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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답사기 元祖’ 유홍준 문화재청장

“문화재, 스스로 무너질 때 까지 인위적 복원 않겠다”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답사기 元祖’ 유홍준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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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 元祖’ 유홍준 문화재청장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한국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유홍준 문화재청장(왼쪽).

-문화재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아닙니까. 중고교 수학여행 코스가 대부분 경주고요. 그런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는 그때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전남 해남과 강진이 첫머리에 들어 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입니다. 학생들을 데리고 10여년 답사 다니는 동안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 고산 윤선도의 고택 녹우당(綠雨堂), 남도의 들판과 꽃을 보고 향토적 서정에 푹 젖어들게 됐죠. 마음속에 있던 고향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문화유산과 자연과 삶을 분리해 미술품으로 볼 때는 경주가 좋지만 우리 역사와 현재의 삶과 체취를 연결해 볼 때는 남도가 주는 의미가 강합니다.

잘 쓸 수 있는 데를 먼저 쓴 것이죠. 강진 해남은 허름한 여관이라도 여관집 주인이 따뜻하고 그 집 누렁이가 정겨웠습니다. 전라도 음식이 맛있고 값도 비싸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편해지는 거죠. 거기에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같은 분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에 책에서만 본 그분들의 행적을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역사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유 청장은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5형제가 모두 거기 사셨습니다. 저는 청운초등학교에 다녔죠.”

해남 녹우당 박물관에는 윤선도의 증손인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자화상이 있다. 국보 제240호다. 1980년대 후반 그곳에 갔다가 안내하는 여학생이 초상화를 빼다박은 듯이 닮아 놀란 적이 있다. 직계 후손이었다. 유 청장도 그 여학생을 만났는지 궁금했다.



“만난 적은 없습니다. 정양모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학예실장 할 때 ‘한국의 초상화’라는 특별전을 연 적이 있어요. 유명한 가문마다 영정을 빌려주십사 부탁을 했죠. 종손들이 영정을 신주 모시듯 들고 오는데 그 얼굴이 대부분 영정과 비슷해요.”

한 대가 내려갈 때마다 외부의 DNA가 50%씩 섞이는데도 몇백 년 뒤의 후손이 조상을 복사판처럼 닮는 것은 놀라운 조화다. 필자가 “씨는 못 속이는 거군요”라고 하자 유 청장은 지갑에서 1000원권 지폐를 꺼냈다.

“여기 퇴계 초상이 잘못 그려졌어요. 퇴계 초상화가 전해지는 게 없으니 상상으로 그린 거죠. 종손을 모델로 했어야 합니다. 화가들이 대체로 자기 얼굴 비슷하게 그리는 경향이 있어요. 누구나 자기 얼굴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생각하거든요. 세종대왕, 이순신, 율곡도 초상화가 없죠. 지금 있는 것은 화가들이 상상력으로 그린 겁니다.”

-우리 문화재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에 다수 복원됐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문화재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기술이 자주 나오잖아요. 권력이 개입해 문화재를 살려놓은 사례와 망쳐놓은 사례를 하나씩 들어봐주시죠.

“경주 천마총과 불국사 복원은 박정희 시대의 작품이죠. 역대 대통령 중에서 박 대통령만큼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없습니다. 관심이 지나쳐서 문제가 되었지만요. 박 대통령 옆에서 문화재 전문가와 건축가 한 사람이 보좌를 해주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아산 현충사, 칠백의총, 신사임당 기념관은 천편일률적으로 콘크리트 한옥에다 미색 수성 페인트를 칠해놓았죠. 지역적 환경에 맞춰 건물을 지었다면 근사한 근대 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아주 박제화하고 획일화해 놓았어요. 그 시절엔 대단한 것이었지만 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가니까 우스운 집이 돼버린 거죠.

문화재청 예산이 3500억원으로 국가예산의 400분의 1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빨리 3만달러로 올라야 문화재예산도 함께 올라갑니다. 소득 1000달러 시대에 복원한 문화유산과 1만달러 시대에 복원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2만달러 시대에는 더 잘할 겁니다.”

세종로 충무공 동상은 降將의 자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보니 박정희 정권이 군사쿠데타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이순신을 비롯한 군사 영웅관(觀)을 조성했다고 썼더군요.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그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분 아닙니까.

“그렇죠. 다만 영웅주의 사관을 창출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거죠. 마치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혼자 싸우고 나머지는 무서워 도망간 것처럼 돼버린 문화가 문제입니다.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 유적인지, 박정희 기념관인지 모를 정도로 과장돼 있어요. 본래 있던 현충사는 옆으로 밀어내고…. 한산섬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 개인만 놓고 보면 지금 이상의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오버랩 되니까 사람들한테 오히려 주저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 거죠. 역작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세종로에 있는 충무공 동상은 미학적으로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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