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이부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국보법 폐지든, 대체입법이든 현실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나”

  • 윤종구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kmas@donga.com

    입력2005-01-24 1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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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권위주의 시대 선악개념으론 의회 운영 안된다
    • ■ 국보법 폐지 어려운 것 알면서 비판만 하는 건 다른 목적 노린 것
    • ■ 강경파, ‘4대 법안 관철’만 요구했지 재량권 전혀 안줬다
    • ■ 한나라당과 합의한 국보법 대체입법안, 의총에서 표결했으면 채택됐을 것
    • ■ 당 노선경쟁, 이대로 두면 정국 안 풀린다
    • ■ 박근혜 대표는 타협할 생각 없이 4인 대표회담 나왔다
    • ■ 홀가분하게 재보선 나갔으면 좋겠는데…
    이부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국보법 폐지든, 대체입법이든 현실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나”
    신년벽두 집권 여당의 수장(首長)자리를 내놓은 이부영(李富榮) 열린우리당 전 의장. 의장 사퇴 엿새 만인 1월9일 만난 그의 얼굴에선 여유와 웃음이 가득 묻어났다.

    그는 요 며칠 하루에 7시간씩이나 잠을 잤다며 좋아했다. 의장 시절에는 귀가시간이 늦은데다, 미리 배달된 조간신문을 보기 위해 아침 6시 전에 일어나느라 평균 4~5시간밖에 못 잤다고 한다. 둘째 손자 돌잔치도 치렀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 낮에는 북한 알리기와 통일운동에 힘쓰다 7일 별세한 김남식 선생의 상가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북한이나 공산주의에 대해 말도 제대로 꺼내기 힘들던 시절, 북한을 알리고자 여러모로 애쓴 분인데, 참….” 김 선생에 대한 회고가 잠시 이어진다.

    이야기는 곧 국가보안법이니 과거사니 하는 무거운 주제로 흘렀다.

    “열린우리당 안에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젊은 사람이 많아요. 그들은 내가 국보법 대체입법을 자꾸 얘기하니까 의지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모양이에요. 이제껏 다섯 번 구속돼 7년 징역살이 한 가운데 네 번을 국보법으로 온갖 몹쓸 짓 당한 사람입니다. 국보법에 몸서리치기로 말하자면 당에서 나보다 더한 사람 없을 거요.”



    3일 사퇴의 변에서도 밝혔듯 이 전 의장은 당내 강경파에 대해 못마땅한 느낌을 토해냈다.

    -강경파에 대한 투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했는데, 쌓인 게 많은 모양이죠?

    “뻔히 실현되기 어려운 것을 실현시키지 않는다고 비판만 하면서 선명성을 주장하는 것은 국보법 폐지가 아니라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내 선명성 경쟁, 국회 밖에서 벌어지는 국보법 폐지시위나 농성에 떠밀린 면도 있다고 봐요. 일자리 만들기, 민생안정,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도 국보법 못지않게, 아니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집권 여당으로서는 개혁과 함께 국민 생활의 안정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말 의원총회에서 표결을 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온건파 의원이 적지 않습니다. 강경파가 소수라는 걸 보여줬어야 한다는 것이죠.

    “4인 대표회담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지요. 여야 회담이 열리면 대화와 타협이 기본 원칙인데, 강경파는 국보법을 비롯한 4대 법안을 관철시키라는 요구만 했지 재량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은 여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할 경우 물리적으로 막는다는 방침이었고, 김원기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연내 국보법 폐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요. 오히려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봤습니다. 그렇다면 대체입법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몇몇 의원에게 준비하게 했습니다. 천정배 전 원내대표도 이런 과정을 다 알고 있어요. 문희상, 유인태, 이강래, 우윤근 의원이 주축이 돼서 준비했고, 이를 위한 중진모임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국보법 대체입법안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3+1’안이 사실상 천정배 전 원내대표에 의해 좌절된 데 대한 서운함이 살짝 묻어났다. 지난해 12월30일 김원기 국회의장과 열린우리당 천정배,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4대 법안 중 국가보안법의 대체입법과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의 연내 처리를 담은 ‘3+1’ 방안에 의견을 모았다.

    121석 한나라당 실체 인정해야

    그러나 곧바로 소집된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국보법 폐지 후 형법 보완’이라는 당론을 변경할 수 없다”며 대체입법안에 반대하자 천정배 원내대표는 그 자리에서 여야 타협안을 무효로 돌리고 폐지 당론을 재확인했다. 온건파가 투표를 통한 당론 변경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전 의장은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에 대해서는 파트너 의식과 서운함을 함께 갖고 있었다.

    “121석 야당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우리가 동의하지는 않지만, 생각을 주장하고 실현하려는 권리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그들도 국민의 표로 당선됐거든요. 권위주의 시대의 선악 개념으로는 의회를 운영할 수 없지요. 그러나 박근혜 대표는 4인 대표회담에 양보나 타협을 할 생각을 않고 나왔더라고요. 4인 대표회담에서는 김덕룡 원내대표와 집중적으로 얘기하고 박 대표와는 본회담 이후 두 차례 정도 만나 설득도 하고 했는데, 국보법에 대해서는 박 대표 견해가 자꾸 흔들렸어요. 포괄적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세부적인 문제에 들어가면 요지부동인 때가 많았습니다.”

    -국보법의 대체입법안에 타협했다가 이를 먼저 뒤집은 것은 열린우리당 아닙니까.

    “처음엔 김덕룡 원내대표가 대체입법을 당내에서 설득할 자신이 없다고 하다가 일단 양당이 서로 부딪쳐보기로 했습니다. 열린우리당에서 이강래·우윤근, 한나라당에서 최연희·주호영 의원이 접촉해서 안을 만들었죠. 결국 7조1항의 고무찬양 선전선동 부분에서 선전선동만 남기고 다 없애는 쪽으로, 그리고 이적단체 조항도 그냥 둘 수 없다는 수준의 대체입법에 양당이 합의하고 의총에서 관철시키기로 했는데, 그게 열린우리당 의총에서 좌절된 것이죠.”

    -의총을 전후한 당내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어떠했습니까.

    “의총에서 본래는 대체입법안과 폐지안을 놓고 표결하자고 했는데, 그걸 안 하고 그냥 기존 당론(폐지)을 재확인하는 수순으로 가버렸어요. 참 아쉬웠습니다. 표결을 했더라면 결국 대체입법안이 채택됐을 것입니다. 그러면 언론법과 과거사법, 국보법까지 3개 법안이 통과되는 성과가 있었을 텐데….”

    -당내 강경파 의원들과 기간당원들에게 노골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대체입법안을 지지한 이유가 뭡니까.

    “올해 국정목표인 민생안정, 경제회복, 한반도 평화정착을 실현해 나가려면 반드시 이념대결과 색깔론을 종식시켜야 합니다. 우리끼리 날만 새면 간첩이니 고문했느니 하면서 싸워서야 되겠어요? 국보법을 일단 묻어놓고 거론하지 않거나 여야 합의로 대체입법안을 마련하면 색깔론이나 이념대결을 봉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 진보와 보수, 노사, 중소기업과 대기업, 세대 간의 대분열을 수습하고 국민통합 분위기를 조성해 민생안정과 경제회복, 남북평화정착의 길로 달려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임시국회선 국보법 거론 말아야

    이 전 의장은 ‘국보법 논쟁의 의미는 현 시국을 바라보는 관점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국보법 폐지든 대체입법이든 현실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것. 폐지냐 대체입법이냐 하는 형식에서 그가 보여준 유연한 모습은 그래서 가능했다.

    “국보법으로 구속된 사람은 서너 명밖에 안 돼요. 국보법이 그대로 있든 대체입법을 하든 간에, 이 정부 아래서는 독재정권처럼 남용하는 일은 없겠지요. 따라서 이 문제를 갖고 도 아니면 모, 흑 아니면 백 식으로 싸워야 할 만큼 긴박한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가 나아지고 북핵 해결의 기미가 보이면 (국보법은) 그때 가서 순탄하게 폐기시킬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북핵 위기가 실존하고 민생도 어려우니 자연히 국보법 폐지에 대한 저항도 크지요. 이런 시기에 굳이 밀어붙이는 게 득책은 아니지요. 또 정부·여당으로서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데, 이 일로 뻔히 예상되는 후폭풍을 수습하는 데 힘을 소진해서야 되겠습니까. 2월 임시국회에서는 아예 국보법 폐지를 거론하지 않거나, 지난 연말에 잠정 합의한 대체입법으로 합의 처리하는 게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전 의장이 국보법의 대체입법을 주장했다는 말이 퍼지면서, 그에게 쏟아진 비난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기간당원들이 주도하는 당 홈페이지에는 그를 ‘배신자’로 매도하는 글이 적지 않게 올라왔다. 그에 대한 당내 비난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전력이다. 그러나 이 전 의장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열린우리당을 내 손으로 창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나라당에서 나온 사람의 수가 적다고 하는데, 그때 우리 다섯 명(이부영 이우재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이 일을 내지 않았다면 민주당에서도 나왔겠어요? 우리가 나온 뒤에도 그 사람들은 머뭇거리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먼저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창당 자체가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당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매우 큽니다. 분명히 얘기하지만 우린 지금 혁명을 하는 게 아니라 진화하는 겁니다. 이런 의식을 의원과 당원들이 확실히 가져야 해요.”

    박근혜 역사인식 검증해봐야

    -한나라당에도 하고 싶은 말씀이 많을 텐데요.

    “우리는 이제 공산주의 체제나 이념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하긴 하지만 국가로서 우리의 경쟁상대는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 년 전의 냉전적 가치만 갖고 현실을 재단해선 올바른 국정목표를 설정할 수 없어요. 우리가 국보법 폐지 또는 대체입법을 하려는 것도 인권침해 요소를 제거하고 안보불안 요소는 확실히 보완하면서 변화된 남북관계를 반영하는 면에서 손질하자는 겁니다. 앞으로 한나라당에서도 이런 문제로 당내 논쟁이 심각하게 벌어질 겁니다. 전향적인 논의가 있길 바랍니다. 그게 정쟁을 줄이는 지름길이에요. 열린우리당만 시끌벅적하고, 한나라당은 회칠한 무덤처럼 조용하면 의회정치가 제대로 발전하기 어렵지요. 고장난명(孤掌難鳴)이란 말처럼, 올해야말로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점을 여야가 인식해야 합니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연말 4인 대표회담이 열리는 동안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해 ‘손바닥을 마주칠 의지가 전혀 없다’고 연일 비판했다. ‘수첩정치’니 ‘유신공주’니 하는 비판도 그때 나왔다.

    이부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국보법 폐지든, 대체입법이든 현실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나”

    여의도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기자와 인터뷰중인 이부영 전 의장.

    그러나 이 전 의장은 “박 대표가 정말 유신공주 같은 모습으로 비쳤냐’는 물음에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대표끼리 만나 회담한 뒤에 그런 말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박 대표는 지난 시대의 강인한 울타리 속 가치관에서 나오길 굉장히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시대의 변화랄까 분단시대의 현상변화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요. 그 변화를 대단히 부정적인 눈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향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 뜻인가요.

    “박 대표가 부친의 유업에 큰 비중을 두고 있고, 자신의 역사관의 시작과 끝도 거기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광복 이전의 독립운동이라든지 역사 전체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눠볼 필요가 있겠구나, 지금 시대 이후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질문도 받고 답도 해야 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더군요. 그래도 이번에 국보법 협상에서 조금이나마 전향적 자세를 보인 점으로 봐서는 대화의 실마리는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박 대표의 역사인식을 들어보고 검증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어떻게 보느냐는 미래에 대한 관점을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 전 의장은 “박 대표가 친일 문제라든지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행태를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옹호하지 않는 한 직접적인 비판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당과 원내 이원화돼 문제

    -지난해 8월 중순부터니까 4개월 남짓 의장직을 수행했는데, 사퇴하고 나니 심경이 어떻습니까.

    “아주 바쁘게 지내오다가 오랜만에 지난 일들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평가도 하고 반성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다 잘하진 못했지만 열과 성을 다해 의장직을 수행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여러 달에 걸쳐 합의가 안 되고 논란만 거듭하던 당?당규를 순조롭게 마무리지어서 전당대회 터전을 닦았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금 당의 기간조직이 순조롭게 건설되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상이지요. 내가 의장이 되기 전에는 다선 중진 의원들이 당 운영과 원내대책에 전혀 참여하지 않아 당에 냉기류가 감돌 정도였지요. 이른바 당권파와 소장 의원들이 당을 사실상 좌지우지했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중진들을 당무와 원내대책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정기국회와 연말 임시국회에서는 중진들과 지도부가 긴밀하게 숙의를 거듭했어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당초 예상과 달리 4월 전당대회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물러나셨는데….

    “알다시피 열린우리당은 당무와 원내가 확연하게 이원화돼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당과 원내 당직자 사이에 협력관계가 원활치 않아요. 원내 대책과 당무 수행에서 장애가 꽤 일어나더군요. 시스템으로 극복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노선을 둘러싼 당내 갈등도 만만찮습니다. 연말에 4대 개혁입법이 불거지면서 당내 강온 세력 간에 견해 차이가 발생하고 나중에는 뚜렷한 노선 차이가 불거졌지요. 노선 경쟁은 건강한 긴장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연말 임시국회에서는 건강한 긴장관계 수준을 넘어 심각한 정국 체증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건 열린우리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나라당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면서 정국 파행의 요인이 됐어요.”

    과녁이 없어야 활 쏘지 않는다

    -사퇴 후 청와대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까.

    “안 갔습니다.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저녁은 한 끼 먹었지요. 청와대에서는 나의 사퇴를 만류하려고 애쓴 것 같습디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의 새해 국정지표, 그러니까 민생안정과 경제회복, 한반도 평화정착, 국민통합에 맞춰 당의 기조도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물러나는 것이 당의 방향 선회를 확정하는 계기가 되게 하려고 했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며칠 안 됐지만 사퇴를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국보법을 폐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또 개혁 입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천정배 원내대표가 그만두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국보법의 대체입법을 주도한 당 의장이 그냥 있으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당에 분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요. 의장 불신임이니 사퇴니 이런 말이 오가는데, 그냥 있는다고 해도 기껏 전당대회까지 두세 달이에요. 내가 사퇴함으로써 과녁이 사라져야 활 쏘는 사람도 없을 것 아닙니까. 대신 중진 의원들에겐 ‘내 사퇴를 만류하지 말고 당신들이 전면에 나서달라’고 주문했어요. 당권파니 소장파니 하면서 당내에 한랭전선이 그어져 중진들이 당무와 원내대책에 손놓고 있다가 나중에 다선 중진들이 참여함으로써 당이 연말에 얼마나 균형을 찾았습니까. 이미 드러났듯이 집권여당의 직무라는 게 몇몇 초선에 의해서는 도저히 안 돼요.”

    이 전 의장의 사퇴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전임자인 신기남 전 의장이나 천정배 전 원내대표는 당직을 내놓아도 국회의원이지만, 그는 원외이기 때문이다. 의원총회에도 참석할 수 없다. 더욱이 선거법 위반 문제로 재판까지 받고 있다. 1심에서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아 자칫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될 위기에 몰려 있다. 이런 이유에서 그가 결국은 의장직을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가 많았다. 전당대회가 열리는 4월 초까지 의장직을 갖고 있으면 당권 경쟁은 물론 4월 말의 재보궐 선거 후보 선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괜찮은’ 지역에 출마할 가능성도 훨씬 높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입지를 갖느냐보다 정국의 방향을 확실히 정해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 유·불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정국 방향을 극한적인 여야 대결구도에서 대화와 타협의 구도로, 경제안정 민생안정 평화정착 국민통합의 길로 바꿀 수 있느냐에 더 관심을 뒀습니다. 그냥 의장직에 눌러앉아 있었다면 당내에서 시시한 싸움이 계속됐을 것이고, 나 자신도 대단히 시시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우린 흔히 대단한 자리에 있어야 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하죠. 그러나 자리라는 게 어떤 걸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어야지 자리 자체가 목표가 돼선 안 됩니다.”

    ‘실험적 정치’ 그만둬야

    -4월 전당대회나 국회의원 재보선에 나설 생각이 있습니까. 충청권과 수도권 출마 문제를 놓고 당 안팎에서는 벌써 이런저런 얘기가 나옵니다만.

    “우선 선거법 항소심이 진행중인데, 마음 편하게 가지려고 합니다. 가능하면 조기에 재판 결과가 나와서 홀가분하게 재보선에 나갈 수 있으면 좋겠지요. 재보선 지역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들은 바도 없고요. 당분간은 논란의 회오리에서 조금 비켜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당대회에 나서는 것은 전직 의장으로서 모양새가 좀 그렇지 않나요? 그러나 어떻게 보면 전당대회 석 달 전에 스스로 물러났으니 출마해도 별 문제는 없겠지요.”

    -사퇴가 당에 어떤 영향을 줬다고 봅니까.

    “내가 사퇴한 후 중진들이 임시 집행부를 만들어 내가 바라던 대로 당을 수습하고 방향을 정하고 있는데, 그러면 내 기대대로 정국 방향을 틀어놓은 것 아닙니까. 그건 사퇴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그만둔 직후에 우리 사회 원로들의 ‘희망선언’이 나온 것도, 내가 제시한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방증 아니겠어요? 집권 여당이 방향을 제대로 설정했다는 것을 재야 원로들이 뒷받침해준 겁니다.”

    -국정 방향을 제대로 잡는 데 일조했다고는 하지만, 2월 임시국회에서도 연말에 처리하지 못한 쟁점 법안들을 놓고 여야가 또 싸울 가능성이 큰데요.

    “국보법만 원만하게 타협하면 과거사진상규명법은 연말 타협 수준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립학교법은 개방이사 비율 문제가 쟁점이므로 큰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국보법이 문제이긴 한데….”

    -앞으로 전당대회와 당 체제 정비, 국정운영은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까.

    “전당대회는 당헌 당규에 따라 순탄하게 치러지겠지요. 문제는 이달 말 원내대표를 뽑고 4월 전당대회에서 지도부를 선출한 후의 일입니다. 올해는 정부·여당이 국정목표에 총력을 기울여서 정말 제대로 성과를 내야 하거든요. 참여정부도 집권 중반기에 들어서는데, 초반의 실험적 정치를 계속하긴 어려운 것 아닙니까. 성과를 내는 실적 위주의 정책을 펴야 합니다.”

    당분간 당에는 안 갈 것

    의장 시절 그는 남북정상회담이나 북핵 문제, 6자회담 등 남북관계에 대해 비교적 많은 말을 했다. 일각에서는 정확한 정보 없이 너무 가볍게 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이 전 의장은 이날도 남북문제와 북미관계를 화제에서 빼놓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핵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주변 나라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북핵 문제가 풀리는 것과 동시에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미국이나 일본의 의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혹시 시간을 너무 보내다가 기회를 또 잃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아직도 미국이 북한의 체제보장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보는 건 아닌지 우려돼요. 미국이 직접적 타격에 나서지는 않는다해도 봉쇄나 압박만 강화하면 북한은 견디기 힘든 상황에 내몰리지 않겠어요?”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만, 다 이루지 못한 일은 이 다음에 정권을 재창출해서 할 수 있도록 완급을 조절했으면 좋겠어요. ‘내 임기 동안 다 하겠다’는 생각은 가능한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노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는 그런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만. 일에 우선순위를 정해서 추진했으면 어떨까 싶네요. 사람들을 좀 더 폭넓게 포용하고 등용해야 합니다.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의 인사 파동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 번 실감했지만, 역시 인사가 만사예요. 그런 점에서 올해 국정목표는 잘 잡았다고 봅니다. 당에도 같은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 전 의장은 약속 장소에 오기 전 서점에 들러 책을 몇 권 샀다고 했다. 당 태종 이세민과 명신(名臣)들의 치국관을 담고 있는 ‘정관정요’와 고대 중국 대륙을 무대로 각양각색의 인간군이 펼치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노래한 ‘십팔사략’.

    “지금은 미래에 대한 큰 설계가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그랜드 디자인이라고 해도 좋고, 거대 담론이라고 해도 좋아요. 우리 민족과 나라를 위한 큰 담론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당에는 당분간 안 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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