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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답사기 元祖’ 유홍준 문화재청장

“문화재, 스스로 무너질 때 까지 인위적 복원 않겠다”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답사기 元祖’ 유홍준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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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 것의 민족적 아이덴티티 제시한 데 자부심
  • ● 개성공단 문화재 복원 발굴 조사, 남북협력 가능
  • ● 문화유산에 가장 관심 컸던 대통령은 박정희
  • ● 익산 미륵사지 동탑은 최악의 복원사례, 폭파해버리고 싶다
  • ● 노 대통령 가는 길은 정조와 비슷, 두 사람 다 수도이전 실패
  • ● 중국내 고구려 문화유산 답사기 쓸 생각
‘답사기 元祖’ 유홍준 문화재청장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한국 출판사에 굵은 획을 그은 책이다. 비소설 분야에서 나온 최초의 밀리언셀러. 1993년 첫 출간된 1권은 지금까지 130만부가 나갔다.

이 책의 저자 유홍준(兪弘濬·56)은 우리 문화재를 보는 눈을 열어주었다. 시인 고은은 ‘다른 사람이 가는 곳은 석양머리 적막강산이지만 유홍준이 성큼성큼 가면 거기 몇천 년 잠든 보물들이 깨어나 찬란한 잔치를 베풀기 시작한다’고 찬사를 보냈다. ‘인간은 아는 것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이 만들어낸 1990년대 어록.

그한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책 한 권으로 부귀공명(富貴功名)을 모두 이뤘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독자이던 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문화재청장(차관급)에 임명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전혀 거들떠보지 않던 문화재의 숨은 가치를 찾아 국민에게 알려준 안목을 문화재청에 심어주면 거기서 혁신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 청장을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만났다. ‘한국의 집’은 조선조 사육신 박팽년(朴彭年)의 집터가 있던 곳. 일제강점기엔 정무총감 관저로 쓰였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영빈관으로 사용됐다. 지금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관리하며 문화공연을 하고 전통 한정식을 판다. 고졸(古拙)한 병풍이 쳐진 방에 들어가 앉자 맵시 좋은 한복을 입은 미인들이 찻잔을 날라왔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역작용

-인세 수입이 꽤 많았을 거 같아요. 공직자 재산등록은 얼마나 했습니까.

“베스트셀러가 되리란 예상을 못하고 보통 인세 계약할 때와 똑같이 10%로 계약했습니다. 많이 팔렸다고 해서 더 받은 건 없습니다. 인세로 대강 20억원 정도 들어왔지만 세금으로 3분의 1 가량이 나갔죠.

내가 기부를 잘 하니까 마누라가 인세 통장을 뺏어갔어요. 나는 원고료 강연료를 받아서 용돈을 썼죠. 이번 재산등록 때 보니까 마누라 통장에 13억원이 들어 있더군요. 동산 부동산을 합해 25억원 가량 등록했습니다.”

-거부(巨富)라고 할 순 없지만 차관급 이상 공직자 중에서는 상위 그룹에 들어가겠군요.

“한마디로 운이 좋았죠. 시운이 따르지 않으면 절대로 밀리언셀러가 될 수 없습니다. 영어로 쓰인 책 중에는 밀리언셀러가 많지만 우리 도서시장에서는 어렵죠. 한국에서 100만부가 팔렸다면 세계시장에서라면 해리 포터 정도의 대중성을 얻은 겁니다.

사실 책의 내용은 어렵습니다. 내 책을 하나의 모델로 삼는다면 대중화가 꼭 수준을 낮추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대중적 수준으로 풀어 써야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사이에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1994년 8월엔 자동차 대수가 700만대를 넘어섰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마이카를 놀이문화에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곤혹스러운 중산층에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해답을 주었다고 분석했다.

“마이카 시대의 개막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문화유산에 여행이라는 매체를 집어넣으면 사람들이 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 자유화로 대다수 사람이 외국여행을 해봤습니다. 외국에 나가본 사람일수록 정작 우리 것을 모른다는 자괴심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분들에게 우리 것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제시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김훈씨의 ‘자전거 여행’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더군요.

“뉴욕의 반즈 앤드 노블 같은 유명 서점에 가보면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코너가 트래블(travel·여행)과 바이오그라피(biography·전기)입니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고 돈과 시간이 생기면 여행을 갑니다. 인간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때문에 전남 담양군 소쇄원 같은 문화재에 인파가 몰려들어 망가졌다는 비판이 나오던데요.

“역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느 유적지든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 한계가 있습니다. 소쇄원의 경우 쾌적하게 관람하려면 한 번에 30명 정도가 알맞습니다. 그런데 여름방학 때면 30만명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전남 강진에도 외국인을 포함해 연간 8만명이 방문합니다. 내가 답사기 쓸 때는 강진에 여관이 하나뿐이었습니다. 지금은 13개나 되지요. 그러니까 지역경제가 일어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셈입니다. 그 덕에 제가 명예 군민증을 받았습니다.

손님들이 몰려오니까 지방자치단체가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생각에 도로를 포장하고 주차장을 만들었습니다. 책에서는 비포장길의 정취를 얘기했는데 그 길에 아스팔트를 쫙 깔았습니다. 포장을 하더라도 정취는 살렸어야죠. 주차장도 유적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만들어야 하는데 유적지 가까이 갖다놓는 과잉 친절을 베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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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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