인에게 편지 주셔서 감사해요. 사람이란 마음 쓰기에 따라 하는 말과 쓰는 글이 달라진다는 말씀 잘 들었어요. 저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면서 찾아오는 사람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예쁜 꽃도 피우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재소자)

“항상 남의 불행을 보고서야 나의 행복을 확인하는 어리석음과, 사지 멀쩡함에도 감사보다는 불평불만이 많았던 내 자신을 반성합니다. 내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우표를 보냅니다.”(우울증 주부)

“저는 자신도 속이고 전세계 사람을 다 속였어요. 제 인생을 진짜로 밑바닥까지 떨어뜨릴 수 있어요. 기도하면서도 만날 울어요. 도와주세요. 그렇다고 제가 사람을 죽인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어느 귀여운 사춘기 소녀)

벙실벙실 눈부신 웃음

그는 올해 쉰셋의 남자다. 걷기는커녕 일어서지도 못한다. 태어난 지 사흘만에 이름도 모르는 병을 얻었다. 뼈가 이유 없이 툭툭 부러지는 병이다. 그러니 고통은 그만두고 제대로 자랄 수가 없었다. 키가 1m도 채 안 된다. 부러지고 다시 붙고 부러지고 또 붙고 하는 제 몸의 뼈를 수습하며 50년 이상 견뎌왔다.

고통에 이력이 난 사람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불가사의할 만큼 환했다. 그의 삶을 이야기하려는 지금 나는 자꾸만 쑥스럽고 무색하다. 악수를 나눈 직후 그는 “믿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부족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일부러 한 말이 아니라는 건 척 봐도 안다.

부족함이 없다고? 세상 사람의 80퍼센트는 그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가졌을 텐데 나는 그보다 만족한 웃음을 띠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들 힘겹고 괴롭고 억울하고 마땅찮다고 불만족을 호소할 때 어쩌자고 양다리가 다 망가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이 불만이 없다고 고백하는가. 그의 얼굴에 가득 찬 벙실벙실한 웃음이 눈부셔 나는 한동안 쩔쩔맸다.

그는 감자 한 알을 앞에 두고 세상 최고의 음식인 듯 오랫동안 감사기도를 했다. 태도와 표정이 감자 한 알을 하늘에 올릴 듯 열렬했다. 기도가 끝나면 감자는 이미 감자가 아닐지도 몰랐다. 눈앞의 음식을 우주의 정기가 다 모인 귀한 음식으로 변화시키는 기도였다. 보고 있는 사이 크리스천이 아닌 내게까지 절로 기도의 힘이 느껴졌다. ‘정성이 하늘에 닿는다’는 말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긴 기도였다. 기도가 끝난 후 그는 “정말 맛있어요” 하며 황홀한 표정으로 감자를 먹었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 나는 가슴이 뻐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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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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