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무료급식소 살리기 위해 15억원 쾌척한 이유종 대순진리회 종무원장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의 종단이 이웃 돕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4-09-23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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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독립문공원의 무료급식소가 퇴출위기를 넘겼다. 동네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쫓겨날 처지에 놓였던 한길봉사회 급식소가 새 둥지를 마련하게 된 것. 딱한 사정을 들은 대순진리회 이유종 종무원장은 “우선 건물이라도 마련하라”며 15억원을 선뜻 내놓았다. 그간 교육·의료사업을 적극 펼쳐온 대순진리회는 최근 들어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에 나서고 있다.
    무료급식소 살리기 위해 15억원 쾌척한 이유종 대순진리회 종무원장
    “정말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긴가민가했어요. 한두 푼도 아니고 15억원이나 기부한다고 하시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죠. 14년 동안 해온 무료급식을 계속할 수 있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지요.”

    9월3일 대순진리회 이유종(李有鍾·66) 종무원장을 인터뷰하러 가는 길에 기자와 동행한 한길봉사회 김종은(56) 회장은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다른 유명인사들은 급식소에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데, 종무원장님은 직접 밥도 퍼주셔서 남다른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큰 도움을 주실 줄은 몰랐다”며 그가 환하게 미소지었다.

    한길봉사회는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독립문소공원에 작은 컨테이너 박스를 세워놓고 14년째 독거노인과 노숙자 등 소외된 이웃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해왔다. 비용은 모두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김 회장의 사재(私財)에서 나왔다. 하지만 지난 3월 서대문구청으로부터 퇴출명령을 받아 봉사활동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공원내 무료급식이 동네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돈이 많다면야 번듯한 무료급식소를 짓지요. 몇 해 전 간신히 마련한 컨테이너 박스가 철거된다면 어디에서 노인 분들께 점심을 대접해드리나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한번은 구청에서 인근 교회를 무료급식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알선해놓았다고 해 기쁜 마음에 찾아갔더니 목사가 ‘신도들이 반대한다’며 거부하더군요. 그러던 중 지난 8월 종무원장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 겁니다.”

    우연히 한길봉사회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이유종 종무원장은 “노인들이 비바람을 피해 식사하고 휴식할 수 있게 조그만 건물이라도 사면 좋겠다”며 한길봉사회에 15억원을 기증했다. 김 회장은 “기증한 액수에 맞춰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에 있는 지상 5층, 지하 1층, 총면적 155평의 번듯한 건물을 매입할 계획”이라며 “지금까지는 점심 한 끼만을 제공했지만 앞으로는 하루 세 끼를 모두 드릴 예정이다. 휴게실과 이발소도 만들어 무의탁 노인들이 편하게 쉬실 수 있는 쉼터로 가꾸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위치한 대순진리회 중곡도장에 도착했다. 기와를 얹은 정문을 지나 도장으로 들어서니 높고 큰 기와집들이 웅장하게 서 있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본당인 영대(靈臺)에서 기도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종무원장실로 들어갔다. 7평 남짓한 사무실 가운데에 테이블이 있고 양쪽으로 오래된 듯 보이는 소파가 놓여 있다.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도 에어컨도 없이 자그마한 선풍기 한 대가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여기까지 찾아오셨냐”며 함박웃음을 짓는 이 종무원장은 순박한 시골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다.

    “한길봉사회 돕는 게 진짜 봉사”

    -15억원이라는 큰돈을 내놓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듯합니다.

    “저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임원들도 다 찬성했고요.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을 종지(宗旨)로 삼는 저희 종단에서는 남을 돕는 일이 아주 당연한 문화입니다.”

    -한길봉사회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10여년 전 우연히 독립문공원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한길봉사회 김종은 회장이 독거노인과 노숙자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더군요. 눈비가 내려도, 날씨가 추워도 들어앉을 곳조차 없이 밖에서 식사를 하는 노인들이 참 안쓰러웠습니다. 그러다 구청의 경고로 한길봉사회의 무료급식소 운영이 위기에 처했다는 언론보도를 보게 되었지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동안 김 회장을 지켜보면서 그가 진정으로 봉사하는 사람이라 느꼈습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노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심지어 장인이 돌아가셨을 때도 상중에 살그머니 나와서 무료급식을 하더이다. 이토록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을 돕지는 못할 망정 쫓아내다니 말이 됩니까. 그래서 이 사람을 도와야겠다, 이것이 진짜 봉사다 생각했지요.”

    김 회장에 따르면 이 종무원장은 오래 전부터 한길봉사회에 지원금을 보낸 것은 물론, 종종 무료급식소를 방문해 노인들에게 밥을 퍼주는 등 직접 봉사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직접 밥을 퍼주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농사꾼 출신인데 뭐가 힘들겠어요? 날씨가 더워서 땀은 좀 흘렸지만. 밥을 푸면서 그런 생각이 들데요. ‘이곳에서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나도 어딘가에 불쌍한 독거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야겠다’는. 무료급식도 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노인사랑방 같은 걸 만들려고 합니다. 대순진리회의 도장이 시작된 곳인 중곡동에 부지도 마련해놓았습니다.”

    그동안 대순진리회는 대진고 등 6개 고등학교와 종합대학인 대진대, 그리고 종합병원을 설립하는 등 교육·의료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그러면서 불우이웃돕기나 의연금 모금 때면 거액을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사회복지사업에 눈을 돌려 특히 노인과 아동복지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2001년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에 위치한 보육시설 ‘여광원’과 중산층 양로원 시설인 ‘골든밸리’를 인수해 직접 운영하기 시작한 것.

    1995년 12월4일 종단의 최고지도자였던 우당 박한경 도전(都典)이 타계한 후 대순진리회 지도자들은 경기도 여주 적금리, 불암리에 7만5000여평의 부지를 매입해 복지시설을 마련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하지만 현지 주민과의 마찰을 우려해 계속 미뤄오던 중에 부도 위기를 맞은 여광복지회를 인수했다. 여광복지회는 대순진리회로 운영이 넘어간 뒤 ‘상생복지회’로 거듭났고 여광원은 ‘우리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 골든밸리 멤버스는 인수 당시 유료양로원이었지만 현재는 무료양로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여주군에 노인여가복지시설인 골든밸리휴양소와 노인의료복지시설인 상생요양원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에는 2000평 규모의 종합사회복지관을 건립,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길봉사회를 돕는 것도 대순진리회 사회복지사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 기죽이지 말라”

    “오래 전부터 도전님의 뜻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었어요. 종단 시작때부터 무료병원을 운영하셨을 정도니까요. 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학원을 지어서 글을 가르치셨고요. 도전님께서는 ‘안주(安住)는 국사사회의 은혜이자 안주에 보은하는 믿음으로, 헌신봉사의 충성으로 사회발전과 공동복리를 도모하고 국민복지시설도 확대 추진해야 할 것’이라는 지침을 마련하셨어요.

    이 지침을 따라 대순진리회의 3대 중요사업도 구호자선사업과 교육사업, 사회복지사업으로 정했습니다. 도전님께서 살아계실 때 교육과 의료사업 기반을 확고하게 마련하셨어요. 그리고 나서 사회복지사업에 눈을 돌리셨죠. 도전님께서 기틀을 닦은 구호자선사업과 교육사업을 꾸준히 진행하는 동시에 이제 첫걸음을 뗀 사회복지사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게 저희의 몫입니다.”

    -아동이나 노인복지에 관심이 각별한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집’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요. 대순진리회가 인수한 후 종교적인 문제로 고아원을 떠난 아이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있지요. 하지만 저희는 종교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나 성당, 절 등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게 합니다. 아예 차까지 준비해놓은 걸요. 우리집 원장도 천주교인입니다(웃음).

    현재는 68명의 아이를 생활지도원 18명이 보살피고 있습니다. 저는 늘 생활지도원들에게 ‘절대 아이들 기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라고 주눅들게 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부분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어요. 처음에 여광원을 찾아갔을 때 마당에 먹음직스런 빨간 앵두가 열려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걸 안 따먹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앵두를 따먹으면 혼난다는 거죠. 기어드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데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절대 기죽이지 말고 기본에서 어긋나지 않는 한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여주군 내에서 청소년 범죄가 일어나면 경찰이 무조건 여광원에 와서 조사를 했다더군요. 하지만 이젠 그런 문제가 싹 사라졌다고 해요. 시설도 대대적으로 바꿨어요. 아이마다 자전거 한 대씩 다 있고 컴퓨터도 많이 갖춰놓았지요. 도서관에도 책이 몇만 권이나 됩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대학까지 보내줄 겁니다. 실제로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한 아이는 대학 보내준다는 얘기를 듣고 열심히 공부해 저번 학기에는 전교 10등 안에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만 해도 성적이 꼴찌에 가까웠던 아이였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보육시설이 좋아진다면 외국으로 입양되는 아이의 수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우리나라는 유아 수출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도 달고 있지 않습니까. 다행히 화목한 집안에 입양되면 좋지만, 나중에 윤락가로 팔려가거나 양부모로부터 학대받는 경우도 많이 있더군요. 이런 부끄러운 일을 막는 데 종교단체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료 양로원 확대할 계획

    -아동 문제뿐 아니라 무의탁 노인 문제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을 쏟아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료 양로원이던 골든밸리 멤버스도 무료 양로원으로 운영하고 계신데요.

    “일부 종교단체가 하는 사회복지사업이 수익 위주로 흘러 본래의 참뜻이 변질되는 것을 보며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양로원을 유료로 운영할 수가 없었어요. 돈을 받고 시설을 제공하는 게 무슨 봉사인가요. 그래서 노인들에게 한푼도 받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무료급식소 살리기 위해 15억원 쾌척한 이유종 대순진리회 종무원장

    이유종 종무원장(오른쪽)과 김종은 회장은 서로 상대방이 진정한 봉사자라고 치켜세운다.

    골든밸리 멤버스는 137개의 특급호텔급 객실 외에도 건강관리센터, 휘트니스센터, 커뮤니티센터, 레스토랑, 연회장, 쇼핑마트, 사우나, 오락센터, 주말농장, 골프연습장, 게이트볼장 등 각종 첨단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어 마치 리조트타운 같다. 또 분당 제생병원을 직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수의 종합병원과 제휴를 맺고 있어 질병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저렴한 가격에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대순진리회는 골든밸리를 인수하는 데 143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였다.

    “골든밸리 멤버스뿐 아니라 무료 양로원을 전국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입니다. 양로원에는 기본적으로 숙식과 휴양시설이 있어야겠고, 직접 농사를 지어 어느 정도 자급자족하려면 농지도 마련해야겠지요. 경로사상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이잖아요. 우리 종단에서도 경로(敬老)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조상을 모시고 노인 존경을 장려하는 저희가 노인복지사업을 펼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서 양로원만큼은 정말 잘해보고 싶습니다. 사실 여기저기 부지도 알아보았어요. 그런데 지역 사람들이 양로원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공사를 못하게 데모하고 그래요. 땅값이 떨어진다는 거지요. 어떤 지역에서는 ‘관광 시설이 들어와야 하는데, 웬 노인정이냐’며 소동을 피더군요. 사람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느 지역에 양로원을 건립할 것인지는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습니다.”

    대순진리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또 다른 사업은 해외에 머물고 있는 한민족을 돕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 이들이야말로 과거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이거나 그 후손들이기 때문. 그럼에도 다른 지역의 교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권 밖에 놓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유종 종무원장은 “이들은 남한이든 북한이든 조국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자신들을 버렸다고 이야기한다”며 “미약하나마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 일환으로 대순진리회는 지난 2000년 국내 종교단체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연해주 농장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연해주 아누치노군 소재 2200만평의 땅을 50년간 장기 임차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 이후 사업을 확대해 현재 연해주 전역에 걸쳐 1억2000만평 규모의 대단위 농장을 인수했다. 고려인들이 최우선으로 농장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대순진리회의 러시아 연해주 농장개발사업이 시작되기까지는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다. 처음 이 사업은 종단 분규 과정에서 이유종 종무원장의 반대편에 선 측에서 추진해왔다. 그러다 종단 내부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러시아에 제공하기로 한 영농비용과 추가비용 지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사업 추진을 대행했던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이 이유종 종무원장측을 간곡히 설득했다.

    무료급식소 살리기 위해 15억원 쾌척한 이유종 대순진리회 종무원장

    한길봉사회 무료급식소에서 독거노인들에게 밥을 퍼주고 있는 이유종 종무원장(위). 무료급식 혜택을 받는 노인들과 함께(아래).

    “연해주 영농사업은 국제농업경영 차원을 넘어선 외교문제였어요. 그 사업이 중단되면 종단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물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악영향을 미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원래 농사꾼 출신이라 그런지 땅을 굉장히 좋아해요. 땅만큼 정직한 게 없거든요. 그래서 영농사업을 재추진하기로 결정하고 2001년 4월 러시아 현지를 방문했어요. 그곳에서 가슴 뭉클한 일을 경험했지요. 고려인들이 동포인 저희가 간다고 하니까 대대적인 환영식을 준비했어요. 그분들이 저희를 보고 얼마나 반가워하셨는지 몰라요. 몇몇 분은 눈물까지 보이셨죠. 또 손수 기른 고사리, 가지나물 등을 선물해주신 분도 계셨고요. 동포의 정을 흠뻑 느끼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몹시 힘들게 사시더라고요. 돈이 없어 비료도, 농기계도 사지 못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동포인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그래서 귀국 후 영농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어요.”

    서울로 돌아온 이유종 종무원장은 답방형식으로 고려인 교포들의 모국방문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고국 땅을 밟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고려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서다. 마침내 2001년 6월 고려인 40여명이 대순진리회의 초청으로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았다.

    “모국이 그렇게 발전하고 있다는데 얼마나 와보고 싶었겠어요. 저희가 초청한다고 해도 거짓말인 줄 알았대요. 고국행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참말이구나’ 했다더군요.”

    무료급식소 살리기 위해 15억원 쾌척한 이유종 대순진리회 종무원장

    러시아 연해주를 방문했을 때 아누치노군 군수, 젬추스니 농장장, 고려인들과 함께(위). 연해주 농장의 보리 재배단지(아래).

    고려인 교포들은 5박6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독립기념관과 경복궁, 용인민속촌 등을 둘러보고 대순진리회 도장과 대진대학교, 분당제생병원 등 종단 산하 기관들을 견학했다. 방문한 고려인 대부분이 농사일을 하는 만큼 국내 농수산물 유통시설을 살펴볼 기회도 마련했다.

    이에 앞서 대순진리회는 1997년 타지키스탄공화국에 사절단을 보내 동포 청소년 30명을 모국에 초청한 바 있다. 이들은 15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조국의 정서를 배워갔다고 한다. 특히 종단 산하 대진대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졌던 이들 청소년들은 헤어질 때 아쉬움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돈독한 사이가 됐다.

    이유종 종무원장은 이때 서로 말은 안 통하지만 똑같이 생긴 이들이 동포의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해외 동포들의 모국 방문을 계속 추진하리라 다짐했다. 당시 타지키스탄 사절단 10명도 함께 초청해 양국간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2001년 5월 연해주에서 첫 수확한 벼 240t을 북한 주민들에게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음해에도 한 차례 더 220t의 벼를 북한에 지원했고요. 북한에 대한 지원은 계속할 계획입니까.

    “당시 법적으로 직접적인 교류가 어려웠기 때문에 러시아에 기증한 후 다시 러시아에서 북한에 지원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연해주에서 북한의 실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죠. 그래서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지금은 중단 상태입니다. 아무리 많은 쌀을 지원해봤자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는 안 가고 배부른 윗사람들에게만 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물론 공식적인 지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북한 주민도 동포인 만큼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생각입니다. 연해주에 머무는 탈북자들을 돕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고려인 최우선으로 배려

    -연해주 영농사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요. 또 농장이 위치한 지역에 고려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까.

    “저희 종단과 계약한 연해주 아누치노군의 젬추스니 농장만 해도 여의도 면적의 20배가 넘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넓은 땅이죠. 하지만 계약할 당시만 해도 자본과 장비가 없어 황무지처럼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지금은 현지 농장이 대순진리회로부터 영농비와 장비를 지원받아 경작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되도록 고려인이 농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어요. 수확량 중 일정량은 저희가 받지만 이를 국내로 들여오는 데는 세금이 과다 부과되는 등 여러 가지 제한이 따릅니다.

    농장 근처에는 고려인 교포 2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여러 가지 여건상 힘겨운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에요. 또 한국어를 모르는 고려인 2∼3세를 위해 한국어 학원을 세우고 장기적으로는 이곳 노인들과 아이들을 위한 양로원, 고아원 등도 세울 예정입니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이유종 종무원장은 31세까지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그러다 1966년 대순진리회를 알게 된 후 곧바로 입도했다. 우리나라 신명이야말로 진정 우리나라 사람을 도우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현재 종단이 법정분규에 휘말리는 등 내분을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유종 종무원장은 앞날을 낙관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종교단체로서 반목하고 질시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안정을 되찾길 바라고 있어요. 예전부터 사회복지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 몇몇은 진행 초기단계에 있었는데, 내분을 겪으면서 수포로 돌아갔어요. 종단이 안정되면 중단된 일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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