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태풍의 눈’ NSC 고위관계자의 작심 토로

“내가 ‘대통령 지침’ 챙기고 있지, 나라 팔아먹고 있습니까”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4-09-22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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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정부 일각의 용산협상 비판, 지나치게 파괴적·적대적
    • 올초 ‘부적절한 발언’ 파문, 실체는 따로 있다
    • 롤리스 美 국방 부차관보 ‘국내언론 인터뷰 사건’은 노회한 협상전술
    • 예전 외교부 조약국 사람들? 인내심으로 참고 있을 뿐
    • 주한미군 해외출병 사전협의제, 오히려 통로 될 수도
    • 조기해결 어려운 북핵문제, 안고 사는 법 배워야
    • 내가 외교부·국방부 인사개입 했다면 벌써 난리 났을 것
    ‘태풍의 눈’ NSC 고위관계자의 작심 토로
    그는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말은 빠르고 목소리는 높았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모두 쏟아놓기로 작심한 듯 어느 대목에서는 놀랄 만큼 아슬아슬한 단어를 쓰기도 했다. 익명이 주는 자유로움이었을까. 그의 캐릭터를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신동아’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몇 차례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른바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문제’가 세간의 도마에 오르기 시작한 시점, 주한미군 감축문제가 불거지면서 안보논란이 불붙던 시점 등이었다. 그러나 그는 매번 할 듯 말 듯 고민하다 결국 거절했다.

    이번에 인터뷰를 제의하면서도 가능성은 반반이라 생각했다. 외교안보라인 체제변화 등 민감한 이슈가 많았기 때문이다. NSC측은 두 개의 옵션을 붙여 역(逆)제안을 해왔다. 실명 대신 ‘NSC 고위관계자’로 처리하며, 9월21일 최종서명을 앞두고 있는 용산기지 이전협상 문제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것이었다.

    당혹스러운 제안이었다. “아무리 익명이라 해도 기사를 보면 누구인지 뻔히 알 수 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설득했지만, “언제까지 내가 이 자리에 있을지는 모르나 있는 동안에는 실명으로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그의 입장은 끝내 바뀌지 않았다.

    편집실은 고심 끝에 그가 내건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와의 인터뷰가 핵심적인 안보현안과 NSC를 비롯한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적지않은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장문의 단독 익명 인터뷰는 이렇게 결정됐다.



    ‘집착할 게 없는 자리’

    ‘신동아’가 공식요청서를 보낸 지 나흘 만인 9월12일 서울의 한 호텔 음식점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비가 우중충하게 내리는 일요일이었지만, 아침부터 회의에 참석했다는 그는 약속시간에 15분 가량 늦었다. 인터뷰 자리에는 NSC 전략기획실 소속 홍보담당관과 용산기지 문제를 담당한 정책조정실 소속 임인수 대령이 배석했다. 인터뷰는 당초 두 시간이었던 예정시간을 넘겨 세 시간 가량 진행됐다.

    -일요일 아침인데 너무 바쁜 것 아닙니까.

    “일요일에도 오후에는 거의 출근하는 편이에요. 직원들 생각해서 안 나오려고 애쓰는데 그게 잘 안돼요. 요즘 일도 워낙 많아요. 고구려사, IAEA(국제원자력기구) 문제, 정상회담…. 예전에는 무슨 일이 터지면 이게 NSC 업무인지 판단의 여지가 있었는데, 이제는 일이 터지면 모두 NSC로 들고 와요. 요즘만큼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절감한 시절이 없어요. 그런데 외교안보 이슈라는 게 공기랑 비슷해서, 잘한다는 칭찬은 없지만 문제가 되면 공격이 쏟아지잖아요.”

    갑자기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폭발’ ‘양강도’ ‘구름’ 같은 말들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오전부터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북한 양강도 김형직군(郡) 폭발첩보와 관련된 통화인 듯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이면 인터뷰하기로 한 날이 세계적인 뉴스가 터진 날이었다. 이후에도 그의 휴대폰은 몇 차례 더 울려댔다. 아예 꺼놓을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보시면 알겠지만 이건 바쁜 정도가 아니라 명줄 짧아질까봐 (자리에) 못 앉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정리하고 내려오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농담을 던지자) 그러게 말이에요. 정말 희망의 소리예요. 어떤 사람들은 내가 자리에 집착한다고 생각하는데 집착할 게 없는 자리예요, 이 자리가.”

    참여정부는 혁명정부 아니다

    -우선 용산기지 이전협상의 결과에 대한 총평으로 인터뷰를 시작해볼까요.

    “주어진 역량과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봅니다. 우리가 보기에 비합리적인, 아주 근본주의적인 주장을 제외하면 최선을 다했어요. 이전비용을 미국이 물어야 한다는 것 같은 사항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건 1990년 양해각서·합의각서(MOU·MOA)에서 이미 한국정부가 확인해준 사항이거든요. 대체로 만족합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이전비용 부담문제, 즉 한국이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모두 부담한다는 원칙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까.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의 GPR(해외주둔군배치재검토)과 관련해 진행되는 측면이 있는데, 우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는 이유만으로 전액을 부담한다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됩니다. 약속은 중요한 것 아닙니까. 비록 그 약속을 참여정부가 한 것은 아니지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거듭거듭 확인해준 겁니다. 2002년에도 미군이 아파트문제 때문에 안 나가면 안되냐고 묻는 걸 우리가 그래도 나가라고 했어요. 참여정부가 이전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든 정부는 연속성이 있으므로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최근 불거진 핵물질 추출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깨끗합니다, 이건 다 전 정부가 해놓은 잘못입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건 정부가 아니에요. 참여정부가 혁명정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과거에 어떤 독재가 있었건, 어떤 영웅심리에 의해 어떤 정책이 결정됐든 간에 그것을 모두 승계받아서 개선해나가고 동티 안 나게 관리해나가는 것이 정부의 할 일입니다.”

    -비용부담 원칙에 대해 새로운 논의를 해보자는 얘기는 한번도 미국측에 제기한 적이 없다는 건가요.

    “할 수 있었다면 우리가 왜 안 했겠습니까. 그건 떼쓰는 거예요. 국제사회에서 누가 인정하겠어요? 외부에서는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겁니다. 우리라고 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애초부터 목표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었지 비용부담을 나눠 갖자는 것은 아니었어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작년 11월 민정수석실의 조사

    -이후에 용산 문제가 수면으로 급부상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기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민정수석실의 조사 얘기요? 내가 아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청구권·영업손실 배상문제, 연합작전능력과 관련된 비용 가중문제 등등 당시 민정에서 지적한 부분은 이미 우리가 하나하나 다 따지고 보완하고 대비책을 만들어서 협상에 반영했습니다. 대신 미국측은 엄청나게 불만스러워했지만 말입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해 11월11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이전협상을 담당하고 있던 외교부 북미국과 국방부 정책실, 주요지침을 마련했던 NSC 사무처 관계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협상의 진행방향과 협상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외교부 조약국 등 정부 일각의 비판에 따른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불거진 외교안보라인에서의 파열음은 결국 올해 초 이른바 ‘부적절한 파문’의 진앙이 되어 윤영관 장관이 경질되고 북미국 관계자들이 인사조치되는 사태에 이른 바 있다(자세한 내용은 ‘신동아’ 2004년 2월호 ‘외교부 핵폭풍 막전막후’ 기사 참조).

    “민정에서 제기한 문제 가운데 협상자세에 관한 부분을 봅시다. 우리측 대표단이 협상 자리에서 1990년 합의문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거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문제’라고 이야기했다는 건데, 나는 솔직히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협상을 하다 보면 이렇게 얘기했을 수는 있겠죠. ‘우리가 과거에 했던 것을 깡그리 다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우리 나름대로 고칠 것은…’ 이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이런 말이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실제 협상에서 어떻게 결과가 나왔는지가 중요하지.

    문제는 이 과정에서 협상팀이 많은 오해와 논란에 휩싸였다는 점입니다. 정부와 청와대 일각, 시민단체가 협상팀을 강하게 압박했죠. 물론 이러한 비판이 협상을 보다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측면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비판이 너무 적대적이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파괴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시민단체는 국민감사를 청구하면서 ‘NSC가 대통령에게 허위보고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국민감사 결과까지 대통령에게 보고했어요.

    서로 알 만한 사람들끼리, 아무리 비판을 하더라도 지켜야 할 예의는 있는 겁니다. 누가 그걸 허위보고를 하겠어요, 그래서 뭐가 해결된다고. 문제를 제기한 조약국측도 구체적인 대안을 들고 온 건 아니예요.

    운동선수가 대회를 1년 앞두고 준비할 때도 다 훈련 스케줄이 있습니다. 내 머릿속에서는 3개월 뒤에 할 운동인데 밖에서는 ‘저놈들 저거 안 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 하면 ‘저 봐라 나 때문에 한다’고 하죠. 어떤 쟁점을 9월에 이야기할 건지 11월에 이야기할 건지는 말 그대로 일정문제였어요. 민정에서의 조사가 끝난 뒤에 대통령님이 ‘그래도 NSC가 추진해온 방향이 옳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지금도 용산기지 협상이 내 손에 맡겨져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왜 인간 자체를 깔아뭉개나”

    -그렇지만 이미 지난해 가을 무렵 상당부분 합의가 이뤄졌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협상 주요 관계자들이 공식석상에서 “대부분의 사안에서 합의가 이뤄졌고 문구정리 정도만 남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에 미국이 우리에게 제시한 초안이 있었는데 그게 밖으로 새나가서 마치 합의안인 것처럼 유포됐어요. 작년에 북핵문제, 파병, 주한미군 감축 등 큰 문제가 많았다 보니 용산기지 이전이 FOTA(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에서 주요한 이슈로 떠오른 건 9~10월 무렵이나 돼서였어요. 그동안에도 NSC에서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내가 나서서 문구 하나하나까지 따져가며 들여다본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그 전까지 가장 큰 쟁점은 연합사·유엔사가 잔류하느냐 여부였지 구체적인 합의문구가 아니었어요. 대략적인 합의라는 건 그걸 말하는 거겠죠. 8월까지는 잔류부지가 15만 몇 천 평이 될 거라고 보고를 받았고 국민들한테도 그렇게 설명했는데 9월 들어서 미국측이 갑자기 28만평을 잔류하겠다고 나선 거예요. ‘실무자들끼리 어떻게 얘기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공식적으로 15만평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는 거였죠.

    ‘태풍의 눈’ NSC 고위관계자의 작심 토로

    용산기지 이전 협상문안에 대한 가서명이 이뤄진 8월20일 11차 FOTA 직후 안광찬 국방부 정책실장(오른쪽)과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8만평이면 용산기지 전체의 3분의 1이 남는 건데 그걸 국민들한테 어떻게 납득시키겠어요. 깜짝 놀라서 그 때부터 들여다본 거예요. 한동안 계속 밀고 당기다가 11월에 이르러 미국이 ‘그럼 아예 연합사고 유엔사고 다 내려가겠다’고 했던 거죠. 가장 큰 문제가 그때까지 합의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협상이 대부분 타결되고 비용문제가 논의됐겠습니까.”

    -올해 초 터져나온 이른바 ‘부적절한 발언’해 파문이 본래는 몇몇 외교부 직원이 지난해 가을 초입 이전협상에 문제점이 있다고 청와대에 보고하면서 촉발된 것임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초기에 그렇듯 신호가 울렸을 때 민감하게 파악해서 흡수했다면 이후에 큰 사태는 피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부 외교부 직원들의 문제제기가 왜 11월까지 묵살됐느냐는 거죠.

    “아이러니컬한 것은 엉뚱하게도 그 문제가 마치 북미국과 NSC 간의 갈등인 것처럼 비춰졌다는 점입니다. 청와대에 있다가 장관으로 나간 분이 저에게 그러더군요. ‘밖에 나가보니 내가 잘못한 것은 당신이 잘못한 것처럼 돼 있고, 당신이 잘한 건 내가 잘한 것처럼 돼 있더라고.’ 그런 겁니다. 그 문제제기라는 걸 민정에서 보고받았는지 어디서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NSC는 그때 현안에 바빠서 북미국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잘 몰랐어요.”

    -결론적으로 11월의 논란은 아무런 유용성도 없었다는 뜻인가요? 언젠가는 다 논의될 쟁점을 미리 보채가면서 공연히 미리 분란만 일으킨 것이다?

    “분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쨌거나 문제가 지적됐으니까 유용했다고 해야겠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지적이 너무 파괴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이었다는 겁니다. 아시겠지만 주한미군 감축논의를 어느 쪽에서 연기하자고 했느냐를 두고도 논란이 있었죠. 한마디로 우리가 연기하자고 해놓고 미국이 미뤘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건데, 내가 왜 강대국 미국을 두고 거짓말을 하겠어요.

    내가 인생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인간 자체를 뭉뚱그려 깔아뭉개고 부정하는 식의 공격에 누가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기자들도 그렇습니다. 몇몇 기사를 보면 한두 마디 들은 것 가지고 내가 살아온 과정을 깡그리 부정하는 식으로 기사를 써요. 우리 이야기는 듣지도 않아요. 용산기지 문제도 마찬가지였다고 보면 됩니다.”

    NSC의 몫은 버티기

    -반대로 협상 실무부처 관계자들은 작년 가을 이전에 자신들이 알아서 진행하던 무렵에는 협상이 잘 됐는데, NSC가 협상을 주도하기 시작한 후부터 미국측 반응이 영 싸늘해졌고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그래서 협상이 더 악화된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걸 그대로 놔뒀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죠. (웃음) 그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각 부처가 모두 모여서 중지를 모아 협상안을 결정하는 게 현재의 시스템인데 한 사람이 전적으로 결정하거나 콩 놔라 팥 놔라 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가 아닙니다.

    이런 건 있겠죠. 처음에 미국에서 용산과 2사단을 합쳐서 평택에 546만평을 달라고 했다길래 ‘그것 좀 줄일 수 없나요’ 하고 물었더니 국방부에서 이것저것 합치고 해서 312만평 안을 만들어 갖고 왔어요. 우리가 몇 만평으로 줄이라고 지시한 게 아니에요. 부지 규모는 군사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건데 NSC가 무슨 수로 그걸 산정합니까. 한미간 차이를 줄이기 위한 협상전략 아이디어를 내는 수준이지.

    우리가 하는 일은 실무자들이 합의된 것과 위에서 내려온 지침이 일치하는가 점검하는 겁니다. 가만히 놔두면 미국이 협상기술이 뛰어나니까 지침을 관철하기가 어렵잖아요. NSC가 ‘지침이 이거다’라고 강하게 버텨주지 않으면 뒤로 자꾸 밀리는 거예요. 내가 협상팀에게 강도 높게 이야기한 것, ‘이것도 관철시키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해서 문제가 생겼다는 소문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협상팀이 나가서 ‘아 저렇게 의지가 세구나’ 하고 버틸 것 아닙니까.”

    -하지만 세부적인 협상문안을 다듬는 작업도 NSC가 주도한 것은 사실 아닙니까.

    “실무부처가 볼 수 없는 부분은 당연히 우리가 의견을 제시해야죠. C4I센터를 이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도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의혹을 제기했어요. 그것만 수조원이 들어간다는 거였죠. 이전할 때 깨지고 상하는 것에 대한 비용만 우리가 부담하는 거라서 사실 그렇게 들어갈 이유가 없어요. 국방부에 예상액을 뽑아와 보라고 했더니 500만~600만달러 규모라고 합디다. 그래서 내가 ‘그럼 아예 UA(포괄합의서)문안에 ‘1000만달러 이하’라고 금액을 명기해버리자’고 했어요.

    분명히 박아두지 않으면 시민단체에서 ‘그 명목으로 수조원 들어간다’고 공격할 텐데 그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인 비용이 수백만달러 이상 들어갈 판이었으니까요. 각 부처에는 전문지식이 있지만 아무래도 대통령의 시각에서 판단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회적 갈등 같은 부분은 부처에서 판단할 영역이 아니니까 NSC가 해야죠. 그게 바로 조정입니다.”

    -UA 얘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면, 최종합의문을 왜 굳이 UA와 IA(이행합의서)로 분리해야 했는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습니다. 국회동의가 필요한 UA와는 별개로 보고만 하면 되는 SOFA(한미행정협정) 문서인 IA를 따로 만들어 나중에 비용에 관한 민감한 부분을 국회 동의 없이 수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거죠.

    “잡다한 것을 모두 조약문서에 쓸어넣을 수는 없다는 것이 실무부처의 의견이었습니다. 그래서 총론은 조약으로 하고 각론은 보고사항으로 하자고 한 겁니다. 그래도 오해가 그치지 않길래 재정적 부담에 관한 조항은 모두 UA로 올렸어요. 오죽하면 미국측이 ‘너희 정말 하려는 거냐’고 묻기까지 했겠어요.

    참여정부가 능력이 뛰어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속을 하면 지킵니다. 우호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 입장은 충분히 설명합니다. 그건 제 생각이 아니라 대통령의 뜻입니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면서 한미관계를 발전시켜나간다는 거죠. 파병도 그랬듯 정부가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 번복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각이 잡혀가다 보니 지금의 한미관계는 지난해 정부출범 초기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무렵에는 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우리는 예측 가능한 대한민국을 생각했고 협상이 가능한 한미관계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부시 대통령이나 지도부를 만나면 솔직한 얘기도 하고 이견도 제시하지만, 그러나 뒤에서 딴소리 하는 일은 없다는 얘깁니다. 그동안 지켜보면서 미국도 그걸 평가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와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이른바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의 ‘조선일보 인터뷰 사건’이었습니다. 9차 FOTA의 마지막 날이었던 6월8일 협상이 평택 새 기지의 부지규모 문제로 결렬되자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한국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죠.

    “사실 저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나름대로 한국을 다루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겠죠. 우리가 이것저것 따지고 들어가니까 협상력을 재고하기 위해 한번 내질러본 것에 겁먹으면 안 되죠. 한미관계의 여러 면 중 하나일 뿐 동맹을 깨려는 것도 아닌데요. 물론 특정신문에 그런 식으로 내지르는 것이 적정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했죠.

    사실 한미간에 협상다운 협상이 있었던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용산도 용산이지만 파병도 처음에 2000~3000명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일부 신문에서 얼마나 난리를 쳤습니까. 미국도 처음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결국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됐고요. 시민단체에서 이야기하듯 그렇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았습니다.”

    “나를 모욕하지 말라”

    -우여곡절 끝에 7월22일 최종합의가 이뤄졌습니다만 그 구체적인 내역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요, 우선 2사단 이전비용 문제에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전소요를 제기한 용산은 우리가 비용을 부담하지만 미국이 제기한 2사단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었는데, 혹 앞으로 이뤄질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통해서 한국이 2사단 이전비용까지 ‘보전’해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정부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2사단 이전문제를 다루고 있는 LPP(연합토지관리계획)를 합의하면서 아예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고 명시했습니다. 방위비분담금으로 보전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모멸감을 느끼는데, 그건 정말 우리 외교안보팀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거죠. 미국 사람들이 분담금 협상에 임하는 우리 태도를 보고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런 속임수 없습니다. 내가 누굽니까, 내가.

    정부 안에서 그런 얘기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굽니까? 뻔한 사람들이잖아요. 예전 외교부 조약국 스타일, 그런 친구들 아닙니까. 내가 인내심을 갖고 참는 겁니다. 정말 인내심으로 참는 거예요. 그걸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합니까.

    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에 대한 것이지 2사단 이전비용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2사단 이전비용까지 보전해줄 생각을 하고 있다면 롤리스 부차관보가 ‘동맹을 깨뜨리려는 것이냐’는 소리까지 했겠어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입니다. 그 어떤 정부보다 그런 사명감이 막강합니다. 딴 건 몰라도 그건 의심하면 안 돼요. 그건 모욕하는 겁니다. 정말 모욕적인 발언이에요.”

    -이외에도 1990년 합의에 비해 개악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조항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90년 합의문에 새 기지의 미군시설 수준이 ‘저하되지 않는다(no degradation)’고 표현되어 있던 것이 이번에 체결된 합의문에는 ‘유지 혹은 향상(maintain/enhance)’이라고 규정되어 있다든가, 청구권이나 영업손상에 대한 배상책임을 한국이 지는 독소조항은 삭제되었지만 ‘기타비용(other expenses)’을 한국이 부담하게 되어 결국은 배상문제도 한국이 떠안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등등인데요.

    “새 합의문은 그 모든 걸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만든 겁니다. 단어 하나 그냥 넘어간 게 없어요. 위성락 조정관이나 임인수 대령이 현장에서 점검하고 다 보고합니다. 지금 한미관계에서 용어 하나 때문에 돈 몇 억달러가 왔다갔다하도록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선언적 명제 위에 있는 용어와 구체적인 비용계산을 구별할 줄 알아야죠. 그런 식으로 의심하면 대한민국 헌법도 다 고쳐야 돼요.

    ‘향상’이라는 용어가 추상적인 원칙으로 들어갔다고 구체적으로 뭘 향상시키는 겁니까. 그거 아니에요. 그럼 지금이 13년 전에 비해 향상됐지 안 됐겠어요? ‘향상’이라는 말 안 쓸 수도 있지만 그러면 미국측이 ‘새 기지 엉터리로 지어주려고 이런다’고 나오니까 그냥 쓴 겁니다. 그거 현실적으로 대세에 영향을 못 줍니다. 밖에서 비판만 하던 사람들이 지적할 게 없으니까 그런 것까지 잡으려고 드는 거예요. 누가 그러는지 이제 내가 다 알아요. 그만 좀 하라 이겁니다. 그만큼 협상팀을 숨가쁘게 했으면 이제는 그만하면 수고했다고 해줄 만도 한데 여전히 최악이고 개악이라고 한다잖아요.

    왜 다들 우리나라의 역량을 무시하는 거예요? 군 관계자들 이야기? 정말 나중에 나한테 군 이야기 들어볼래요? NLL 이야기가 진짜 어떤 이야기인지 한번 들어볼래요? (한숨을 내쉬며) 내가 지금은 다 못하고, 훗날 할게요, 그때도 내 기억에 남으면. 안보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기억에서 지우는 게 제일 좋은 거라는데, 나는 속병이 날 판이에요. 내가 그렇게 많이 얻어 맞았어요. 내가 지금 나라 팔아먹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왜 그걸 몰라줍니까.”

    -조금 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사실 2사단과 용산기지가 평택으로 통합되는 것은 한미동맹의 성격변화와 긴밀히 연동되어 있습니다. 주한미군이 동북아의 지역분쟁에 개입하는 지역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고 평택이 그 거점이 되는 거죠. 가장 큰 문제는 그에 대한 중국의 반응과 경계심일 겁니다. 한국정부는 이에 대해 어떤 복안을 갖고 있습니까.

    용산기지 이전협상 문제가 지난 한해 한국의 외교안보라인을 가로지른 핫이슈였음은 분명하지만, 어렵사리 인터뷰 자리에 끌어낸 그에게 현안이나 관심이 집중된 문제에 대해 묻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용산기지 문제를 설명할 때 놀랄 만큼 강했던 어조는 주제가 바뀌자 다소 평정을 되찾는 것 같았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밖에도 투입될 수 있다는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대세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이제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 세계 어느 곳으로도 군대를 보낼 수 있도록 바꿔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이 붙박이로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었을 겁니다. 이제 세상은 변했고 우리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원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물론 대단히 어렵고 민감한 문젭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 전쟁에 투입되는 경우에는 한국과 사전에 협의해달라는 ‘사전협의제도’를 우리가 먼저 제안해놓고도 신중을 기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전협의제가 오히려 통로를 열어주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공식적인 답변은, 정말 신중하고 예민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고 검토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동안 이라크 파병이나 김선일 사건, 심지어 용산기지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 관계자들과 NSC의 설명은 ‘북핵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걸 위해서 다른 부분은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거였죠. 그런데 문제는 그 ‘북핵 올인’의 성과가 가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음 6자회담의 전망은 최근 들어 더욱 불투명해졌고요. 이 때문에 NSC의 위상이 급격히 약화되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NSC 혼자서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NSC가 모든 일을 다 한다고 오해하는데, 부처간에 조율이 이뤄지고 지침이 마련되면 사안은 각 부처로 넘어갑니다. 북핵문제의 경우에는 지난해에 이미 방향이 설정되어 중반쯤에 세팅이 끝났습니다. 외교부 이수혁 차관보가 주축이 되어 이끌어 가는 거죠. 이 차관보와 내 견해가 달라서 마찰을 빚거나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내가 한두 마디 아이디어를 줄 수는 있겠지만.

    북핵문제는 오래갈 겁니다. 왜 병치레가 많은 사람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고 하잖아요. 제가 NSC에 들어와 일하면서 느낀 것 하나가 어떤 문제는 영원히 해결이 안 되거나 오랜 시일이 걸리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이걸 억지로 빨리 고치겠다고 밀어붙이면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이 길게 걸릴 수 있는 문제를 짧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NSC가 지난해에 북핵에 올인하다시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상황이 악화되지 않고 현 상태에서 관리되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닙니까. 능력이 부족했다고 질타한다면 할말은 없어도 나름대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초에는 앞이 안 보였다”

    -일각에서는 북핵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는 설도 나왔고요. 올해 들어 정상회담과 관련해서 북측과 접촉한 적이 있습니까.

    “그거 너무 조바심 내지 마세요. (웃음) 한번도 접촉한 적 없습니다.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마찬가지예요. 공부할 때 보면 내가 열심히 하는 줄 아는 건 열심히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저 재미있어서 차근차근 하다 보면 성적이 올라 있는 거죠. 정상회담도 마찬가집니다. 오늘 기획해서 내일 북한에 던지고 하는 그런 식이 아니거든요. 이 단계에서 필요한 조치가 뭔지 나침반을 보고 따라가는 것뿐입니다.

    작년 초에는 정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엄청난 이슈들이 쏟아지는데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하반기에 이르니까 눈앞이 조금 걷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원래 생각했던 방향과 전략을 꾸준히 밀고 나가다 보면 어느 날 결과물이 나오는 거지, 내공도 없이 갑자기 욕심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꾸준히 나가다 보면 결과가 있을 겁니다.”

    -국민의 정부에 비해 대북 유화 제스처를 훨씬 많이 취했는데도 북한의 반응은 오히려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정부가 ‘북한은 이미 소멸해가는 체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고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들어온 이후에 북한에 대한 인식을 얘기한 적이 없을 겁니다. 우리는 북한에 이걸 줄 테니 저걸 내놓으라고 한 적이 없어요. 대신 인도적인 문제는 별개죠. 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당혹스럽기는 할 겁니다. 줄 것은 주지만, 인도적인 일이 북한 입장에서 자극이 될 수 있다고 해서 피하지는 않거든요. 물론 꼬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죠. 우리 현실에서 김일성 사망 10주기라고 조문을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국민의 정부 때도 6·15 정상회담이 있었는가 하면 서해교전도 있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진폭이 관리되고 있어요. 우리가 즉자적으로 대응하지 않거든요. 참여정부는 북한에 해주지 못할 약속을 하지는 않아요. 북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가 북한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북한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우리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이야기지, 대한민국 국가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대꾸도 안 하죠.”

    -NSC가 여러 곳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온 지 꽤 됐습니다. 보수, 진보, 실무부처, 심지어 청와대 일각과 여당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이른바 정동영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을 맡게 된 것에도 그러한 비판이 누적되면서 NSC의 힘이 떨어진 까닭 아니냐는 분석도 있고요.

    “그나마 요즘은 비판의 강도가 좀 약해졌어요. 권력을 잡아본 적이 없는데 힘이 떨어졌다는 건 우스운 이야기고…. NSC 자체가 상임위원장이 바뀐다고 크게 뭘 바꿔야 하는 시스템은 아니죠. 다만 장관을 보좌해야 하는 임무가 새로 주어진 거죠.

    NSC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지만, 그건 누가 어느 자리에 가느냐 마느냐 같은 소문에 의해 이뤄지면 안 된다고 봐요. 결국은 주요 안보 이슈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그 결과로 평가가 이뤄질 겁니다. IAEA 문제만 해도 정부가 미숙하게 대응했다고 하는 언론이 있지만, 한번 해보실래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웃음) 오늘도 두 시간 넘게 같이 앉아서 지혜를 짰습니다. 과기부와 외교부가 실시간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고요. 그 시스템 만들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NSC에서 작성하기 전까지는 대한민국에 평시 위기관리지침 하나 없었어요. 우리가 한 일은 모두 무시하고 말만 문제삼으면 안 되죠.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져도 소용없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획하고 준비해서 대응해야지 바짓가랑이 잡는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미국은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 거죠.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보다는 내 나라에 대한 사랑과 긍지, 애국심을 갖고 방어선에 서는 군대가 강한 군대다’ 이 말 어디에 문제가 있습니까.

    ‘아마추어리즘’과 ‘무늬만 자주파’

    우리가 지금 양쪽에 끼여 있습니다. 용산 문제만 해도, 부처에서는 ‘한미관계를 어쩌려고 NSC가 저렇게 하나하나 꼼꼼히 따지냐’고 하고,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은 ‘NSC 저놈들마저 이렇게 말아먹는구나’ 생각합니다. 한미관계에서 기존 관성이 남아 있는 부처도 불만이 있는가 하면, 이 문제를 강력하게 풀고 싶어하는 사람들 눈에는 ‘빛깔만 자주파’ ‘무늬만 자주파’로 비치는 거죠.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도 하지만 얘기한다고 생각이 달라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NSC에 대한 인식을 바꾸겠습니까. 그건 이미 이념의 문제입니다. 다만 1년6개월 전부터 지금까지를 쭉 돌아보면 어느 쪽이든 섣불리 ‘아마추어리즘’이나 ‘무늬만 자주파’라는 말로 예단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런가 하면 NSC와 군의 관계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도 NSC가 KIDA(한국국방연구원)와 진행한 남북 군사력 비교에 대해 군 일각에서 강하게 반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고요.

    “보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건 잘 못 보죠. 내가 국방비를 GNP의 3.0% 선으로 올리라고 지난해부터 난리치고 다닌 사람인데, 그건 못 보고 ‘NSC가 국방비 깎으려고 KIDA랑 딴 짓 한다’고 엉뚱한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군사력 비교는 남과 북 사이의 전력을 과학적으로 평가해서 무엇이 모자라는지,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알아보자는 거예요. 그게 국가지도부에 대해 군이 해야 할 일 아닙니까.

    NSC가 하는 일은 대통령의 철학과 의중, 정부가 결정한 지침방향에서 벗어난 것이 없는지 점검하는 겁니다. 그걸 갖고 NSC가 간섭한다고 하면 안 되죠. 아마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점검은 할 겁니다. 제가 만약 국방부나 외교부 인사에 개입했다면 그게 동티가 났지 지금까지 조용할 리가 없죠. NSC에서 만난 사람들, 한동안 자기 동료들과 떨어져서 고생한 사람들 외에 개인적으로 밖에서 알았던 사람이라고 어디에 청탁하거나 했으면 벌써 큰일났을 겁니다.”

    -그렇지만 현재 NSC가 하고 있는 역할이 국가안전보장회의법이나 그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는 범위와 괴리가 있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정동영 장관의 이른바 ‘외교안보팀장’ 기용도 마찬가지고요.

    “백악관 NSC도 법적 구조는 취약합니다. NSC를 확대개편한 것은 국회 국방위원회의 희망사항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고요. 국가안보와 관련해 부처간의 유기적인 통합을 해나가며 대통령을 자문할 수 있는 건 NSC와 사무처밖에 없습니다. 아예 딱 부러진 위법사항이 있다면 모를까 논쟁의 여지가 있는 수준 갖고 자꾸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논의됐던 게 이른바 사무처장 분리 문제인데, 사실 그건 그렇게 하라고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았습니다. 툭하면 월권문제가 나오는 것도 이유가 됐고요. 그런데 국회에 내려고 생각해보니 NSC의 법적 체계 문제를 갖고 야당이나 언론에서 두들기기 시작하면 또 큰 상처를 입을 게 뻔해요. 그래서 제가 7월에 사무처장 분리 안 한다고 해서 특별히 어려워질 것도 없고 대신 손실만 클 것 같으니 이대로 적당히 가다가 내려놓겠다고 보고 드렸어요.

    상임위원장 문제는 그 다음에 결정된 거죠. 정 장관님은 아주 폭이 넓고 국가전략적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분입니다. 또 NSC는 이미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장관님이 오셨다고 해서 어떤 혼선이 있거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만약 있었다면 벌써 새나가서 난리가 났겠죠. 파열음 어쩌고 하면서.”

    -역으로 부담이 경감되는 부분은 있을 것 같습니다.

    “있죠. (웃음) 장관님이 앞에서 막아주니까 저는 정말 실무책임자라는 게 입증된 거고. 마치 제가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처럼 얘기되다가 마침 장관님이 그 부분을 맡아주니까, 이제 일이 이렇게 분리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다만 정책적 판단에 대해 밑에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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