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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MBC 연기대상 한꺼번에 거머쥔 고두심

고운 여자 애틋한 엄마, 따뜻한 사람

  • 이나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byeme@donga.com

KBS·MBC 연기대상 한꺼번에 거머쥔 고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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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 안 오는 새벽이면 버스 타고 시장에 가 아줌마 아저씨들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는 배우.
  • 작품 하나 끝날 때마다 동료들에게 고운 인사 담긴 책 한 권씩 선물하는 어른. 혹은 아무도 몰래 소녀가장 집을 찾아 칼국수 끓이고 뒷머리 쓰다듬어주는 정 많고 눈물 많은 누이. 그 여자, 고두심.
KBS·MBC 연기대상 한꺼번에 거머쥔 고두심
그녀는작다. 손도 어깨도 자그마하다. 걸을 때는 발소리가 나지 않는다. 목소리도 나지막하다.

오늘 파티는 작고 음전한 그녀를 위한 것이다. 그녀 고두심(55)은 지난 연말 KBS와 MBC 두 방송사에서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우리 방송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로는 ‘KBS 연기대상’을, ‘한강수타령’으로는 ‘MBC 연기대상’을 탔다. 고두심은 이미 세 차례나 연기대상을 받은 적이 있다. 연기대상 5관왕. 혹자는 이를 두고 ‘전무(全無)로도 모자라 후무(後無)할 것으로 보이는 금자탑’이라 했다.

‘꽃보다…’에서 그녀는 남편의 새 여자에게 콩팥을 떼주고도 미련스레 참아내는 여인 ‘영자’였다. ‘한강수타령’에선 부모 잃은 조카 남매까지 억척으로 키워내는 생선장수다. 두 여자는 사람들을 많이도 울렸다. 삶이 고달파 돌아간 집, 다 큰 자식 벌거벗은 등에 비누칠 해주며 “괜찮다, 괜찮다” 되뇌이는 엄마처럼 그녀의 연기에는 참 그립고도 간절한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진정성이요, 오래 울고 난 후의 나른함처럼 먹먹하고 서글픈 평안이었다.

파티가 열린 곳은 서울 남산, 타워호텔과 신라호텔 사이에 있는 ‘서울클럽’이다. 구한말 고종황제가 외국인을 위해 연 사교장. 긴 세월이 흘렀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사교클럽’이라는 명성만은 여전하다. 겉모양은 수수하나 안으로는 자부심이 꽉 들어찬 그 공간에서 제주향우회 사람들이 ‘고두심 여사 연기대상 수상 축하연’을 벌이고 있다. 50여 명의 참석자 중에는 유명 인사도 꽤 있다.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원희룡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근 퇴임한 김보현 전 국가정보원 3차장, 박종원 영화감독….

“다시 태어나도 울 엄마한테서…”

그런데 정작 주인공은 눈에 뵈지 않는다. 훑다 보니 중간 테이블,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 앉아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다.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어나, 사람들을 뷔페 테이블로 이끌며 조용조용 안부를 묻는다. 검은 재킷, 같은 색 바지, 굽 없는 검정 단화. 중성적이고 소박한 차림새로 제 앉은 테이블의 음식 심부름까지 도맡아 하느라 혼자 바쁘다. ‘럭셔리’한 공간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미인이면서, 또 그렇게 잰 걸음으로 손님 접대에 바쁜 뒷모습은 이곳에 동네 잔칫집 같은 온기를 불어 넣는다. 꼭 다물면 한없이 고집 세고 야무져 보이는 그 입매가, 한 쪽만 벙긋 터져도 그렇게 따스하고 때로는 맹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처럼.

밤 9시, 손님들을 다 보내고 나서야 그녀는 코트를 집어 든다. 집이 있는 서울 평창동으로 이동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인사를 튼다. 고향 제주도 이야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는 그녀의 근원이며 존재 이유다. 제주도에 관한 일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비행기를 탄다. 2년 전에는 연기생활 30주년을 맞아 7박8일간 제주 도보 순례를 했다. 가슴이 막힐 때면 화북 앞바다를 마주하고 서 그 푸른 속을 깊이깊이 읽어 내려간다. “나는 내 고향을 사랑한다, 어머니만큼 사랑한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입버릇이야말로 그녀의 삶 전체를 오롯이 아우르는 말이다.

“난 다시 태어나도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한테서 날 거예요. 내가 어머니 얘기를 많이 하는데, 거기에는 항상 아버지까지 포함돼 있어. 우리 아버지는 진짜 아버지다운 아버지였어요. 굉장히 남자답고 진취적이면서 또 그렇게 자상할 수가 없었어요. 손수 3남4녀 갖고 놀 인형까지 만들어주시곤 했으니까.”

가난이 싫고 바다가 지겨웠던 제주 사람들은 늘 뭍을 동경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14살 되던 해 현해탄을 건넜다. 일본서도 별다른 희망을 찾지 못한 아버지는 남태평양 사이판 서남쪽 부근 ‘얍’이라는 미개척 섬에 들어갔다. 일본을 오가며 보따리상 비슷한 무역업을 해, 얼마 후에는 병원과 만물상점을 경영하는 제법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이국 여인과의 혼담이 오갈 만도 하건만 아버지는 오로지 ‘제주 여자’만을 고집했다. 멀고 위험천만한 길을 되짚어 와 그녀의 어머니를 신부로 맞아 함께 얍섬으로 돌아갔다.

“제주 여자는 강해요. 끈질기고 넉넉해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원하던 바로 그 제주 여자였어요.”

얍섬에서 두 아이를 본 부부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귀국길에 올랐다. 연일 이어지는 폭격에 어머니가 “돌아가자”며 성화를 부린 탓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제주는 4·3항쟁의 격랑에 휩싸였다. 어지러운 세상 속, 희망을 잃은 아버지는 소리없이 허물어져갔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온화했고, 부부는 죽는 날까지 서로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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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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